시한부

by 끌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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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내일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말하면 세상은 갑자기 낯설어진다. 백은별의 <시한부>는 바로 그런 상황에 놓인 중학생의 시선을 따라간다. 열네 살 중학생 작가가 쓴 소설답게 죽음을 다루면서도 무겁고 냉철한 시선 대신 10대의 마음으로 생의 끝과 시작을 이야기한다.


주인공 수아는 친구 윤서가 중학교 2학년 크리스마스에 자살로 떠난 뒤 자신도 1년 뒤 크리스마스에 죽기로 결심하고 1년을 살아간다. 눈앞에서 친구의 죽음을 목격한 수아가 겪는 정신적 고통과 1년 동안 학교와 가정에서 생활하며 느끼는 생각과 감정의 변화가 진솔하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자신의 일기를 포함해 자전적 내용을 일부 담고 있다. 소설은 또래 시점으로 청소년 우울증과 자살을 솔직하게 그리고 있는데, 친구가 세상의 전부였던 그 시절 풋풋한 감성이 떠올라 더욱 몰입감이 좋았다.


윤서가 죽은 게 나 때문일 거라는 길고 긴 죄책감과 불안감과 가끔씩 미칠 것만 같을 때 들리는 윤서의 목소리와 날 야유하는 반 아이들의 목소리가 내 손목의 상처들을 만들고 집에 아무도 없을 때는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하지만 결코 부모님이 알아서는 안 되니, 학원을 꼬박꼬박 다니고 출석했다. - p.95


늘 무언가를 미루며 살아왔다. “나중에 해야지”, “아직 시간 있으니까” 하며 넘겼던 순간들. 하지만 백은별의 소설 <시한부>는 우리에게 묻는다. 정말 시간이 많을까?


교실 풍경, 친구들과의 대화, 아직 전하지 못한 고백 같은 장면들이 싱그럽게 펼쳐지는 와중에 그 모든 것이 ‘끝이 정해진 시간’이라는 조건으로 바뀌자 갑자기 아련해졌다. 남은 날이 많지 않음을 알게 된 수아의 마음은 두려움과 혼란으로 흔들리지만, 동시에 일상의 작은 순간들을 전보다 더 선명하게 바라보기 시작한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잊고 있던 삶의 진실일지도 모르겠다.


소설 속 윤서의 부모님이 윤서가 7살 때 경제적인 이유로 세상과 등진 후 윤서는 막연하게 죽음을 꿈꾸며 살아간다. 주위 어른들은 부모가 없는 아이라는 이유로 어울리지 못하게 한다. 또 가정환경 때문에 애가 침울한 분위기라고 수군거린다. 그렇게 윤서는 세상과 멀어졌다. ‘정상 가족’이라는 프레임으로 각 가정들을 위계화하고 있진 않은지 생각해본다.


책을 읽으며 미국 청소년들의 현실을 떠올렸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미국 고등학생 다섯 명 중 한 명이 지난 1년 동안 심각하게 자살을 고려했다고 한다. 그리고 약 9%는 실제로 행동에 옮겼다고 한다. 숫자만 놓고 보면 차갑지만 그 숫자는 곧 누군가의 이름이고,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친구이며, 어쩌면 바로 나일 수 있다. 괜찮다는 말 뒤에 감춰진 외로움과 불안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백은별 작가는 서문에서 “청소년 자살이라는 문제는 생각보다 우리 근처에 있고, 흔하고 무서운 문제이다. 아이의 우울감은 그저 철없는 게 아니고, 오히려 어른보다 미성숙한 나이이기에 충동이 심하고 그만큼 위험한 일이라는 걸 우리 사회가 인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소설을 쓴 이유를 말했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 사회구조의 문제에 질문을 던지는 소설인 셈이다. 왜 유독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들, 특히 여성 청소년들이 생을 마감하게 되는가?


미국에 사는 우리들에게 이 책은 정직한 거울이 된다. 소설 속 몇몇 인물들이 윤서를 향해 보여주는 따뜻한 태도는 '누구든 다를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상기시킨다. 다양한 환경과 배경이 뒤섞여 사는 이곳은 피부색만큼이나 사는 모습도 제각각이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며, 누군가를 배척하기는 쉽지만, 받아들이는 용기가 진짜 성숙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시한부>를 “죽음을 이야기하면서도 삶을 사랑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라 부르고 싶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오늘 하루를 조금 더 다정하게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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