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by 끌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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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방으로 가는 중간 바닥에 코를 박고 엎드려 있었다. 뭔가를 급히 찾으러 가려다 문턱에 걸려 넘어진 것처럼 보였다. 향년 76세. 오늘, 엄마가 돌아가셨다. - p. 7


명주는 엄마가 사망하자 따라 죽으려 했다. 약을 몇십 알 털어 넣고 엄마 옆에 누웠다. 하루 하고도 반나절쯤 자고 깬 뒤 비몽사몽으로 헤매던 차에 엄마 휴대전화에 문자가 울린다. 이번 달 연금이 입금됐다는 알람이다. 생각이 복잡해진 명주는 조금만 더 엄마와 함께 살아갈 방법이 있지 않을까 궁리한다. 지금 엄마의 시신을 집안에 숨겨둔 상태로.


소설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은 이렇게 시작한다. 간병과 돌봄 때문에 가족 전체를 무너지게 하는 공공의료의 사각지대를 세밀하게 비추고 있다.


임대아파트 701호 아줌마와 702호 청년이 보여주는 삶의 모습은 처절하다. 화상 후유증으로 일을 할 수 없는 명주는 이혼 후 엄마를 간병하러 일 년 반 전 이 아파트에 왔다. 청년 가장 준성은 고3 때부터 스물여섯이 될 때까지 일만 했다. 알코올성 치매와 뇌졸중을 앓고 있는 아버지를 간병하기 위해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준성은 아버지의 목욕을 돕다가 실수로 아귀힘이 풀려 아버지를 놓치고 말았다. 순간 아버지는 무릎이 꺾이고 연달아 머리가 세면대에 부딪히면서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아버지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절망에 빠진 순간 준성의 손을 잡아준 사람은 이웃집 명주였다.


명주는 준성에게 두 구의 시신을 시골 폐가로 옮기자고 제안한다. 명주는 아파트에 엄마와의 시간을 봉인하면서 지난 시절 자신과도 화해한다. 준성은 준성대로 마음속으로 아버지와 화해를 이뤄내고 이삿날 운전대를 잡는다.


연금이 입금된 날, 엄마를 미라로 만든 명주. 살기 위해 사고를 실종으로 만들어야 했던 준성. 이들의 생존법에 대해 사회·윤리적 잣대는 잠시 밀쳐두자. 두 주인공이 끝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고 떠나는 날. 눈길 위를 달리는 트럭에 올라탄 독자들이 어떤 감정의 파도를 넘어설지 몹시 궁금하다.


이 소설은 제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다. 초고 제목은 <야만의 겨울>이었다. 죽은 부모를 미라로 만들면서까지 연금에 의존해야 하는 복지 사각지대 소외 계층의 참혹한 현실을 뜻한다. 야만은 소설 속 대리기사, 집배원, 미용사 등 여러 직종 노동자와 이혼 여성이 겪는 차별과 혐오, 착취를 사실적으로 표현한 단어다.


‘간병과 돌봄’이라는 주제는 문미순 작가의 경험에서 시작됐다.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게 됐고 두 달 반 동안 병원에서 남편을 간호했다. 같은 병실을 쓰는 주변 환자들을 보면 대부분의 간병인이 여자였고 80대 어머니가 60대 아들을 간병하는 경우도 있었다. 오히려 간호가 필요해 보이는 이가 누군가를 돌보는 상황을 목격하며 우리나라의 간병 문제와 돌봄 노동에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소설 속 두 주인공이 했던 최저시급 일용직 역시 문 작가의 경험이 녹아있다. 등단 후에도 수입이 없어 8년 동안 마트 아르바이트, 베이비시터 등 다양한 일을 했다고 한다. 그 일을 하면서 그동안 몰랐던 사회 이면에 눈을 떴다.


이 소설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자체가 하나의 긴 겨울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경제 불안, 고용 불안, 세대 단절, 사회적 고립은 일상이 된지 오래다.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은 이런 조건 속에서도 삶이 지속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거창한 희망이 아니라 작은 친절과 반복되는 하루, 그리고 누군가를 향한 미약한 관심이 계절을 넘기는 힘이 된다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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