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처음 알게 된 곳은 kbs라디오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에서였다. 연애상담을 해주는 코너였는데 ‘데이트 폭력’, ‘혼전동거’ 같은 불편한 소재를 과감하게 꺼내놓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참 또렷한 언니다. 저런 언니랑 언제 술 한잔 마셨으면 좋겠다.”싶었다. 그녀의 상담은 때로는 지나치게 직설적이고 명쾌해서 혼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런 ‘쎈언니’도 여자였고 엄마였다. 임경선 작가의 책 <엄마와 연애할 때>(사진)는 결혼과 육아를 통해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발견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조금 특이하다면 아이가 커가는 과정이나 육아 지침에 방점을 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사람으로서의 ‘임경선’에 집중했다는 것. 아이가 태어나서 만 세 살이 될 때까지 인격을 형성하는 중요한 시기라고 하는데, 육아의 주체인 엄마의 그때 삶도 무엇에 비할 수 없이 소중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임경선 작가는 결혼한 해에 세 번째 갑상선암이 재발해 수술을 받았고, 30대 초반을 항암치료에 고스란히 바쳤다. 처음 인공수정에서 쌍둥이를 유산하고 두 번째에 딸 윤서를 낳았다. 어렵게 낳은 딸인 만큼 애틋함도 남달랐지만 한계에 다다랐을 때에는 그녀도 어쩔 수 없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여자의 정체성은 ‘엄마’로 통일된다. 그러다 ‘여자’,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불쑥 튀어나와 충돌하기도 한다.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아이를 돌보는 시간을 일하는데 쓰고 싶은 마음, 엄마로서 아이를 다른 사람 손에 맡겼다는 죄책감, ‘이 모든 부담은 왜 내 몫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원망까지 더해지면 여자의 마음은 한없이 요동친다. 그 혼란함을 임경선 작가는 솔직한 고백으로 정면 돌파했다.
그녀는 아픈 거 무섭다고 노산 핑계로 제왕절개 했고, 조리원에서는 내 몸부터 챙긴다고 밤중 수유 거부한 채 잠만 내리 잤다. 글을 쓰기 위해 아이가 걸어 다닐 수 있을 때부터 어린이집에 보냈다. 솔직히 미안하긴 했지만 아이와 엄마를 분리해서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말한다. 아무리 봐도 부모가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가급적 아이가 가진 운명을 방해하지 않는 것, 그뿐인 것 같았다. 아이 인생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아이이고, 부모는 초대받지 않은 조연. “난 내 인생 살 테니, 넌 네 인생 살아.”하고 말이다. 이런 엄마면 어떤가, 어떤 엄마이든지 이미 아이에게는 엄마가 우주이자 신인데.
책에는 임경선 작가와 딸 윤서의 이야기와 더불어 작가 어머니와의 추억도 담고 있다. 엄마로서의 나와 딸로서의 나를 돌아본 후에야 비로소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다. 작가가 엄마와 같은 공간에서 지낸 시간은 십칠 년 남짓, 엄마에게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지만 사랑하는 만큼 서운하기도 했다. 그녀가 갑상선암 수술을 받고 퇴원한 다음날, 그녀의 언니가 첫아이를 낳았다. 엄마는 암수술 환자를 놔두고 출산한 첫째 딸을 만나러 가버렸다. 당시의 서운함은 두고두고 상처가 됐다. 엄마가 암에 걸렸을 때 뒤늦게 사과를 했고, 모녀는 엄마의 임종을 앞두고 비로소 화해했다.
작가는 엄마를 이렇게 회상한다. “나를 외롭고 독립적인 사람으로 키우는 데 성공하고 떠나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아이와의 소소한 삶을 담아내려고 쓰기 시작한 책인데 다 쓰고 보니 돌아가신 엄마와 화해하기 위해 무의식 중에 써 내려간 것 같다”고 웃음짓는다.
나 역시 누군가의 딸이다. 대개 엄마와 딸의 관계는 온탕과 냉탕을 넘나드는 애증의 관계다. 어렸을 때는 안아달라, 장난감 사달라 보채더니 더 커서는 상관 말고 신경 꺼달라고 엄마를 내쳤다. 다 큰 딸은 여태 엄마와 밀고 당기며 징징거리고만 있다. 우리 엄마도 엄마이기 전에 ‘여자’이고 ‘사람’일테지. 엄마로서 충분히 멋지게 살아온 당신께 이제 그만 ‘여자’, ‘사람’으로 살라고 말씀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