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마음에 안 드는 친구가 있으면 안 놀면 그만이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불가능하다. 공통의 목적으로 모인 사람들이 서로 ‘사회적 존재’임을 인식하는 공간이 바로 회사이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적 수준과 업무 능력이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감할 것이다. 명문대 학위를 줄줄이 따낸 똑똑한 사람이라 해도 회사에서는 눈치 없고 무능한 사람일 수 있다는 말이다.
김남인 작가는 <회사의 언어>(사진)에서 업무 하나에도 다수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보폭을 맞춰야 하는 곳이 회사라고 정의했다. 또 업무를 동료와 상사의 시각, 더 넓게는 회사의 시각으로 이해하고 표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회사의 언어’가 무엇일까? 한국어, 영어처럼 회사에서만 쓰이는 별난 언어가 있는 것일까?
회사에서 눈에 띄게 일 잘하는 인재가 되려면 우선 자신이 어떤 회사의 언어를 구사하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평소 사람 좋기로 소문난 A과장은 회의 자리에서도 “그래 좋아. 추진해봐” 말하며 직원들의 기를 살려준다. B과장은 부하직원들에게 지시만 할 줄 알지 정작 본인이 하는 일은 고함지르기가 전부이다. 두 과장 모두 반갑지 않은 상사이지만 만약 당신이 둘 중 한 명과 일해야 한다면 누구를 선택하겠는가.
A과장은 자신이 뱉은 쓴소리로 괜한 갈등을 부추길까 두려워하는 유형이다. 겉으로는 사람 좋아 보일 수 있겠지만 다른 말로 하면 우유부단하고 결정력이 부족하다. 차라리 B과장의 업무 추진력이 더 뛰어날 수 있다. 과장급 임원의 위치는 현장반장으로서 업무를 배분하고 결과물을 취합하는 자리이다. 지시를 내린다는 것은 해당 업무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팀원 입장에서는 해야 할 일을 빠르게 전달받고, 중간 중간 업무 과정을 보고하는 형태가 더 능률적이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다. 직원들의 의견을 듣고 마냥 용기를 북돋워주는 상사는 유능한 상사가 아니다. 핵심을 짚어내는 빠릿빠릿함으로 업무를 전진시키는 사람이 누구나 인정하는 ‘일 잘하는 사람’이다.
신입사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신입에게 ‘눈치’는 생명줄과 같다. 횡설수설하는 상사에게 정곡을 짚어 말하는 능력, 수십 장의 보고서를 한 장으로 요약해 상사의 책상 위에 올려놓는 능력. 눈치가 빠른 사람은 대체로 이 같은 업무 능력이 뛰어나다. 상사가 원하는 것을 눈치 빠르게 알아챈 데에는 열심히 들은 것이 유효했다. 일을 하는데 있어 듣기와 말하기의 비율은 8:2다. 듣기 고수인 사람들은 겉으로는 조용해 보일지 몰라도 머릿속은 누구보다 분주하다. 말하는 사람의 의중을 끊임없이 재조립하고 자기식대로 흡수한다. 갓 입사한 신입사원의 첫 업무가 ‘회의 속기’인 것도 바로 듣기 고수가 되기 위한 훈련 과정 중 하나이다. 회의 내용을 전부 집중해서 듣고 긴 회의를 한 줄로 요약해보는 연습은 필수다. 핵심이 무엇이지 파악하면 업무는 훨씬 선명해질 테니까.
결국 회사에서 핵심을 파고드는 말을 잘 하기 위해서는 잘 들어야 하고, 들은 결과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능력도 갖춰야 한다. 일 잘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상사가 왜 이런 지시를 내리는지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깔끔하게 처리한다. 그리고 중간보고를 잊지 않는다. 업무 추진 과정을 공유하면 잘못된 점을 보완하고 수정할 수 있다. 상사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중간보고 없이 마감 시한에 임박해 제출하는 ‘서프라이즈’다.
‘회사의 언어’라는 것이 결코 글처럼 간단하지는 않다. ‘다,까’로 끝나는 신입 사원의 군기 가득한 말투도, 사내 정치로 우뚝 서려는 부장들의 느물느물한 언어도 아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갈등이나 책임을 피하기 위해 에둘러 말하는 것도, 그렇다고 자기 성과를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도 아니다. 지혜로운 소통의 달인이 업무수행능력 또한 뛰어나다. 능력있는 사람들의 고급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바로 ‘회사의 언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