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우리에게 최고의 신발은 나이키 운동화였다. 중학교 입학 후 첫 운동회를 앞두고 아빠는 나이키 운동화를 사주셨다. 반 대표로 계주를 뛰게 된 딸을 위한 아빠의 뒷바라지였다. 당부도 잊지 않으셨다. “좋은 신발 사줬으니까 1등하고 돌아와야 한다.” 그때 학생들 사이에 제일 좋은 신발은 나이키 운동화였다. 지금까지도 나이키 운동화는 비싸고 좋은 신발, 최고의 운동화라는 인식이 공식처럼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다. 그들이 매 시즌마다 내놓는 고기능성 운동화를 보면서 인체공학적 과학설계의 끝판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우리의 상식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주장이 있다. 그 어떤 뛰어난 도구보다 맨발인 상태가 뛰거나 걷기 가장 적합하다는 주장이다. ‘발을 신발 속에 넣는 것은 깁스를 하는 것과 같다. 신발을 신으면 힘줄이 딱딱해지고 근육이 오그라든다. 발은 압력을 받으면 강해지도록 만들어졌다. 할 일이 없게 만들면 무너진다. 하지만 제 일을 하게 만들면 우리 발바닥은 무지개처럼 아치를 그린다.’ 맨발로 뛸 때 우리 몸은 본능적으로 자동 조절 상태를 유지하게 되지만, 발에 완충작용을 강화하거나 무릎 보호 기능을 덧대면 그만큼 약해진다는 주장이다.
미국의 스포츠 칼럼니스트 크리스토퍼 맥두걸은 달리기를 하는 사람 열 명 중 여덟 명이 매년 부상을 입는 반면, 마라톤은 우습다는 듯 몇 백 킬로미터씩 달리는 러너들을 보면서 궁금증을 갖기 시작했다. 멕시코 타아우마라족은 코퍼캐니언의 거친 황무지를 얇은 샌들 하나로 누빈다. 험준한 길을 달리면서도 아무런 부상을 입지 않고 오히려 각종 성인병으로부터 자유롭다. 타라우마라족의 건강비결을 밝히기 위해 수 많은 울트라러너, 스포츠의학 연구가, 과학자들이 그들의 생활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관찰하기 시작했다.
<본 투 런, Born to Run>(사진)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울트라러너 스콧 주렉을 비롯한 유명인들과 타라우마라족이 벌인 50마일 경주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실제로 나이키 스포츠화를 신고 달렸을 때 입은 부상과 타라우마라족이 맨발로 달린 뒤 입은 부상을 비교해보면 스포츠화가 과연 스포츠를 위한 신발이 맞는가 의문을 갖게 된다.
맥두걸 작가는 현생 인류가 진화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달리기임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것이 달리는 능력 덕분임을 이론과 실제를 오가며 입증하고 있다. 과학자들이 제시한 의학 사례를 바탕으로 ‘인간은 달리기 위해 태어났다’고 결론지었다.
인류는 장거리 달리기를 통해 살아남아 번성하고 이 행성 전체에 퍼졌다. 먹기 위해 달리고, 먹히지 않기 위해 달렸다. 짝을 찾기 위해 달리고, 그녀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달렸다. 사람들이 ‘열정’과 ‘욕망’이라는 감상적인 이름을 붙인 다른 모든 것처럼 달리기는 우리에게 필수적이었다. 오늘날은 몇만 년 전 조상들처럼 먹이를 사냥하기 위해 뛰어야 하는 시대가 아니다. 먹고 사는 일로 뜀박질을 하지 않게 된 이래 인간의 질주 본능과 잠재 능력은 가끔 스포츠회사가 주최하는 마라톤대회 정도가 아닌 이상 일상생활에서 발현될 기회가 없다. 몸이 해야 할 일을 빼앗은 대가는 혹독했다. 수렵채취 시대를 지나 현대에 이르러 인간이 달리기를 멈춘 후 인간은 폭력과 비만, 질병, 우울, 극복할 수 없는 탐욕 등 새로운 성인병이 보고되고 있다.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다. 인류 최초의 순수예술인 달리기를 계속하는 것이다. 인류는 ‘달리기 위해 태어난’ 또는 ‘잘 달리도록 진화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마침6월은 달리기 안성맞춤인 계절이다. 본격적인 야외 운동에 앞서 스포츠 매장부터 기웃거리는 당신을 위해 에밀 자토펙(1952년 헬싱키 올림픽경기대회에서 3종목 석권하고 수많은 세계기록을 수립한 체코슬로바키아의 장거리 육상선수) 선수의 말을 전한다. “우승을 원한다면 단거리를 경주하라, 그러나 인생을 경험하고 싶다면 장거리를 달려라”
거추장스러운 장비, 남을 의식한 겉치장이 아닌 자신의 몸과 정신만을 정직하게 활용해 긴 호흡으로 달리라는 의미다. 본능이 이끄는 대로 달리다 보면 숨이 차는 것도 잠시, 어느새 즐거운 놀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