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끌로이 Jul 20. 2017

이민자 문학은 없다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동포는 한국사람일까, 미국사람일까? 미국 시민권을 갖고 미국에서 살지만 여전히 한국 정서를 갖고 있다면? 이민세대가 공통적으로 겪는 혼란이다. 어는 울타리에도 온전하게 속하지 못하고 외계인의 된듯한 심정은 같은 처지의 외지인만이 이해할 수 있다.  

줌파 라히리 작가는 영국에서 태어난 뒤 미국으로 이주했다. 부모님이 인도 벵골지방 출신인 탓에 인도계 영국태생 미국인이라는 긴 수식어로 자신을 소개해야 했다. 그녀의 성장 배경에서 알 수 있듯이 작품 대부분이 미국에 정착한 이민자의 정서를 다루고 있다. 그녀의 첫 단편소설집 <축복받은 집>(사진)에는 인도 벵골지방 출신의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책은 9편의 단편소설을 담고 있다. 아이를 사산한 부부는 소통을 시도하지만 엇나가기만 하고(‘일시적인 문제’), 불륜에 빠진 남녀는 서로 같은 생각을 한다고 믿지만 결국 착각임을 깨닫는다(‘질병의 통역사’). 속한 국가는 다르지만 같은 말을 쓰는 지인 사이, 아이가 다 컸다고 생각하는 부모와 자식 사이, 불륜 관계인 연인 사이 등 작가는 개인이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주목하고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상처가 있다. 그리고 그 상처는 끝내 치유되지 못한 채 소설이 끝난다. 동화 같은 결말이 아닌 지극히 현실적인 현재진행형 결말이기에 이 짤막한 단편들이 주는 울림이 더 큰지도 모르겠다.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살아온 궤적 안에 인도와 인도인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소설에서도 자연스럽게 자전적 이야기가 묻어난다. 특히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륙>에 등장하는 주인공 남자는 줌파 라히리 작가 아버지를 모델로 했다. 인도인으로 태어났지만 성공을 위해 영국, 미국으로 이동해야 했던 아버지의 고단한 삶을 차분하게 되짚고 있다. 고향을 떠난 이민자들에게 새로운 곳에 대한 설렘, 외로움, 이별은 익숙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세월이 흘러 자녀들을 독립시킨 후에도 남자는 여전히 미국에 와서 처음 세 들어 살던 집을 잊지 못한다. 공교롭게도 남자가 미국에 터를 잡은 해는 1969년, 아폴로 11호가 역사상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한 해였다. 그 우주비행사들은 영원한 영웅이긴 하지만 달에 겨우 몇 시간 머물렀을 뿐이다. 남자는 이 세계에서 거의 30년을 지내왔다. 그 모든 것이 평범해 보여도 남자에게는 상상 이상의 것으로 여겨졌다. 

남자가 세 들어 살던 집에는 103세 할머니가 함께 살고 있었다. 남자는 겨우 6주동안 머물다 집을 떠난 뒤 우연히 신문에서 할머니 부고 기사를 읽게 된다. 한 세기에 비하면 6주는 시간이랄 것도 없었다. 할머니가 한 세기를 살아내면서 수 많은 일을 겪었을 테지만 ‘신사’라고 부른 사람은 남자가 유일했다. 할머니가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인연을 맺은 사람이 남자였고 그만큼 할머니에게도 6주는 굉장한 시간이었으리라 짐작된다. 이제 막 미국으로 이주해 새 삶을 시작하는 남자와 임종을 앞둔 할머니 두 사람 모두에게 6주는 중요한 순간이었고 어쩌면 인류가 달을 정복하기 위해 보낸 수많은 시간보다 더 값질 수도 있었다. 이렇게 소설은 세월의 아스라함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줌파 라히리 작가의 작품에 대해서는 유독 ‘이민자 소설’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하지만 작가는 그런 문학이 있다면 ‘거주자 소설’은 무엇이냐고 반문한다. 작가는 평생 인도인과 미국인의 경계에서 느껴왔던 문제의식에 대해 가장 익숙한 인도를 배경 삼아 소설로 녹여냈을 뿐이다. 실제로 소설에 등장하는 인도인을 들어내고 한국인을 넣어 음식, 지명, 옷차림을 대입한다 해도 이야기가 크게 왜곡되지는 않는다. 결국 작가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보편적으로 느끼는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거기에 이민자가 갖고 있는 근원적 슬픔, 처량한 그림자를 얹어 마치 우연히 들른 식당에서 맛본 퓨전요리 같은 오묘한 매력을 뿜어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