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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로이 Oct 28. 2017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



사랑을 받을 줄만 알고 주는 법은 몰랐던 에드워드 툴레인이라는 토끼 인형이 있었다. 에드워드를 예뻐하던 소녀 애빌린은 밥 먹을 때도, 잠 잘 때도 늘 에드워드와 함께 했다. 장난감이 아니라 친구라고 여기고 에드워드가 창 밖을 내다볼 수 있도록 옆으로 누일 줄 아는 소녀였다. 함께 배를 타고 여행하던 중 토끼는 갑판에서 바닷속으로 떨어지게 된다. 사랑해주던 가족들과 처음으로 헤어지게 되고, 이후 여러 번 주인이 바뀌면서 파란만장한 삶을 겪게 된다.  


동화작가 케이트 디카밀로가 쓴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사진)은 몸도 마음도 차가운 도자기 인형 에드워드가 사랑을 주는 방법을 알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깊은 바다에 빠져 주인과 헤어진 이후부터 몇 년 동안 새로운 주인들을 만난다. 버려지고 또 버려진다. 그 과정에서 에드워드는 항상 곁에 있어서 당연했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깨닫는다.   


토끼가 만난 사람들은 다양했다.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지 297일만에 어부의 그물에 걸려 난생 처음 프릴 달린 꽃무늬 원피스를 입는다. 남자 토끼였던 에드워드는 당황스러웠지만 어둡고 차가운 바다 밑에 비하면 어부의 집은 천국이었다. 그렇게 행복한 일상에 빠져들 무렵 토끼를 질투하던 어부의 딸이 토끼를 쓰레기장에 던져버린다. 거기서 또 40번의 밤낮을 보낸다. 토끼 파이를 좋아한 강아지가 토끼를 쓰레기더미에서 끄집어내 부랑자 주인에게 데려간다. 이후 토끼는 부랑자들과 함께 떠돌아다니며 7년을 보낸다. 생활에 익숙해져 갈 즈음, 기차 화물칸에 숨어 있던 방랑자들이 단속요원에 발각된다. 토끼는 기차 밖 풀밭으로 던져져 마을 노인에게 발견된다. 밭작물을 지키는 허수아비로 지내다 마침 노인의 밭에서 일하는 소년이 나무에 묶여 있던 토끼를 풀어 여동생에게 선물한다. 동생이 몸이 아파 죽자 토끼는 또 다시 거리로 나서게 되는데…  


토끼의 고난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소년과 거리를 헤매다 식당 주인이 던지는 바람에 토끼 머리가 깨지기도 하고, 21조각으로 깨진 머리가 수리공에 의해 맞춰진 뒤 인형 가게 진열대에 놓이기도 한다. 처음 사랑 받았던 소녀의 손을 떠난 이후 ‘에드워드’는 ‘수잔나’로, 다음 주인을 만난 뒤 다시 ‘말론’으로, ‘클라이드’로 ‘쟁글스’로 여러 번 이름이 바뀐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번씩 뒤돌아볼 정도로 우아한 자태를 뽐내던 에드워드의 매끈한 삶이 이리 저리 치이면서 쓰린 맛을 알아가는 과정이 재미있다.   


에드워드가 거쳐간 주인들은 모두 각기 다른 삶의 역사를 지녔다. 자신들만의 아픔과 사랑의 색깔로 에드워드에게 영혼을 부여한다. 그 과정에서 받는 사랑과 관심이 당연한 줄만 알았던 에드워드는 처음으로 주변 사소한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배운다. 어부 내외의 따뜻한 삶 속에, 집 없이 거리를 떠도는 방랑자들의 삶 속에, 어린 고아 남매의 삶 속에 들어가 만남과 이별, 죽음, 가난을 몸소 겪으면서 에드워드의 관심은 자신에게서 주변 사람들로 넓어져 그들의 인생을 보듬을 줄 아는 깊고 넓은 사랑을 하게 된다.   


‘나를 사랑할 누군가’가 아니라 ‘내가 사랑할 누군가’를 기다리는 순간, 달라진 에드워드 앞에 거짓말처럼 처음 주인이었던 소녀가 나타난다. 훌쩍 커버린 소녀에게 이제는 에드워드가 사랑의 빚을 갚을 차례다. 돌고 돌아 처음의 자리로 간 에드워드는 이제 더 이상 교만하고 수동적인 도자기 인형이 아니다. 남의 아픔에 귀 기울이고 자신을 희생할 줄 알며, 기다릴 줄도 아는 따뜻한 에드워드로 탄생한다.   


언젠가 여행 중 엔틱 보석 가게에 들른 적이 있다. 그곳에서 봤던1900년대 아르누보 시대 다이아몬드 반지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110년이 훌쩍 지나도록 눈에 띄는 흠집 하나 없었다. “이 반지를 끼고 다니던 여자는 분명히 보석을 아끼는 돈 많은 여자였겠지. 공주님은 아니어도 귀족은 됐겠지. 이 반지가 어쩌다 보석 가게 진열대에 서있게 됐는지는 몰라도 앞으로 반지도 주인도 사랑 듬뿍 주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름 모를 여인네의 인생을 상상하면서 잠시 행복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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