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잃어버리다. 그것도 두 놈을
힐튼 라군에서 투문정션을 떠올리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션과 놀기 위해서 진주만으로 향했다. 그러니 금요일은 션 맘도 좀 쉬어야 할 테고 나 역시 휴식이 필요했다. 저녁을 일찍 먹고 어슬렁어슬렁 산책을 나왔다. 매주 금요일 저녁 7시 30분이면 힐튼 하와이안 빌리지(이하 힐튼)에서 불꽃놀이를 거행한다. 그 시간 즈음에 와이키키에 있는 사람들은 다 한 방향으로 걷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인파에 몸을 맡기고 걸으면 된다. 술렁~ 술렁~ 힐튼 라군(lagoon)의 분위기는 완전 축제 분위기다. 라군(Lagoon)이라는 것이 해류에 의해서 운반된 모래들이 바다를 막아서 호수를 만드는 것이라고 배웠는데 이 라군은 자연이 아니라 힐튼이 만든 거대한 작품이다. 이렇게 아름다우니 인공이라고 다 나쁘다고 할 것도 없다.
[와이키키를 배회하는 맛이 있다. 물론 두 아이를 건사해야 하므로 되게 멋들어지진 않다.]
힐튼 라군에 도착하니 달빛이 물에 비쳐 왠지 맥주 하나 들고 물속으로 들어가고 싶게 생겼다. 게다가 음악 소리는 또 어찌나 경쾌한지 나도 모르게 몸을 흔들흔들하고 있다. 참 뜬금없는 생각인데 와이키키 하늘에 떠오른 달과 힐튼 라군에 비친 달을 보며 어린 시절 부모님 몰래 친구들과 봤던 투문정션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면 흉을 보실랑가 (저만 봤던건 아니죠?)
밤이 될수록 분위기는 익어갔다. 낮 동안 뜨거운 햇살 아래 실컷 놀았던 사람들은 이제 예쁘게 꾸미고 근사한 저녁을 먹고 밤을 즐기러 나온 것이다. 비록 나는 청국장에 밥을 비벼 먹고, 슬리퍼를 끌고, 이 두 어린이들을 모시고 나오기는 했으나 마음만은 홍대 앞 클러버 저리가라였다.
“팡팡!!” “팡팡!!”
폭죽 터지는 소리는 둠칫둠칫~ 리듬을 맞추며 하늘을 꽉 채웠다. 형형색색 불꽃들이 라군에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불꽃도 라군도 마치 자연의 한 부분 같았다. 언제 이렇게 화려한 불꽃놀이를 코앞에서 볼 수 있을까. 연신 넋을 놓게 했다. 애들이 텔레비전 속으로 기어들어 가듯이 나도 하늘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아! 아이들... 얘네들 어디 갔지?
분명 두 분의 손을 양쪽에 꼭 잡고 왔는데 잠시 멍 때리는 사이에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다. 아, 진짜 정말 잠깐이었는데 이 정도의 느슨함도 용납할 수 없는 거야? 설마 어디 멀리 가지는 않았겠지? 화도 나고 무섭기도 하고 눈에 뵈는 게 없어졌다. 사람들을 헤치고 다니며 제발 둘이 같이 있어라 주문을 외웠다. 설마 둘이 찢어져서 따로따로 방황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상황이 이 지경이 되니 내 기분을 업 시켜줬던 음악들이 성가셔지기 시작했다. 달빛이며 불꽃이며 다 됐고 불이란 불은 싹 다 밝히고 싶었다. 나는 얼른 지나가는 힐튼 직원을 붙잡고 최대한 진정하며 말을 했다.
“아이를 잃어버렸다. 어떻게 해야 하냐?”
직원은 바로 남아인지 여야인지, 몇 살인지 등등 인상착의를 물었다. 남아도 있고, 여아도 있다니깐 완전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래, 내가 정신 나간 엄마다.) 그리고 나의 핸드폰 번호를 받고는 흩어져서 찾기 시작했다. 몇 분 안 되는 사이에 나는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삼십 년은 늙은 것 같았다. 결국 멀지 않은 곳에서 이 소머즈 같은 엄마의 눈으로 두 분을 발견 하기는 했으나, 아이들을 보는 순간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눈물 빼는 뭉클한 한 장면이 아니라 머리가 터질 듯한 두성으로 버러럭이 바바박 나오기 시작했다. 엄마가 하늘의 불꽃과 라군에 비친 달에 빠진 사이에 아이들은 라군 옆에 정박해 놓은 카약과 패들링 보트로 이끌려 갔던 것이다. 아무튼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다음날 아침 아이들은 눈 뜨자마자 라군 비치에서 본 문제의 패들링 보트를 타러 가야 한다고 부지런을 떨었다. 엄마의 소원은 토요일이라도 제발 내 눈이 떠질 때까지 잠 좀 잤으면 좋겠는데 어찌 된 일인지 이 분들은 주말이면 더 일찍 일어나서 소란을 피우니 참 신기하고도 오묘한 생체 시계들이다.
힐튼 내에 있는 수영장은 카드키를 대고 들어가야 하지만 라군 비치는 힐튼에 묵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오픈된 곳이다. 라군 비치에 들어서는 순간, 지난밤 나를 카오스로 몰고 갔던 카약과 패들링 보트가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들은 바로 “엄마 우리 저거 타요”를 발사하는데 이럴 때는 대략 난감하다. 우선 내가 카약의 노를 저어 본 적도 없을뿐더러 나도 무섭다. 설령 카약이 아니라 2인용 패들링 보트를 탄다고 해도 한 분과 타는 동안 다른 한 분은 어쩌라는 건지 방법이 없었다. 역시 남편이 필요했고 어쩔 수 없이 또 직원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일단 물어나 봐야 한다.
“내가 보트 두 개 빌리면 하나는 네가 노를 좀 저어 줄 수 있냐?”
역시 친절한 하와이안들이다. 보트를 하나만 빌리고 아이를 번갈아 가면서 태워 주겠다고 한다. 솔직히 보트를 두 개 빌리는 것이 부담스럽긴 했는데 이렇게까지 생각해 주니 음료수라도 하나 사 줄까 생각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직원은 노란 메리야쓰에게 아는 척을 하는 것이다.
“너구나! 어제 엄마 잃어버렸지?”
아! 내 혼을 쏙 빼놨던 지난밤, 그리고 보니 어제 아이들을 찾을 때 도와줬던 그 직원이었다. 나는 어떻게 감사를 해야 하냐며 새우 트럭에서 새우나 한 접시 하겠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지금도 그때도 앞으로도 계속 감사한 사람이었다. 아이들은 엄마가 얼마나 놀랬는지 엄마의 목소리가 얼마나 떨렸는지 기억한다. 나 역시 그 빌어먹을 투문정션 달빛 아래 등줄기에서 흐르던 서늘한 땀방울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웬걸 이 직원은 전혀 다른 소리를 하는 것이다.
“It was really strange last night, mommy was calm and kids were calmer”
"I thought you must be a nanny."
오잉? 이게 뭔 소리? 눈물을 글썽이며 뛰어다녔는데 꺼이꺼이 울기라도 했어야 했나.
분명 그 순간 뜬금없는 투문정션의 음기가 사람의 혼을 뺏어 갔으리라 생각한다. 다시 바라본 라군에 비친 달빛은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을 떠올리게 했다. 그렇지! 나도 제정신에는 이런 고상한 것들도 생각한다. 하늘에 뜬 달, 바다에 뜬 달, 호수에 뜬 달, 그리고 술잔에 뜬 달과 님의 눈동자에 비친 달이여! 제정신이 돌아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애써 고백하건대, 투문정션이라는 영화는 실제로 달이 나왔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남는 게 없는 영화였다. 그저 자극적인 영화 제목과 그 영화를 보기 위해 말괄량이들이 몰래 애썼다는 기억뿐. 다시 말해, 나에게 힐튼 라군은 화려한 불꽃놀이도, 삐질삐질 땀 흘리며 신나게 저었던 패들링 보트에 대한 추억도 어디론가 스며들고 아이를 잃어버려 머리에 꽃 단 여자처럼 뛰어 다녔던 기억으로 물들어졌다. 그거나 저거나 세월이 지나니 웃기긴 매한가지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