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bargain hunter
션 맘이 축구 클럽에 초대해 준 이후로 우리는 축구 장비를 준비해야 했다. 아이들 안전을 제일로 생각하는 미군 아저씨들이라서 그런가 축구팀에는 끼어 줄 수 있지만 축구화와 축구스타킹 그리고 씬 가드(shin guard)는 반드시 착용하고 오라는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쇼핑에 나섰다. 워드 스트리트(Ward st.)를 지나가다가 몇 번이나 본 스포츠 오소리티(Sports Authority)에 있을 것 같았다. Sports Authority라고 대문짝 만하게 쓰인 붉은 글씨는 왠지 마구 들어가고 싶게 만든다.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 엄청난 크기의 매장에 한 번 놀라고 또 그 안을 꽉 채운 수많은 스포츠 기어에 눈이 돌아간다. 게다가 가격은 또 왜 이렇게 착한지 내 눈도 휘둥그레지니 자칭 스포츠맨이신 신토불이 사나이는 이미 여기저기 혼자 돌아다니며 구경 중이었다. 이 가게를 몽땅 외워버리려고 하시는지 이렇게 쇼핑에 적극적인 모습은 일 년에 몇 번 볼 수 없는 진귀한 풍경이었다.
아이의 축구화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엄청나게 많은 상품들이 샤방샤방 웃고 있었다. 물론 가격도 천차만별이었다. 몇 개를 신어보고 아이가 맘에 드는 축구화를 68불에 득템을 했다며 계산하고 나오는데 어라, 바로 옆에 로스(Ross)가 보인다. 로스라는 매장은 완전 신상품은 아니고 재고를 싸게 파는 가게인데 나라는 사람은 한 시즌 트렌드에 뒤처지고 말고 할 트렌드도 없는 사람인지라 가장 중요한 것은 가격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엄마 '잠깐'만 구경 좀 하자며 로스로 향했다.
쇼핑의 ‘잠깐’이란 도대체 몇 분, 몇 시간을 의미할까? 지난번에 키아모쿠에서 들린 로스에서는 내가 구경하고 싶은 물건들과 아이들이 구경하고 싶은 물건들이 다른 층에 있어서 제대로 몰입을 할 수가 없었다. 그때의 악몽이 떠올랐다. 내 옷을 고르고 있으면 아이들이 지루해서 똬리를 틀고 아이들 물건 고르는 곳에서 하염없이 기다리자니 내가 입이 돌아갈 판이었다. 그런데 여기는 모든 것이 한 층에 다 있었다. 내가 구두를 구경하든 옷을 구경하든 머리만 돌리면 아이들이 장난감 코너에서 구경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누가 정한 것도 아닌데 로스에 입장과 동시에 흩어졌다. 두 아이는 아이들 코너로 사라져서는 장난감도 구경하고 책도 구경하고 같은 처지의 아이들과 놀았다. 나는 그간 못 풀었던 쇼핑 욕구를 해소하느라 정신없이 보물 찾기에 나섰다. 아이들도 열심히 구경하다가 힘들면 알아서 엄마를 찾아와 이렇게 카트로 들어와 쉬었다 간다. 처음에는 이 자유로운 영혼들이 부끄러웠으나 친절한 로스 직원들이 웃으며 끌어주기도 했다.
[사실, 저 빨간 머리 인형은 내가 사줬지만 아직도 볼 때마다 무섭다.]
옷, 신발, 가방뿐만 아니라 집안 살림들 까지 없는 게 없었다. 하와이에 처음 오자마자 월마트가 아니라 로스에 왔어야 했다. 컵, 도마, 런치박스, 샴푸, 바디샴푸, 타월 등등 우리가 초기에 구입했던 살림살이들이 훨씬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일단 오늘 여기를 뚫었으니 자주 와야겠노라며 아주 만족 해 했다.
저쪽에서 신토불이 사나이가 축구화를 들고 온다. 아이들 신발 코너에 축구화가 하나 있는데 딱 자기 사이즈라는 것이다. 옆 집 스포츠 오소리티에서 이미 68달러를 주고 샀는데 이걸 어쩌나? 그런데 가격표를 보는 9.9달러 되시겠다. 나는 살짝 아들의 눈치가 보였다. 로스 진열대에 있던 축구화와 스포츠 전문 매장의 박스 안에 곱게 포장되어 있던 것이 같은 상태일 수는 없었다. 9.9달러짜리 광택을 잃은 축구화냐 68불짜리 반짝이는 축구화냐 나는 아들에게 선택권을 넘겼다. 신토불이 사나이는 너무나 명료했다. 축구화는 어차피 한 번 신으면 더러워지는데 왜 돈을 더 주고 사냐며 그래서 본인이 축구화를 들고 엄마를 찾아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누가 봐도 68달러짜리 축구화가 예쁘긴 했다. 이미 산 물건인데 그냥 가져갈까도 생각했다가 아들이 이런 생각을 하니 나 역시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잠깐(?) 동안의 로스 쇼핑을 마치고 다시 스포츠 오소리티로 갔다. 좀 전에 사가지고 간 물건이므로 영수증과 결제했던 카드만 있으면 환불은 당연히 가능했다. 반짝이는 축구화를 그냥 보내는데 엄마 마음은 괜히 미안했는데 정작 신토불이 사나이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쨌거나 68달러 축구화를 포기하고 저렴한 것을 선택해준 고마움을 맥도널드 해피밀로 표현하겠노라 했다. 패스트푸드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 맥도널드 햄버거는 싫어도 해피밀에 나오는 장난감은 좋아하니 이런 게 마케팅의 힘이 아닌가 싶다. 오빠 덕분에 해피밀 장난감을 득템 하신 노란 메리야쓰는 어쩐 일로 오빠 최고라며 너무너무 멋지다며 연신 칭찬했다.
맥도널드에 앉아서 우리 모두 행복했다. 그리고 보니 워드 스트리트에 위치한 로스는 정말 엄마들에게 추천할 만한 위치에 있다. 로스, 맥도널드, 스포츠 오소리티(지금은 없지만), BA-LE, 심지어 화장실까지 한 줄로 서 있으니 로스에 들어간 엄마를 자유롭게 해 줄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인 것이다.
로스에서 장난감을 산 이후에 변화가 좀 있었다. 한국에서야 본인의 살림이 많으니 장난감 가지고 놀다가 그림을 그리다가 나가서 뛰어놀면 서로 부딪칠 일이 없었는데 하와이에 와서는 하루 종일 붙어 있어서 그런지 둘이 눈만 뜨면 싸웠다. 처음에는 집에도 많은 장난감을 여기까지 와서 사야 하느냐며 안 사줬던 것들을 로스의 저렴한 가격에 혹하여 사줬다. 그런데 아이들은 자신의 장난감으로 나름 낯선 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푸는지 둘 간의 다툼이 줄어들었다. 진작 사줄걸 그랬다.
2016년에 아쉽게도 미국 전 지역의 스포츠 오소리티는 문을 닫았다. 심각한 경영난으로 폐업을 했다고 들었다. 다른 지점은 모르지만 축구화를 환불했던 곳은 로스 옆에서 장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68달러짜리 축구화를 환불한 것이 조금 미안했다.
끝나지 않은 Ross 사랑
하와이에선 쇼핑을 너무 많이 해서 수트케이스를 하나 더 산다는 말이 있어요. 제 경우는 쇼핑을 위한 수트케이스가 아니고요. 애초에 하와이에 갈 때 하나의 수트케이스에 세 명의 짐을 때려 넣어 갔기 때문에 돌아올 때는 가방이 더 필요했어요. 특히, 로스에는 이런 여행용 가방들이 종류도 다양하고 가격도 착합니다.
매주 화요일은 Senior Discount Day라고 해서 55세 이상이신 분들은 10% 할인을 해 주고 있어요. 혹시 부모님을 모시고 가신다면 효자상이라고 생각하시고 Ross에서 쇼핑하세요. 워드 스트리트에 있는 로스 옆에는 BA-LE라는 식당이 있는데요 화려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은 아니지만 현지인들이 출퇴근하면서 들려서 음식을 테이크 아웃합니다. 샌드위치와 베트남 음식들이 그럭저럭 먹을 만해요. 아! 그리고 진한 베트남 커피가 땡기신다면 추천합니다. 그러나 이미 말씀드렸듯이 뭐 화려한 식당이 아니고요.
bargain hunter라는 표현 아시나요? 핫딜을 잘 잡는 사람을 뜻합니다. 바로 저 같은 사람이죠. 쿄쿄쿄쿄 (제 남편이 거품 뭅니다)
Are you a bargain hunter? 그렇다면 ROSS에 잘 오신 겁니다.
보물찾기 하기에 딱 좋은 곳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