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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승은 Jun 20. 2017

하와이 이올라니 궁전에서 상진이 되신 딸님 ㉒

우선, 전국에 계신 상진 씨, 진상 씨께 사과드립니다. 

시작하기에 앞서, 전국에 계신 ‘진상 씨’, ‘상진 씨’께 사과의 말씀부터 올립니다.


약속 없는 화요일, 일찍 일어날 필요도 없고 어디 가야 할 곳도 없으니 좀 느긋하게 관광객 놀이나 해 볼까 했었다. 그런데 너희들 뭐냐? 왜 아침부터 싸움질이야? 코리안 쌈닭들이 와이키키의 아침을 깨우면 이 애미의 0교시는 고래고래 득음 클래스다. 이거 공복에 못 할 짓이구나. 이럴 때는 얼른 나가는 게 상책이다.  


한국의 내비게이션이 얼마나 좋은 물건인지 하와이에 가면 절감을 한다. 만약 한국에서 ‘ㅅㅅㄱㅂㅎㅈ’이라고 찍으면 ‘신세계백화점’으로 시작해서 주차장까지 검색할 수 있는데 ‘이올라니 궁전’을 내비게이션에 찍고 가니 정말 이올라니 궁전 앞까지 안내한다(다른 곳도 다 마찬가지).  그리고는 “좋은 여행 되세요”라며 네비 언니는 알아서 퇴근하시고 이런 줸장, 목적지를 앞에 두고 계속 돌게 된다. 이때 뒤에서 울리는 소리 “엄마! 우리 왜 자꾸 돌아? 엄마 길 몰라?” 조용히 해라, 나도 들어가고 싶거든! 결론적으로 몇 바퀴 돌다 보니 이올라니 궁전 정면에 나 있는 작은 길이 보였다. 


빨간 선으로 표시 된 작은 길이 운전하면서 잘 안 보여요. 


이올라니 궁전으로 들어가는 작은 길이 Richard’s st에서 좌회전을 받으면 바로 나타나기 때문에 깜빡하면 지나치기 쉽다. 그렇게 눈앞에 목적지를 두고 속 터지게 돌다가 겨우 주차를 했다. 주차만 했을 뿐인데 이미 피로 게이지는 집에 가야 할 시간이다. 힘을 내어 ‘궁전’이라는 곳의 계단을 사뿐사뿐 밟고 올라갔다. “얘들아, 엄마는 전생에 왕족이었나 봐. 궁전에 오면 집에 온 거 같아. 캬캬캬~” 이게 말이야, 소야... 헛소리를 해대며  축 쳐지는 나의 몸뚱이를 일으켜 세워본다. 이올라니 궁전 앞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서 입장을 기다렸다. 그냥 아무 때나 온다고 막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보다. 시간 간격을 두고 입장시키고 있었다. 막간을 이용하여 덧신을 신고 셀프-레드(self-led) 오디오 가이드를 받는다. 직원이 친절하게 묻는다.


“중국어 줄까? 일본어 줄까?” 


 


'어라~ 이게 뭔 개 풀 뜯어먹는 소리야, 한국인들이 하와이에 와서 쓰는 돈이 얼마인데 너네 아직까지 한국어 가이드도 없이 장사하고 있냐?'


순간 이걸 그냥 넘어갈까 아니면 좀 뭐라고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웃으며 “Korean”으로 달라고 했다. 예상대로 참하게 생긴 하와이 아가씨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래서 바로 물었다. “그러면 Korean brochure는 있니? 아니면 Korean staff라도?”집요한 한국 아줌마의 추궁에 직원이 대충 사과하는 걸로 마무리됐지만 나는 그 이후로 어딜 가서나 “Korean audio guide”를 찾기로 했다. 지금 한국에서 하와이 직항이 하루에도 몇 번씩 뜨고 내리는데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 하나 없다는 게 화가 났다. 솔직히 오디오 가이드가 있어도 열심히 안 듣는 경우도 있지만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계속 찾아줘야 한다. Korean audio guide, Korean brochure, Korean staff를 자꾸 찾아야 얘네들이 돈을 들여 제작을 하고 채용을 한단 말이다. "한국어로 된 건 없대! 그냥 빨리 보고 가자~"하고 끝나면 우리 세대는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 아이들 세대에도 영어를 배우지 않으면 내 돈 쓰고도 제대로 된 여행을 못하게 된다. 영어로 밥벌이를 하고 있는 1인이지만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것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영어 못해도 당당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생각을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  




결국 영어로 된 오디오 가이드를 목에 걸고 입장했다. 앤틱 한 가구들과 고급스러운 카펫들이 힘들었던 여정을 잊게 했다. 기분이 좋아진 애미는 이리저리 사진을 찍어 한국에 있는 절친 ‘앤틱 광녀’에게 카톡으로 날리기 시작했다. (플래시만 터뜨리지 않으면 사진 찍을 수 있다)


“야! 이거 봐봐. 이 정도 그릇장이면 얼마나 될까?”

“이 카펫 봐봐. 대박이지?”




참나! 내가 역사를 잘 몰라도 역사를 대하는 태도는 좀 성숙했어야 하는데 세상에나 하와이의 슬픔을 안고 있는 이올라니 궁전에 와서는 앤틱 가구에 눈이 돌아가서 잠깐이나마 이딴 생각을 했다는 게 정말 부끄러웠다.‘아,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좀 경건해야 하지 않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노란 메리야쓰 입은 애가 비틀비틀하더니 저 붉은 카펫 위에서 게다리 춤을 추며 주저앉는다. 




“엄마! 쉬!”

“뭐~~~~~~~~?” 



궁전을 울리는 외마디 비명... 노란 메리야쓰! 저 카펫에 너의 그것을 한 방울이라도 떨어뜨리는 날에는 너랑 나랑 하와이에서 사탕수수 캐야 한다. 참아야 하느니라! 애를 둘러업고 오랜만에 미친 듯이 뛰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러니깐 왜 쉬 하라고 할 때는 꼭 안 마렵다고 하고 갑자기 이러는 거야? 엄마 멍멍이 훈련시키는 거야? 어쨌든 겨우 겨우 이 아가씨를 그곳에 앉히고 돌아서는데...  이 분 보시게나 뒤에서 한마디 하신다.

 

“엄마! 대~박 빠른데~”

“헉, 너 내일 한국 가는 비행기 탈래?”






급한 불도 껐으니 이제 이올라니 궁전에 좀 빠져보자. 사실 전날 아이들과 하와이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이미 한 상태였다. 한국이라면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아빠가 아이들과 이야기를 해 주지만 이 엄마는 아이들 가이드보다는 본인 관람이 우선인 분이시라 ‘선 설명 후 관람’을 택했다. 이런 선행학습은 추천할 만하다. 아이들이 하와이의 역사와 비운의 왕비 카피올라니, 칼라카우와 왕, 그리고 마지막 여왕이었던 릴리우오칼라니에 대해서 알고 출발하니 이올라니 궁전으로 향하는 길 이름(Kalakaua st, Kapiolani st, Liliuokalani ave) 들이 반가운 이름이 되어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거다. 비록 영어 오디오 가이드지만 스스로 만지작거리며 열심히 관람했다. 당연히 영어 오디오 가이드를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열심히 귀 기울였고 계속 엉뚱한 질문을 했다. 그래도 기특했다. 그러니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는 반드시 필요하다.(그 이후에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생겼다고 한다. 생길 때가 돼서 생긴 거겠지만 왠지 공치사하고 싶다.)




지하에 있는 사진 전시까지 알차게 구경하고 차로 돌아왔다. 머리도 마음도 채웠으니 이제 배도 좀 채워보자. 녹음이 짙은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달달구리 하나 꺼내어 아이들 입에 넣어주면 “아~ 엄마라서 햄 볶아요~”라는 말이 그냥 나온다. 이올라니 궁전도 마치는 시간이 되었는지 직원들이 문을 닫고 나왔다. ‘몇 시인데 벌써 퇴근을 하냐?’ 하면서 시계를 보니 정확히 4시, 이올라니 궁전 관람시간이 4시까지인 건 알았지만 관람을 종료하는 동시에 문 닫고 퇴근하는 직원들이 참 부러웠다. 잠깐이지만 평온했다. 폭풍전야였다. 간식을 쭉 흡입하신 우리 노란 메리야스 아가씨가 엄마를 보며 눈을 껌뻑거린다. 본인이 좀 전에 궁전 안에서 한 상진(예쁜 딸내미한테 차마 ‘진상’이라는 말이 안 떨어져서 뒤집어 부르는데 뭐 진상이나 상진이나 속 끓기는 마찬가지다)이 짓이 있으시니 눈치는 보이고 말은 해야 할 것 같은 그런 눈이다. 그러다가 안 되겠는지 고요히 터지는 소리.



“엄마~ 나... 응가 마려”  

“야! 진작 말하지! 지금 막 궁전은 문 닫았잖아. 어떡하지? 급해?”



이건 또 뭐냐.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이니 아이를 타박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래도 좀 미리미리 말을 해 주면 안 되나 꼭 터지기 일보 직전에 말을 하면 이 엄마는 어쩌라는 거냐. 일단 빨리 해결을 해 줘야 하기에 사방을 스캐닝했다. 바로 앞에 있는 이올라니 궁전은 방금 전 직원이 퇴근하는 걸 봤고 옆에 건물들은 한국처럼 화장실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고 이런 불확실한 상황에서 애 둘을 데리고 뛰는 건 무모했다. 게다가 한시가 급하신 분이 길에서 괄약근의 힘이라도 놔 버리시면 길바닥에서 우는 건 바로 나일 테니 어쩌란 말이냐. 이런저런 시나리오들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래서 결국 제안했다. 


“우리 그냥 여기 나무 밑에서 할까?”

“싫어! 부끄러워!”


화장실이 될 뻔 한 이올라니 궁전의 반얀트리 나무 



저런 잔디밭에서 애 업고 전력 질주 해 보셨나요? 



하긴, 미국 땅에서 응가하다가 폴리스라도 나타나 봐. 한국 9시 뉴스에서 아빠랑 만날 일이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이올라니 궁전 정원사들이 버기(buggy)를 타고 돌아다니며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또 초인적인 힘으로 냅다 뛰어서 달리는 버기를 잡았다. 밑도 끝도 없이 화장실이 어디냐며 아주 아주 이멀젼씨한 시추에이션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화장실 때문에 머리 풀어헤치고 달려온 아줌마를 ‘돌+아이’로 보는 것 같았다. 서글서글해 보이던 정원사가 당황하며 얼음이 된 순간 나도 모르게 “Not me! my daughter”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때서야 아저씨는 내 얼굴 한 번 노란 메리야스의 퍼렇게 질린 얼굴을 보고 피식피식 웃었다. 나도 좀 안심이 됐는지 입가에 웃음이 나왔다. 기가 막혔다. 정원사들은 후다닥 아직까지 열려 있는 별관의 화장실을 찾아줬고  나는 노란 메리야스를 들고 또 뛰었다. 이번엔 정말 마하의 속도였던 것 같다. 무사히 노란 메리야스를 그곳에 또 앉히고 나왔더니 이번에는 조용하다. 얼마 간의 시간이 흐른 후 위중한 고비는 넘기셨는지 안에서 또 뭐라 뭐라 한다. 



“엄마! 거기 있어?”

“.......................”


“엄마! 거기 있냐구?”

“왜???”


“나 버리고 갔을까 봐.”


흑... 심정적으론 그렇다. 사실 엄마는 그 와중에도 별관 화장실에 있는 수도꼭지에 놀라서 사진을 찍고 또‘앤틱 광녀’에게 카톡질을 하고 있었다.



“야~ 이 수도 풔싯(faucet) 봐봐! 여긴 화장실도 앤틱이야! 떼어가고 싶다~”



거울에 비친 나의 이런 철없는 모습을 보면서 노란 메리야쓰를 탓할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참 상진이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니 진상도 아니고 상진도 아닌 그저 6살 아이였다. 그래서 전국에 계신 ‘진상 씨’와 ‘상진 씨’에게 더더욱 죄송하다. 



[급한 불을 다 끄고 나니 몸도 마음도 가벼워 지신 노란메리야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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