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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승은 Jun 15. 2017

얼라의, 얼라에 의한, 얼라를 위한 외식 ⑲

하와이에서 아이들과 외식하기 좋은 곳

얼라의, 얼라에 의한, 얼라를 위한 외식




‘된장남’ 아들을 모시고 하와이에 왔다. 이분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명품을 좋아해서 된장남이 아니라 말 그대로 된장을 너무 사랑하셔서 된장남이다. 어쩌자고 이 어린 나이에 한식만을 사랑하시어 매일매일 된장찌개만 고집하고 된장찌개를 너무 먹었다 싶으면 청국장, 그러다가 “된장 좀 그만 먹어!”라는 말을 들으면 “순두부찌개”로 아량을 베푸신다. 내 속에서 진정한 신토불이 사나이가 나온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집 식단은 어쩔 수 없이 된장찌개-청국장-순두부찌개-된장찌개-청국장...으로 지겹게 돌아간다. 이런 분과 전 세계 산해진미가 모여 있다는 하와이에 와서 산다는 것은 이미 밥 냄새 폴폴 나는 무수리 파견이라는 것을 나는 왜 몰랐던 것일까. 대부분의 나날을 밥을 하고 된장찌개를 끓였지만 우리도 외식이라는 걸 조심스럽게 했었다. 



맛집이라기보다는 만만한 집 

Zippy’s  




하와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간판 Zippy‘s는 그야말로 만만한 곳이다. 그래서인가 여러 번 갔지만 단 한 번도 한가한 시간이 없었다. 심지어 이른 아침에 가도 북적북적 온 동네 그랜파, 그랜마들이 나오셔서 아침 식사를 하시고 계셨다. 나는 메뉴판을 열면서부터 고민이다. 신토불이 사나이 입에 뭘 넣어줘야 잘 먹을 수 있을까. 일단 아이들을 위해서 ‘하와이 가정식’이라고 불리는 ‘로코모코(Loco moco)’를 시켜 보자. 밥이 나오니 아주 망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뜨거운 하와이 햇살 아래 멍멍이도 안 걸리는 감기로 떨고 있는 나를 위해서 ‘옥스 테일 수프(Oxtail Soup)’를 골랐다. 사진 상으로 ‘소꼬리탕’ 쯤으로 보이는데 이 부실한 육신에 윤활유가 될 것 같았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아이들은 테이블 매트에 있는 색칠공부, 낱말 찾기, 숫자 쓰기를 하며 기다린다. 꼬마 손님들의 진상 모드를 막기 위한 효자 아이템이다. 아이들이 집중하고 있는 사이 엄마는 이제야 한 숨을 돌린다. ‘아이들과 외식’은 솔직히 시작부터 피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려 주는 밥상은 참말로 좋다. 



[잔머리 대마왕인 엄마가 Zippy's에서 만들어 낸 놀이 "Frozen". 먼저 움직이면 지는 거]


로코모코에 있는 쌍 계란이 나를 째려보는 듯하다. 이제 쌍 계란과 그 밑에 깔려 있는 햄버거 스테이크, 그레이비소스를 마구 비벼준다. 이거 너무 익숙한 가정식이잖아. 이건‘하와이 가정식’이기 전에 ‘우리 집 가정식인데...’. 역시 기승전비빔이다. 이렇게 말없이 잘 먹어주면 미슐랭 3 스타가 안 부럽다. 그리고 따땃한 와이키키에서도 으슬으슬 떨고 있는 이 견(犬)만도 못한 나를 위해서 ‘소꼬리 곰탕’ 맛을 본다. 캬~ 한 숟가락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 몸에서 한기가 빠져나간다. 그다음부터는 그릇과 한 몸이 되어 정신없이 퍼묵퍼묵, 엄마 부르지도 마셩. 그렇게 정신없이 배를 불리고 나면 우리가 언제부터 디저트를 챙기던 민족이었던가 갓 구운 빵과 커피 냄새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디저트를 주문한다. “chocolate waffle with whipped cream” 꺄오! 이거 완전 달달구리구리구리다. 이거 먹으면 한국까지 헤엄쳐 가도 될 열량이다. 그러나 일단은 먹자. 살 걱정일랑은 한국 가서 하는 걸로!



관광객들은 잘 모르는 진정한 팬케이크의 고수 

Koa Pancake 



[지난밤 화려한 생파에 숙취해소가 필요한 어린이들]



션의 생일을 화려하게 마치고 우리는 다 같이 그 집에서 슬립오버(sleepover)를 했다. 너무 신나게 놀아서인지 저녁부터 내린 비 때문인지 내 몸도 무겁고 아이들도 모두 그로기(groggy) 상태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동네 모습은 마치 미드에 나오는 한 장면인데 미국 맘들도 눈 뜨면 끼니 걱정을 할랑가? 한국 맘은 한국에 있으나 미국에 있으나 눈만 뜨면 "뭘 먹이냐" 걱정이다.  '아, 지겨워. 나도 누가 좀 차려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독심술을 겸비하신 사랑하는 하와이 숙주님이 이 동네에서 핫하다는 팬케이크 가게로 인도하겠다는 것이다. 오호, 오래간만에 좀 늘어져 있겠구나 생각했는데 어라? 언제나 여유를 부리시던 그녀가 이 시점에서 무지하게 서두른다. 이유인 즉, 일찍 가야 줄을 안 선다는 거다. 팬케이크 먹는데 줄을 서다니. 좀 의아하지만 따라가는 사람이 토 달게 뭐 있나,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간판부터 맛집의 포스가 느껴졌다. 화려해서가 아니라 너무 험블(humble)해서다. 원래 우리네 맛집들도 진퉁의 간판은 초라하지 않은가. 작은 팬케이크 가게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의 헤로인 션 맘은 민첩한 움직임으로 4인 용 테이블을 하나 잡으시고 의자 2개를 더 챙겨 왔다. 그리고 바로 4명의 자유로운 영혼들을 착석시키고, 냅다 주문하러 뛰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재빠르게 움직이는 그녀의 모습은 처음 본 것 같았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던 나는 어리버리하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 어디선가 팬케이크 먹으러 관광버스라도 도착했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온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긴 줄이 생겨버렸다. 몇 초 사이에 그 긴 줄의 맨 앞을 차지하신 션 맘, "우와~ 아침부터 서두르신 이유가 있으셨군요. 존경합니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만들어진 줄]


다른 식당에서야 내가 메뉴판을 정독한 후 이리저리 생각해 보고 주문을 했겠지만 누군가를 따라오니 세상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팬케이크가 유명하니 일단 딸기와 윕 크림이 함께 올라간 팬케이크를 하나 시키고, 신토불이 사나이를 위해서 오믈렛과 두 스쿱의 밥을 시켰다. 아이 넷과 엄마 둘이 얼마나 먹을지 몰라서 일단 그 정도 시켜서 먹어보고 다시 주문할 생각이었지만 순식간에 늘어난 긴 줄 때문에 추가로 주문하는 건 불가능했다. 사실 팬케이크가 팬케이크지 뭐가 특별난 게 있을까 싶었는데 입에 넣는 순간 이 긴 줄에 서 있는 사람들이 이해가 됐다. 부드럽고 달콤한 팬케이크와 커피가 엄마들에게 딱 맞았다면 역시 신토불이 사나이는 오믈렛과 밥을 잘 먹었다. 순식간에 흡입하고는 왠지 자리에 더 머무르면 안 될 것 같아 벌떡 일어났다. 긴 줄에  서있는 사람들이 하이에나의 눈빛으로 빈자리를 찾고 있었다.  




흔하지만 유일한 

MacDonald (Koa Pancake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





Koa Pancake에서 먹을 때는 정신없이 맛있게 먹었는데 나오니깐 왠지 목욕탕에서 나온 느낌이다. 아이들 4명과 함께 식사를 해서 그런가 어째 팬케이크를 콧구멍으로 먹은 기분이 들었다. 반면에 아이들은 어제 생파의 피로가 팬케이크와 오믈렛으로 완전히 해장이 되셨는지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뿜어댔다. 정신없이 끼니를 때우고 나온 두 엄마는 뭔가에 이끌린 듯이 Koa Pancake 바로 앞에 위치한 맥도널드로 향했다. 아니 션 맘이 향하는 곳으로 나는 그저 좀비처럼 따랐다. “아이들 그렇게 먹이고 또 맥도널드로 가요?”라고 묻지 않았다. 그저 ‘나는 언제쯤 조용히 먹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하와이 맥모닝에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밥이 나온다. 신토불이 사나이의 밥이 부족했을 거라 생각한 그녀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다. 그런데 문을 여는 순간, 밥이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듯이 사라졌다. 그녀가 이끈 곳은 젖과 꿀이 있는 가나안 땅보다 더 좋은 실내놀이터가 있는 맥도널드였던 것이다! 두 엄마는 여유 있게 커피 브레이크를 한 판 더 하기로 했다. 피로야 가라~! 여기가 천국이구나!  




아이들은 참 신기하다. 어디서나 금방 친구를 사귄다. 엄마들이 커피를 마시며 어제의 피로를 카페인으로 달래는 사이 그 동네 아이들과 마치 언제 만났던 것처럼 신나게 논다. 사실 하와이는 영어가 되지 않아도 즐거운 곳이다.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과 만나서 놀 수 있기 때문에 영어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서로 그러려니 한다. 스스로 위축되지 않고 재미있게 놀 줄 아는 아이라면 국적을 불문하고 어디서나 인기가 있다. 그러니 영어 걱정은 그만두고 잘 놀 줄 아는 아이로 만드는 게 우선이다. 



훌라후프 올림픽을 펼친 

Bubba Gump Shrimp (부바 검프 쉬림프)


1994년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처음 봤을 때 포레스트가 이뤄내는 성공과 실존했던 사건들을 교묘하게 엮었다는 것이 굉장히 신선했다. 그런데‘부바 검프 쉬림프’는 반대로 이 영화를 현실로 끌어낸 것이다. 포레스트와 친구 부바의 약속이었던 새우요리 전문점을 만든 것이다. 이 곳에 앉아 새우를 먹다 보면 마치 톰 행크스(포레스트)가 폭풍 속에 잡아 준 그 새우를 먹는 착각을 하게 된다.


[출처: 구글 이미지]



식사시간에 맞춰서 ‘부바 검프 쉬림프’에 도착하게 되면 십중팔구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 이미 맛집으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알라모아나 쇼핑센터 안에 위치했기 때문에 현지인들과 관광객들로 항상 만원이다. 그걸 알기에 바쁜 시간을 피해 갔음에도 불구하고 대기 시간이 꽤 길었다. 배고픈 아이들과 기다리는 시간은 참 길기도 하지 아이들은 절대로 그림 같이 앉아서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러면 자동으로 엄마의 잔소리는 돌림노래가 된다. 앗, 그런데 여기는 좀 다르다.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이 놀 수 있게끔 훌라후프를 준비 해 둔 것이다! 와우! 완전 머리 좋다. 훌라후프라는 것이 이걸 돌리며 마구 돌아다닐 수도 없고, 시끄럽지도 않다. 게다가 아이들끼리 경쟁을 하니 그 기다림의 시간도 신나는 게 아닌가. 이내 아이들은 배고픔도 잊고 훌라후프 삼매경에 빠졌다. 그러자, 노란 머리, 파란 눈동자 아이들도 누가누가 더 오래 버티나 훌라후프 시합에 들어갔다. 와우! 훌라후프 올림픽이구나! 부바 검프를 이야기하면 아직도 아이들은 새우요리 보다 훌라후프 올림픽을 이야기한다. 




사실 모든 여행서에 ‘부바 검프’라고 부르니 나도 그렇게 쓰긴 했지만 실제로 현지에서 “Where is 부바 검프?” 하면 보통은 어리둥절+갸우뚱하며 “I am sorry.”라고 할 것이다. 그래서 다시 “Where is B.u.b.b.a. G.u.m.p.?”하고 스펠링을 불러주면 “Aha!~ 버바꺼~엄”하며 알아듣는다.  '부바 검프'이든 '버바꺼엄'이든 아이들과 즐겁고 맛있게 식사할 수 있는 곳임은 분명하다. 



노골적으로 본성을 보여 줘도 되는 

Cajun King


먹고 싶은 음식이 있는데 양이 많아서 시도를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있다. 물론 ‘먹을 만큼만 먹고 남은 건 버리고 나오자’라고 생각하면 간단한데 그게 어디 쉽냔 말이다. 그게 쉽다면 독한 거다. 애엄마들은 주문한 음식이 아까워서 어느 순간 혼자 다 먹어 치우고 있는 자신을 종종 발견한다. 제발 너만 그런 거라 말하지 마시길 바란다. Cajun King은 하와이에 오기 전부터 많이 들었던 해산물 전문점이다. 그러나 위가 스몰 사이즈인 엄마와 된장남 아들, 그리고 H2O만 먹고살아도 되는 딸이 여길 가서 뭐 하나 생각하며 마음 비웠었다. 그런데 하늘이 도우셨나. 같이 갈 친구들을 만났으니 이건 먹어줘야 할 운명인 거다. 식당에 들어서니 인테리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고 오랜만에 보는 하얀 상 비닐이 눈에 띄었다. 수 십 개의 테이블이 그 비닐로 덮여있고  그 위에는 키친타월이 두루마리 째로 서있다. 분위기 뭔가 심상치 않다. 테이블로 걸어 들어가는데 마치 국가대표 선수가 경기장에 입장하는 비장함이 느껴졌다.





엄마들이 이것저것 주문하는 사이에도 아이들은 계속 떠들었다. 하루 종일 같이 놀아도 어쩌면 매 순간 이리 즐거울 수가 있는지 좀 정신이 사납긴 했지만 식당 분위기가 너무 자유로워서 이 정도쯤은 튀지도 않았다. 주문하고 이십 분쯤 됐을까? 종업원이 묵직한 비닐봉지를 덜렁덜렁 들고 나타났다. 어떻게 먹으라는 둥, 이 안에 뭐가 있다는 둥 그딴 친절한 설명 따위는 없었다. 그저 테이블 위에 철퍼덕 내려놓고 가 버렸다. 션 맘이 대표로 꽁꽁 묶은 비닐봉지의 주둥이를 가위로 덥석 잘라내는 순간 나는 내 안에 프로페셔널한 가위질이 탑재되어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가위를 들고 벌떡 일어나서는 랍스터와 크랩을 자르고, 살을 바르고 아이들 접시 위에 올려 줬다. 그러면 아이들도 비닐장갑을 끼고 인정사정없이 주워 먹는다. 아, 홍합 따위는 싸다는 것을 아는지 엄마 드시라고 양보도 하신다. 쩝, 엄마도 랍스터 먹을 줄 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먹어야 했다. 아이 넷이 손으로 집어 먹으며 떠드는데 정신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가 있다. 그래도 잘 먹으니 행복하다. 물론 주위를 의식하면서 품위 있게 먹을 수도 있겠지만, 비닐장갑이라는 것이 어찌나 신기한 물건인지 이것을 끼면 사람의 본성이 앞선다는 거다. 그러므로 맛있게 먹었고 즐거웠지만 비닐장갑을 낀 진짜 나의 모습을 봐도 될 사람들끼리 가기를 권한다. 볼꼴 못 볼꼴 다 본 사이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며, 연인끼리는 우리가 이래도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를 시험해 볼 수 있는 곳이다.  







위의 음식점들은 맛도 물론 좋았지만 아이들을 동반한 외식에 포커스를 둔 것이므로 자유로운 영혼들은 더 특별한 맛집을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와이는 맛있는 음식점이 정말 많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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