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라들은 좀 큰 다음에 가자.
그림의 떡, 하나우마베이
하와이 여행서를 보면서 꼭 가보고 싶은 곳을 하나 꼽으라면 주저 없이 하나우마베이였다. 스노클링 할 때 보이는 형형색색 물고기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거북이랑 같이 수영을 할 수 있다고 하니 사이판이나 괌에서 할 수 있는 스노클링 하고는 클래스가 다를 것 같았다. 그러니 아이들과 함께 갈 여행지 1순위는 당연히 이 곳이었다.
내가 하나우마베이 홍보 인사는 아니지만 자랑을 좀 하자면, 우선 주정부 차원에서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물이 깨끗하다(인정한다). 그리고 바다가 깊지 않고 산호초가 많기 때문에 바닷물이 들어올 때 들어온 각종 물고기, 거북, 해파리 같은 애들이 산호초 때문에 빠져나가지 못하고 이 곳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최고의 스노클링 스팟이 될 수 있는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하와이를 다룬 여행서에서 공통적으로 추천하는 하나우마베이 여행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아침 일찍 도착하라는 것이다. 책에는 “아침에는 바닷물이 맑고, 물고기가 운동량이 많으니 스노클링 하기 좋다. 하나우마베이 주차장은 금방 꽉 차기 때문에 아침 일찍 가라..."라는 말이 쓰여 있다. 그러나 그건 아이가 없는 자유로운 영혼들을 위한 팁이지 아이들 모시고 꼭두새벽부터 움직이는 것은 해 본 사람은 다 아는 험난한 일 아닌가. 책은 책일 뿐 우리는 늦은 아침을 먹고 쉬엄쉬엄 출발했다. 하나우마베이 주차장에 도착하니 무려 오후 2시가 되었다. 주차장에 차가 꽉 차서 넘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너무 한산했다. 흠.. 이런 교과서 같은 설명은 다른 여행서에도 다 나와 있는데...라고 생각하고 계셨다면 이제부터가 어느 여행서에 나오지 않은 나의 고백 타임이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하나우마베이에 내가 왔다. 거북이들아 기다려라. 누나가 간다. 입장료 넣어주고 신나게 들어갔다. 그런데 이상하다. 사람들이 모두 무언가 기다리고 있다. 늦게 왔으니 많이 놀고 가야 하는데 마음 급한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이게 뭐하는 짓이지? 그것은 바로 하나우마 베이 입장 전 교육이다. 헉, 뭔 놈의 교육을 놀러 와서도 받아야 하는지 의아했다. 저 문을 열고 나가면 스노클링 할 푸른 바다가 펼쳐질 터인데 사람들을 강당에 모아놓고 교육을 하다니! 강의 내용인 즉 하나우마 베이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이곳에는 어떤 물고기가 사나, 이곳을 어떻게 보존하고 있나, 너네들은 여기 들어가서 어떻게 놀아야 하나.. 등등 알찬 내용을 준비한 것 같다. 물론 교육 시작 전에 영어로 설명을 하지만 앞 쪽에 번역기가 있으니 가져가라고 친절하게 안내를 해 준다. 하지만 단 한 명도 번역기를 가져다가 듣지 않았다. 영어가 짧은 아시아계 관광객이나 영어가 가능한 유럽 쪽 사람들이나 그저 ‘빨리 우리를 풀어줘.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라는 심정으로 발을 동동 구르며 설명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내 생애 가장 산만한 강의였다. 그리고 문이 열리면... 짜잔하고는 바다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짜잔! 문은 열렸는데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바다가 아니라 내리막길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트램 정류장이 보였다. '아니, 여행서에는 이런 내리막길 얘기도 트램 정보도 없던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역시 여행서를 쓰는 사람들은 데쎄랄(DSLR)이나 둘러 매고 가볍게 다니니 아이들 튜브, 간식, 물, 타월, 돗자리, 기타 등등 잡다한 물건을 들쳐업고 다니는 무수리의 입장을 알리가 있겠냐며 투덜거렸다. 하나우마 베이에 처음 온 아줌마가 이 내리막길이 얼마나 먼지, 길 상태는 어떤지 알 수가 있나. 아이들은 모두 샌들을 신고 있는데 쉽게 내려갈 수 있을지 걱정스럽기도 했다. 흥~ 인생사 그런 거야. 그 입장에 처해 봐야 아는 거지. 트램을 태워야 하느냐 그냥 걸어도 되느냐가 애 엄마들은 중요한 문제인데 아무 정보가 없었다. 양 팔에 해변 살림을 주렁주렁 달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는 두 아이와 이 길을 걸어 내려가야 하나 아니면 트램을 타야 하나 고민했다.
[출처: 신토불이 사나이 친구 지나네]
고민은 짧았다. 그냥 좀 걷게 했다. 우린 강하니깐! 우리 엄마는 구두쇠니깐! 길은 다행히 그럭저럭 괜찮았다. 아이들이 입을 벌리고 “우오와와와와~” 소리를 지르며 가는 모습이 좀 심란하기는 했으나 어쨌든 잘 내려와 줬다. 적당한 곳에 돗자리를 깔고 간식도 좀 먹고 드디어 거북이와 스위밍을 하기 위해서 준비를 했다. 참으로 흥분되는 순간이었다.
아이와의 여행이라는 것이 여기까지 매끄럽게 진행되었다면 하늘에 절이라도 해야 하는 것일까. 풍덩풍덩 신나게 바다로 들어간 지 5초? 아니 3초나 됐을까. 노란 메리야쓰가 발이 아프다고 소리를 지른다. 신토불이 사나이는 이미 입수를 해서 헤엄쳐 가고 있고 나는 다시 물에서 나와 아이의 상태를 확인했다. 발가락에 살이 쬐금, 정말 눈곱만큼 까졌다. 내리막길에서 너무 신나게 뛰신 전리품이랄까. 그런데 그 연한 살을 바닷물에 담그니 저리저리 했던 것이다. 무슨 큰일이라도 났는 줄 알았다. 아픔도 잠시, 우린 월마트에서 마련한 수경을 쓰고 스노클링 장비를 장착하고 거북이를 만나러 출발했다.
수영을 잘하는 신토불이 사나이는 이미 멀리까지 가 있었다. 뭐가 보이긴 보이는지 물 밖으로 나와 있는 아들의 스노클링 튜브와 첨벙거리는 발차기로 아이의 상태를 보며 ‘별 일 없구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에 노란 메리야쓰는 엄마더러 업고 오빠한테까지 가라고 주문하신다. 내 한 몸도 건사하기 힘든데 누가 누굴 업고 바다 한가운데까지 수영을 하러 간단 말이냐. 나의 능력 밖의 일이었다. 신토불이 사나이는 점점 멀어져 갔다. “이제 돌아와. 더 이상은 힘들어!” 조금 더 가면 주변이 온통 산호초였다. 물론 산호초 사이가 스노클링 하기엔 최적의 장소라는 것은 알지만 아이 둘을 데리고 그곳까지 갈 수는 없었다. 무리수를 두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산호초까지 가서 한 분은 돌아가고 싶다 하고 한 분은 계속 스노클링 하겠다고 싸움이라도 한다면 내 몸은 하나인데 어떻게 해야 하나 엄두가 나지 않았다. 또 바다도 무서웠지만 만약 두 아이 중 한 명이라도 산호초에 발이라도 베이면 바다 한가운데에서 엉엉 우는 엄마로 해외토픽에 나올 것 같았다. 결국은 시작도 전에 엄마의 머릿속에서 플레이되는 그놈의 마이너러티 리포트 때문에 하나우마베이까지 가서는 거북이와 스위밍을 해 보지 못했다는 원통한 이야기를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쓰고 있는 것이다.
아쉽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아이 둘을 데리고 하나우마베이를 갈 생각을 한 것부터가 실수였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는 해변이 지천에 널렸는데 엄마가 거북이와의 교감에 집착한 나머지 내 새끼와의 교감을 소홀히 했던 것이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내려올 때는 기대감에 부풀었고 몸에 물기도 없었고, 힘도 남아돌았기 때문에 신나게 걸어 내려올 수 있었는데 그 내리막길은 오르막길이 되어 있었다. 이미 노란메리야쓰는 신발에 발이 아팠고 온 몸이 물에 불었다. 그러니 제 아무리 짠순이 엄마라도 올라갈 때는 트램을 태워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 내려갈 때부터 시원하게 all day로 사서 시원하게 타고 내려갈걸 그랬다.
엄마의 선택이 엄마 본인이 아니라 아이 중심이 된다면 왠지 아이 때문에 희생하는 것 같아서 억울할 것 같지만 막상 엄마 위주의 선택을 했다고 해서 그게 잘 풀리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은 모름지기 아이가 편해야 내가 편안해지는 법, 하나우마 베이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소환해 주기를 바라는 독자 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어린아이를 동반한 엄마라면 추억은 다른 곳에서도 쌓을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전하고 싶다. 아이가 편안한 곳, 그곳에서 아름다운 추억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