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그로셔리 샤핑( grocery shopping)
엄마의 그로서리 쇼핑 (Grocery shopping)
예전에 싱가폴에서 3년간 회사생활을 하고 귀임한 친구가 싱가폴에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요리를 해 먹은 적이 없다는 충격적이고도 부러운 이야기를 해 줬다. 그러면 매일 햇반에 컵라면이나 말아먹었냐며 걱정 어린 소리를 했더니 싱가폴 정부는 가사에 매달려야 하는 여성 인력들을 사회에서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회사나 주거지 근처에 호커(푸드코트)를 지원해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퇴근 후 호커에 들려서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오는 것이 일상 다반사란다. 정말이지 킹왕짱 부러운 이야기다. 물론 내가 음식을 휘리릭 잘 차려 낸다면야 이렇게까지 부럽지는 않겠으나 현실은 된장찌개, 김치찌개도 겨우겨우 끓이고 단골 반찬가게는 여럿이요, 물론 그곳의 VVIP 정도 되시니 이 어린양들을 데리고 바다 건너 쫄쫄이 굶기지 않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매일 팔라마 슈퍼마켓으로 출근하는 하와이 식모
1670 Makaloa St./
신토불이 미식가를 모시고 하와이에 왔으니 여행 책자에 나온 맛집 기행은 생각 자체가 옹산화병이요 그림의 떡이었다. 이 지점에서 신토불이 사나이만 새끼냐 노란 메리야쓰는 왜 신경도 안 쓰냐는 말을 하실 수 있으시나 그분은 뭘 줘도 씨알 따끔 먹는 까칠한 입맛을 갖고 태어나신 분이시니 식단에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셨다. 그리하여 나는 밤마다 와이키키 한복판에서 창문을 닫고 청국장을 끓이고 쓰리겹살을 구워야 했다. 물론 청국장만 먹었던 것은 아니다. 된장찌개도 먹고 김치찌개도 먹었다. 미쳐 버리는 줄 알았다. 그 많은 맛집은 점점 더 멀어져 갔다.
그러니 하와이에 와서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이 어디였겠나. 당연히 한인 슈퍼였다. 한국에서 음식을 전혀 공수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한시가 급했다. 우선은 여행책자에 가장 많이 나오는 "팔라마 슈퍼"로 달려갔다. 쌀, 청국장, 된장, 두부, 김치 등을 공수하고, 김과 밑반찬을 주워 담았다. 다행히 밑반찬을 담아 파운드 단위로 팔고 있어서 생각보다 다양한 반찬을 구입을 할 수 있었다. 맛은 내가 절대미각이 아닌 관계로 그런대로 먹을 만했고 가격도 내가 거기서 만들 생각 하면 비싼 편은 아니었다. 일단 냉장고에 음식을 채워 넣으니 마음이 좀 푸근해졌다.
[출처: 구글맵, 구글 이미지]
청국장과 된장은 한국에서 시판되는 웬만한 것들이 다 구비되어 있었다. 두부와 계란은 한국보다 더 다양하게 있었고 김치도 배추김치, 깍두기 심지어 백김치 까지도 다 있기 때문에 걱정이 사라졌다. 문제는 쌀이었는데 쌀의 종류가 너무 많으니 도대체 어떤 것을 사야 실패하지 않을지 고민되었다. 일본 쌀이 맛있다는 말은 들어봤는데 글자를 모르니 뭐가 뭔지 모르겠고 그나마 "경기 이천쌀"이라고 이름을 붙인 쌀이 있어서 도전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경기 이천쌀을 자세히 뜯어보니 생산지가 캘리포니아다. 언제 경기도 이천이 캘리포니아로 옮겨갔냐. 웃기지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사는데 가뜩이나 입 짧은 우리 상전들 밥이라도 잘 먹여야지 이역만리에서 굶겼다가는 돌아갈 때 남편한테 입국 거부당할 것 같았다. 경기 이천쌀을 믿어보기로 하고 10킬로를 샀다.
아! 그런데 경기 이천쌀도 쌀알이 날린다. 알량미처럼 후~ 불면 경기도 이천까지 날아갈 듯하다. 여기서 이 쌀로 떡을 해 먹을 수도 없고 대책이 필요했다. 팔라마 슈퍼마켓으로 다시 달려가 찹쌀 한 팩을 사서 황금비율을 찾기 시작했다. 밥이 맛있어야 반찬도 맛있다는 고집 때문에 귀찮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우리 셋이 한 끼 먹는데 쌀 : 찹쌀 비율을 1:0.5로 20분 정도 불려서 밥을 하니 맛있는 쌀밥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주말에는 라면을 허(許)하기로 했다(지금은 수시로 먹지만). 한국에서 라면은 잘 주지 않는 음식이었는데 길고 긴 주말, 수영하고 올라오면 물장구친 아이들도 힘들지만 그거 지켜보며 벌서는 나도 당 떨어지고 입에서 쉰내가 났다. 그래서 하와이에서 주말에는 수영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다 같이 씻고 TV를 켜고 팔라마 슈퍼마켓에서 공수한 소고기 김밥과 풀무원 꽃게 탕면을 흡입하며 늘어지곤 했다. TV를 보며 라면을 먹다니! 아이들에겐 이것 자체가 파라다이스이며 하와이이기 때문에 가능한 특별한 일이었다.
일본 슈퍼마켓 돈키호테 (Don Quijote)
801 Kheka St.
팔라마 슈퍼마켓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일본 슈퍼마켓 돈키호테가 있다. 국적 불문 세계 어느 마트에 가도 아이들을 꼬시는 물건들이 전방에 위치한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장난감이 뚜껑에 달려 있는 초콜릿에 꽂혀서는 사달라고 졸라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필요한 물건 아니고는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는 엄마다. 보통은 짠순이 엄마와는 대화가 안 되니 구멍 숭숭인 아빠를 구워삶았을 텐데 여기서는 지갑을 열어 주실 분이 안 계신 거다. 나는 아이들이 조르던가 말던가 정신없이 장을 보기 시작했다. 좀처럼 하와이 빵이 입에 맞지 않아서 이곳에서 곡물 식빵을 사 보기로 했고 아이들 학원에 가져갈 런치 박스를 채울 간식들을 사러 돌아다녔다. 그리고 또 중요한 물건을 하나 사야 했는데... 여자들의 필수품인 생리대가 월마트나 세이프웨이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미국 여자들은 모두 탐폰만 쓰는지 나는 왠지 구석기 사람이 된 듯 한 느낌이었다.
만족스러운 쇼핑을 했다. 아이들은 한국 마트처럼 시식코너를 순회하며 드시고 계셨고 나는 다른 곳에서 구할 수 없었던 아이템들을 겟했다. 그런데 계산을 마치고 나오는데 뭔가 이상하다. 아이들을 천천히 스캐닝했다. 이상한 기류가 감지됐다. 싸움도 아니고 동맹도 아니고 이거 뭐지? 아이들 손에 무언가 들려 있었다. 아까 따라다니며 졸랐던 초콜릿 뚜껑이 눈에 들어왔다. 초콜릿은 없었고 고장 난 장난감 뚜껑뿐이었다. 아이들은 서늘해진 엄마의 눈빛에 주춤했다. 훔쳤든 주웠든 그 순간 중요하지 않았다. 일은 이미 벌어졌고 이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만 계산했다. 아이들에게 물었다.
“이거 왜 가지고 나온 거야?”
“엄마, 초콜릿 진열대에 망가진 장난감이 엄청 많아. 망가진 거라서...”
“이거 우리가 계산한 거 아니잖아. 계산하지 않은 것을 갖고 나오는 건 어쨌거나 잘못한 거고, 고장 난 뚜껑이라도 훔쳤다고 오해를 받을 수 있어."
"그럼 이제 어떡해?"
"다시 가서 실수로 이거 가지고 나왔다고 돌려주고 사과해야지.”
[My Favorit Poke/ Organic Milk를 샀더니 아이들이 싱겁다고.../노란 메리야쓰가 좋아하는 에드마메]
아이들은 안 가면 안 되냐고 물었다. 엄마가 감옥에라도 갈 줄 알았는지 긴장하는 눈치였다. 나는 돈키호테로 앞장섰고 아이들은 두려움에 바들바들 떨며 내 뒤를 따랐다. 마트 앞에 있는 경비원에게 문제의 장난감 뚜껑을 보여주며 사실 그대로를 이야기했다. 직원은 내 얼굴과 양 손에 들린 쇼핑백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알았다며 쿨하게 끝났다. 그제야 아이들도 안심했고 나 역시 마무리는 맘에 들었다.
새로울 것이 없는 코스트코 (Costco)
525 Alakawa St
한국에선 코스트코가 주는 묘한 재미가 있다. 다른 대형마트에선 느낄 수 없는 미쿡스런 느낌(?)이랄까. 들어가면서부터 달콤한 냄새가 코 끝을 자극하는 것이 마치 외국에서 장을 보는 듯하다. 하와이 코스트코는 어떨까? 국내 코스트코 회원카드로 전 세계 코스트코를 이용할 수 있다고 하니 한번 가 보기로 했다.
나른한 일요일, 우리는 하와이 코스트코로 향했다. 알라와이 블러버드를 20분 달리니 드넓은 주차장이 보이고 익숙한 코스트코 사인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은 익숙한 코스트코 간판을 보며 자기들이 와 본 곳이라며 즐거워했다. 이 엄마도 처음 오는 곳인데 언제 와 봤을까? 매장 입구와 최대한 가까이 주차를 하고 출동했다. 한국에서 받은 멤버십 카드를 당당하게 제시하면서 입장하면 끝!
[출처: 구글맵, 구글 이미지] 코스트코가 있는 동네에는 더 홈 디포, Best Buy, Liliha Bakery, Regal Cinemas 등 재미있는 곳이 많다.
그런데 이 두 분은 전날의 과로로 코스트코 입구에서부터 끝까지 카트를 타고 나오질 않는다. 보통 때 같으면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뛰어다니고 물건 구경하느라 바빴을 텐데 두 분이 동시에 이러시니 내 다리는 후덜덜, 팔도 지끈지끈, 부실한 애미 등짝에 욱신욱신 근육 잡히는 소리가 났다. 그래도 둘이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열심히 밀고 다녔다.
예상대로 하와이의 코스트코는 여러모로 한국과 비슷했다. 진열된 물품들도 비슷했고, 결제 카드를 제한하는 것도 같았다. 한국에서 삼성카드와 현금만 사용 가능했던 것처럼 미국에서는 아멕스카드와 현금만 사용 가능했다. 기본 묶음 수량이 워낙 많으니 우리의 하와이 살림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와이에서 돌아갈 때 한국에 가지고 갈 선물을 사기에는 좋아 보였다. 하와이에 오면 다들 들고 가는 마카다미아 넛츠, 초콜릿, 코나 커피, 어르신들이 좋아하실 건강보조식품들은 좋은 가격이었다. 그래서 아쉽지만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한 번 더 들리기로 하며 발걸음을 돌리는데 앗! 나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 잠시 멍하게 만든 것이 있으니 바로
"페리에 Perrier"
이거 하나는 아쉬웠다. 진작 와서 한 궤짝 사다가 날랐으면 속 터질 때마다 하나씩 깠을터인데 너무 늦었다. 어떻게 이런 가격이 나오지? 난 순간 한국에서 나의 애끓는 육아를 함께해 왔던 앤틱 광녀에게 또 카톡으로 사진을 보냈다. "야! 이거 가격 봐라. 한국 가면 페리에 못 먹겠다." 우리에게 오는 페리에의 가격은 모두 배송비인가!
숨은 보물 Gina's BBQ
2919 Kapiolani Blvd # 22
반찬을 사 먹는 집은 알겠지만, 이게 묘하게 질린다. 그래서 또 여러 반찬집을 뚫어서 돌려가며 먹기도 하는데 한 번은 낯선 땅 하와이에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로 했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한국에서도 잘 안 하던 갈비를 한다며 고기를 사다가 양념을 만들어서 부워놓고 “이거 봐라! 나 하와이에서 갈비 재우는 뇨자야~!” 라며 페이스북에 자랑도 하고 그랬다. 생각하면 참 부끄러워 말이 안 나온다.
하와이에서 일주일 정도 있는다면 하와이 음식도 먹고 이것저것 사 먹을 테니 한식을 해 먹을 일이 많지 않겠으나 우리 처럼 한 달 이상 머물거나, 식구 중에 신토불이 회원이 있으시면 하와이 여행서에 나오는 슈퍼마켓 만으로는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그래서 매번 한식집이나 한인 슈퍼 찾아다니느라 바쁘고 심지어 갈비도 했으나, 살다 보니 나를 위한 가게를 알아냈다.
"Gina's BBQ"라는 가게인데 (개인적으로 전혀 친분 없음을 미리 밝힌다. 심지어 사장님이 나를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운전해서 찾아갈 때 애를 먹었기 때문에 우선 찾아가는 방법을 좀 디테일 돋게 설명하자면, 2919 Kapiolani blvd에 내비게이션에 찍고 가보면 커다란 슈퍼마켓인 푸드랜드 (Foodland)가 보인다. 일단 그곳에 주차한다. 그리고 차에서 내려서 푸드랜드를 바라보고 우측으로 Gina’s BBQ라는 작은 간판을 찾으면 된다. 갈 때마다 사람이 많다. 당장 테이크 아웃할 수 있는 도시락도 팔지만 우리는 양념된 갈비 uncooked( 익히지 않은) 5파운드(약 2.2kg)와 각종 나물류를 선택해서 담아 왔다. 그러니깐 맛도 보장 못 할 갈비를 재운다고 설친다거나 반찬을 하기 위해서 다진 마늘을 사는 것이 엄청나게 미련한 짓이었다. 세상에나 이 곳에 가니 잡채며 비빔밥이며 싹 다 있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도 이렇게까지 기뻤을까? 우리처럼 집에서 구워 먹을 수 있는 분들은 양념 갈비(uncooked BBQ)를 사서 소분해서 냉동 보관해도 되고, 해변이나 다른데 놀러 갈 때, 또는 해변에서 놀다가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들려서 테이크 아웃해도 좋다. 힘든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무수리에게 냉장고에서 해동되고 있는 갈비는 정말 고마운 존재였다.
[시간이 좀 지난 가격이니 혹시 Gina's BBQ에 가셔서 하와이 무수리님이 올려 준 가격이랑 틀리다고 하셔도 그분들은 저를 모르세요.ㅠ.ㅠ]
팔라마 슈퍼마켓 쇼핑 리스트
김치, 된장, 청국장, 김, 삼겹살, 김치찌개, 김밥, 한국 과자, 라면
없는 것 없이 다 있고, 종류도 다양하다.
돈키호테 쇼핑 리스트
S&B Golden Curry, 포키, 유부초밥, 두부, 각 종 빵 종류, 생리대 (안 쓸까 하다가.. 혹시 하와이에서 이거 찾아 헤매실 1인을 위해서 제가 좀 부끄럽겠습니다.)
하와이 빵이 유명하다고 하는데 내 입맛에는 달고 들척지근해서 별로였다. 오히려 돈키호테 빵들이 내 입맛에는 더 맞았고, 식빵의 경우 상온에서 3일 만에 곰팡이를 보이며 마트 식빵에 대한 선입견을 깨 주심.
코스트코 쇼핑 리스트
과일, 마카다미아 너트, 초콜릿, 건강보조식품 (센트륨, 오메가3, 구미 베어즈 등등), 코나 커피
워낙 수량이 많아서 대식구가 아니고는 별 메리트가 없다.
Gina's BBQ 쇼핑 리스트
갈비, 잡채, 각종 전, 김치, 나물 등등
한국에 있다면 지금이라도 사러 나갈 것 같다. 앉아서 먹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긴 하지만 협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