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섬머캠프 정보
하와이에 가면 누구는 와이켈레 쇼핑몰부터 간다고 하던데 우리는 동물을 사랑하는 어린이들이니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동물원부터 시작했다. 유난히 기미 돋는 날씨였지만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호놀룰루 동물원을 찾아 나섰다. (하와이 체크인 3일 정도 되면 기미에 대한 마음은 내려놓게 된다.)
호놀룰루 동물원 대문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소박했다. 그러나 깔끔한 디자인이 맘에 들었다. “얘들아! 거기 대문 앞에 서봐! 사진 한 장 찍고 들어가자.” 순간 두 분 다 입이 나왔다. 엄마는 꼭 바쁠 때 사진 찍으라고 서 보라고 한다는 것이다. 아니 남는 게 사진인데 왜 이렇게 비싸게 구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입 나온 채로 호놀룰루 동물원에 입성했다.
처음 우리를 반긴 것은 플라밍고였다. 살구 빛깔의 플라밍고와 초록 나무가 어우러져서 사진기만 들이대면 엽서 같은 사진이 나왔다. 그리고 그림책에서는 유머러스하고 착한 동물인데 실제로는 성질이 고약하다는 하마를 만났다. 하마의 성질을 안 건드리며 조심조심 넘어갔다. 동물원 지도를 따라 걷다 보니 긴팔원숭이(gibbon)들도 나오고 (긴팔원숭이의 스윙질은 꼭 한번 봐야 한다. 그렇게 매달리니 팔이 저렇게 길어지지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기대했던 아프리카 사바나 구역으로 걷다 보니 사자도 보이고 코뿔소도 보였다. 그때까지는 호놀룰루 동물원이 우리나라의 동물원과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뭔가 느낌은 달랐다. 우리 식구들이 동물원 마일리지가 남들보다 꽤 되기 때문에 나름 동물원에 대해서는 비교 분석이 가능한데 처음에는 뭔가 느낌만 다른 것 같다가 나도 모르게 자꾸 아이들에게 “뭔가 다르지? 뭐지? ”라며 묻다가 기린을 보는 순간 유레카를 외쳤다.
호놀룰루 동물원에 사는 동물들은 몇몇 조류와 위험한 동물들을 제외하고는 케이지(cage)가 아니라 그냥 낮은 울타리 안에서 살고 있었다. 참 신기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마치 사람들이 동물원에 구경을 온 것이 아니라 오늘은 누가 놀러 왔나 동물들이 구경 나온 것 같았다. 신기하게도 얼룩말도 기린도 코끼리도 쉽게 넘어 다닐 수 있을 것 같은데 자신의 영역에서 평화롭게 머물렀다. 오직 공작새! 이놈들만 마구 돌아다녔다.
[공작새에게 놀란 후 아이들 표정, 엄마만 기억하고 추억하기엔 아쉽다. 그래서 열심히 써 내려간다. ]
여러 마리의 공작새들이 동네 건달 엉아들 마냥 어슬렁거렸다. 나는 이 엉아들 하는 짓이 너무 웃겼는데 새를 무서워하는 노란 메리야쓰의 얼굴은 점점 심각해졌다. 인생사 그렇다. 피하려 하면 더 만나게 되는 것 아닌가. 결국 우리는 골목길에서 한 놈과 딱 마주쳤다. 좁은 외길 끝에 공작새 한 마리가 버티고 계시는 것이다. 순간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고 나 역시 움찔했다. ‘어른인 나까지 덩달아 왜 이러지?’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기기도 했지만 고백건대 무서웠다. 그리고는 내가 더위를 드셨나 이 공작새 엉님께 말을 걸었다.
“좀 비켜 줄래? 길을 막고 있으니깐 우리 애들이 못 지나가잖니.”
이건 개무시도 아니고 새무시인가. 공작새는 꼼짝도 안 하고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이들과 길에서 치한을 만나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봤지만 공작새와 외길에서 마주칠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영어로 “꺼져~!”라며 발을 쿵쿵 굴렀다. 이 공작새 곱게 이야기할 때는 말을 안 듣더니 세게 욕 한번 먹더니 쌩하고 고개를 돌린다. 참내,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일이다. 아이들은 이 막가파 공작새가 엄마의 스펠(spell)을 듣고 움직였다며 놀라워했다. 살다 살다 별 일이 다 있다. 위기를 탈출한 노란 메리야쓰는 울기 직전이고 신토불이 사나이도 얼어버렸다. 공작새에게 놀란 가슴을 쉐이브 아이스(Shave Ice)로 달래기로 했다. 역시 아이들에게는 알록달록한 얼음조각이 명약이다.
쉐이브 아이스는 말 그대로 ice를 잘 shave 해서 콘에 담고 원하는 색깔의 시럽을 부어준다. 친절한 직원 언니는 무슨 맛을 원하냐고 물으면서 레드, 옐로, 블루, 레인보우 중에서 고르라고 한다. 아이들은 단숨에 레인보우를 선택했다. 나는 공작새 때문에 피가 거꾸로 솟구쳤나 아니면 이제 지능이 새 보다 못해 진 것인가. 아이들이 레인보우를 선택하는 순간 이 언니가 얼음 위에 빨주노초파남보 시럽을 차례대로 부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보란 듯이 아이스 위에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시럽을 적당히 뿌리니 그 시럽들은 얼음을 타고 색을 전파하며 색과 색이 겹치는 부분에 가서는 주황색, 초록색, 보라색들을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레인보우 쉐이브 아이스를 먹으며 나의 지력을 개탄했다.
동물원이니깐 아이들은 당연히 동물에 집중하겠지만 나는 어마어마한 반얀트리 나무에 반하고 말았다. 뜨거운 햇살을 막아주니 시원하게 앉아서 쉬었다가 갈 수도 있고, 나무 자체가 거대한 조각 작품 같아서 보는 것만으로도 내내 행복해졌다. 내가 나무에 빠져 있을 때 아이들은 저 멀리 커다란 나무 아래에 모여 있는 아이들을 발견했다. 그곳에는 또래 아이들의 캠프가 진행 중이었는데 한쪽에는 유치부 정도 되는 아이들이었고 반대편에는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되는 아이들이 그룹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나는 두 아이가 영어도 잘 못하고 수줍음도 많아서 이런 캠프는 데려다 놓으면 안 가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거기 껴서 놀고 싶어 했다. 역시 아이들은 엄마가 아무리 놀아줘도 또래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을 채워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약간의 영어와 용감함이 있다면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것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굳이 영어 배우러 학원 갈 필요 없이 이런 곳에서 전 세계에서 온 어린 동물 박사님들과 함께 놀고 배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환경인가. 다음에는 동물원 캠프에 도전해 보자.
동물원도 식후경인데 아이들은 구경하느라 배가 고프다는 말도 없다. 뛰기는 아이들이 더 뛰는데 왜 배는 나만 고픈지 억울할 일이다. 우리는 동물원 내의 스낵바로 향했다. 신토불이 사나이도 이제 하와이에 대해서 감을 좀 잡으셨는지 최소한 이런 곳에서 청국장을 찾지는 않는다. 알아서 핫도그와 감자튀김을 먹겠다고 해 주셨다. 감사할 일이다. 이때까지는 순조로웠다. 나는 아이들을 파라솔 자리에 앉히고 스낵바로 가서 주문을 했다. 주문한 감자튀김이 나오자 우선 아이들이 있는 테이블에 감자튀김을 갖다 놓고 다시 핫도그를 받으러 갔다.
그때였다. 내 뒤에서 “꺅! 엄~~ 마~~~!!! 으앙!!!!” 동물원이 떠내려가라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의 귀는 참 신기하다.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이것이 진돗개 1호인지 데프콘 2호인지 아니면 false alarm(거짓 경보)인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동물원을 쩌렁쩌렁 울리는 그 목소리는 바로 전쟁 선포였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니 좀 전에 갖다 놓은 감자튀김이 바닥에 내동댕이 쳐있고 아이들은 혼비백산이 되어 울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내가 등짝을 돌린 시간은 핫도그 받는 순간 10초도 안 되었건만 나는 허겁지겁 뛰어갔다.
빌어먹을 공작새, 아까 골목길에서 만난 그 놈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스낵바 주변은 사람들이 바닥에 흘린 음식을 먹기 위해 어슬렁거리는 새들이 보였다. 그중 겁을 상실한 공작새가 바닥이 아닌 테이블 위에 올려진 감자튀김 접시를 노린 것이다. 목을 쭉 빼서 접시의 모서리를 자식의 부리로 내리 쳐서는 감자튀김을 땅바닥에 쏟아 식사 준비를 한 것이다. 노란 메리야쓰는 엉엉 울며 테이블 위로 올라가 앉아 있고 그러거나 말거나 이놈은 유유자적 식사 중이셨다. 옆 테이블의 중국인 아줌마, 아저씨들이 그저 웃느라 바빴고. 뒤쪽에 한국인 언니들은 같이 경악해줬다. 공작새에게 두 번이나 당한 우리는 놀란 콩알 만해진 가슴을 붙잡고 차로 돌아왔다.
[동물원을 탈출한 후에 정신이 돌아오신 분들]
그때는 공작새에게 감자튀김을 삥 뜯겼다고 생각했으나 지금 생각해 보면 공작새 입장에서는 우리 집에 굴러 다니는 음식이니깐 먹는 놈이 임자라고 생각했을 듯하다. 호놀룰루 동물원은 동물들의 집이니깐 그러려니 했어야 했는데 아이들은 나도 어렸다. 아이들은 아직도 공작새를 깡패로 기억한다. 그놈도 나를 욕쟁이 아줌마로 기억할 것이다. 둘 다 억울할 일이니 이제 시간도 많이 지났고 그냥 퉁 쳤으면 좋겠다.
동물원 주차는 1시간에 1 달러고요 최대 6시간 가능합니다. 와이키키 쉘 주차장을 이용하면 무료이긴 하나 얼라들 데리고 걷는 게 힘들어요. 그냥 쿨하게 주차비 지불하시는 게 서로 좋아요.
말씀드렸듯이 호놀룰루 동물원에서 하는 섬머 캠프가 있어요. 영어가 좀 가능하고 동물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영어가 가능해야 하고 부모님 연락처가 있어야 해요. 설마 아이 맡기고 호텔 방 번호 남기는 부모가 있을까요.
홈페이지 참고하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