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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승은 Jul 10. 2017

알고 가자! Dole Plantation ㉙

세계 최고 미로만 기억하지 말고...

사실 몇 가지 이유로 올까 말까 망설였던 곳이다.  오랜 세월 골드미스로 엄청난 재력을 마련했던 친구가 품절녀로 등극하던 날 그녀는 하와이로 떠났다. 모아 놓은 돈도 많은데 19박 20일 캐리비안 크루즈라도 타고 올 줄 알았건만 기껏 보내온 사진이 돌 플랜테이션(Dole Plantation) 앞에서 다정하게 파인애플 끌어안고 찍은 사진이라니. 나는 파안대소하며 “야, 파인애플이 너네 애냐?”라며 놀려줬다. 솔직히 말하면 그 사진을 보며 왜 거기까지 가서 파인애플 농장을 가나 의아했다. 그러나 내가 하와이에 와 보니, 돌 플랜테이션은 하와이 여행자의 필수 코스이며 특히 하와이 첫 방문자라면 필히 돌 플랜테이션 정문에 있는 “DOLE” 사인 앞에서 인증샷을 찍더라는 것이다. 사진을 보며 웃었던 그 장소에 내가 와 있다. 그리고 똑같이 사진을 찍고 친구에게 날려줬다. “결국, 나도 말 안 듣는 이 파인애플과 여기에 와 있다.”





망설였던 Dole Plantation을 오게 된 이유가 있다. 일이 하나 있었다. 일본 슈퍼마켓 돈키호테에서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나와 아이들을 보시더니 한국에서 왔냐며 눈물을 글썽거리셨다. 아니, 하와이 길바닥에 한국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반가워하시니 당황스러웠다. 그리고는 아이들에게 맛있는 것을 사 주겠노라 하셨다. 아이들은 어안이 벙벙해서는 나 한번 할머니 한번 쳐다보는데 할머니도 안 되겠다 싶으신지 그러면 용돈이라도 받으라며 자꾸 아이들 손에 돈을 쥐여 주시는 거다.


“어디서 왔누?”

“천안에서 왔어요.”


그런데 갑자기 할머니의 푹 파인 눈꺼풀 안으로 혼탁해지는 눈동자가 보였다. 눈시울이 벌겋게 되더니 눈을 껌뻑이셨다. 이내 그 자글자글한 손으로 눈물을 훔치시는데, 아... 이건 무슨 시츄에이션이람, 나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안아라도 드려야 하나? 그러기엔 지금 처음 만났는데... 갈등되는 순간이었다.


“내 고향이 온양이야. 스무 살에 와서 한 번도 못 가봤어.” 


아! 이게 무슨 소린가. 나는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다. 누군가에게 신혼여행으로 일생에 한 번 오는 하와이가 할머니께는 한 번 왔다가 한 평생 떠나지 못하는 감옥 같은 곳이었다. 할머니는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셨다고 하셨다. 슈퍼마켓 한가운데에서 이런 드라마를 찍을 줄이야. 나는 할머니의 눈물이 멈출 때까지 어정쩡하게 서서 기다렸다가 두 손을 꼭 잡아드린 후에야 보내드릴 수 있었다. 그 일 이후 갈까 말까 했던 돌 플랜테이션은 우리의 일정에 들어왔다. Dole 씨 집안이 미워서 내 코 묻은 돈을 보태 주기 싫었지만. 아이들에게 플랜테이션 농장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보여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의 역사를 알고 오면 확실히 의미가 깊어진다. 나는 출발 전날 선행학습으로 Dole Plantation에 대해서 설명을 해 줬다. 이미 이올라니 궁전에서 하와이 역사에 대해서 들은 이야기가 있으니 아이들은 어렵지 않게 관심을 가져줬다. 하와이 마지막 왕비인 릴리우오칼라니에게 정권을 뺏어 하와이 초대 대통령이 된 샌퍼드 돌(Sanford Dole)은 바로 하와이를 미국의 50번째 주(州)로 바치며 여러 이권을 장악했다. 샌퍼드 돌의 사촌 제임스 돌(James Dole)은 하와이의 값싼 인력을 이용해서 파인애플과 바나나 플랜테이션을 만들고 미국과의 친분을 이용해서 관세를 내지 않고 큰돈을 벌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는 좋은 일을 한 것인가? 현재 Dole Plantation은 많은 부분 기계화되어 있지만 그 당시의 플랜테이션이란 노동력 착취의 현장이었다. 그런 아픔이 있는 곳에 우리가 왔다.


[출처: 위키피디아 왼쪽부터 샌퍼드, 제임스, 밥 돌들]



엄마의 이런 깊은 뜻을 알기에는 아이들이 어리기도 했다. 아이들이 달려간 곳은 돌 플랜테이션이 자랑하는 세계 최고 미로 (Pineapple Garden Maze)였다. 그래, 올 것이 왔구나. 날씨는 완전 찌는 듯이 더운데 내가 아이 둘과 미로에 고립될 일을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했다. 미로의 시작 지점에서 받은 지도를 보며 잘 따라 가면 목표 지점에서  도장을 받을 수 있다. 모든 도장을 받아 오면 미션 완료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세계 최대 미로라고 해도 설마 못 찾겠나 싶었다. 시작은 좋았다. 눈을 부릅뜨고 지도를 보면서 잘 찾아가 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조금씩 지치기 시작했다.  덥고, 목마르고, 미로고 뭐고 그냥 나가버리고 싶었다. 밀폐된 도서관 장서실에서 느끼는 숨막힘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가 직접 길을 찾아내는 것은 포기하고 똘망한 누군가를 기다리기로 했다. 첫 번째 지점에 도착했을 때 운 좋게 스페인어를 쓰는 아이들을 만났다. 에라이 모르겠다. 설마 정신 혼미한 나 보다 못하겠느냐 싶어서 이 아이들을 따라다니기로 했다. 살다 보면 빠른 포기가 삶을 윤택하게 한다.




겨우 미로에서 살아 나왔다. 아이들과 이리저리 뛰었더니 온 몸이 땀범벅이 됐다. 중간중간 아이들과 함께 온 아빠들이 길잡이를 하는 모습을 봤다. 아빠랑 오면 좋겠구나. 갑자기 남편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졌다. 참, 남편의 빈자리를 미로에서 찾다니 그냥 씩 웃었다.





이제 파인애플 익스프레스를 타고 진짜 돌 플랜테이션을 달려본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이 기차가 놀이공원의 꼬마기차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21세기의 우리 아이들에게 하와이는 당당하게 와서 즐기다가 편하게 퇴장 가능한 휴양지로 비칠 수 있겠지만 불과 100여 년 전 하와이 이민 1세대들은 쬐그만 배에 갇혀 60여 일 동안 태평양을 건너 이 곳에 왔다. 두 달 동안 그 작은 배 안에서 먹고 싸고 오면서 없던 병도 걸렸을 것이다. 그렇게 생사를 넘나들며 도착했다 한 들 다수는 이미 병에 걸려 입국 거부되었고 또 다수는 서류 불충분으로 왔던 길을 돌아가야 했다. 그리고 어렵게 하와이에 입국한 노동자들은 사탕수수와 바나나, 파인애플 플랜테이션에서 살벌하게 착취당하며 돈을 벌었다. 그렇게 죽어라 일해서 받았던 돈, 일당 70센트를 모아 나라를 위해서 독립운동 기금을 보냈던 것이다. 파인애플 익스프레스가 열심히 달리는 동안 나는 이 땅이 우리 어르신들의 피와 땀으로 또 설움과 고통으로 일궈진 것이라며 열심히 설명했다. 지금은 미로만 기억에 남을지라도 엄마가 침 튀기며 설명했던 이야기 중 한 줄이라도 기억했으면 좋겠다며 마무리를 지었다.


[최초의 하와이 이민선으로 알려진 갤릭호, 출처: 국가기록원]









저희는 파인애플을 마트에 널려 있는 것이나 봤지 어디서 어떻게 자라는지 나무를 본 적이 없었어요. 생긴 모양이 선인장처럼 뾰족해서 파인애플도 선인장처럼 꼿꼿하게 홀로 자랄 것 같았는데 의외였죠. 파인애플 어떻게 자라는지 알고 계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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