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엄마 vs. 미국 엄마
션 엄마가 비싸게 주고 샀을 아이언맨 풍선은 파티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다. 많은 아이들의 꿈과 희망으로 보란 듯이 둥둥 떠 계셨어야 했을 분인데 션과 신토불이 사나이가 흥분해서 발로 차고 놀더니 처음엔 머리가 떨어져 나갔고 바로 다리가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둘은 아이언맨의 머리로 축구를 했다.
아... 저게 얼마 짜린데... 아이언맨 머리로 축구를 하다니 나는 속이 상했다. 몇 번이나 신토불이 사나이를 불러서 무언의 레이저 눈빛을 쏘아봤으나 못 알아먹었다. 몰랐을리 만무하고 분명 무시한 것이리라. 어쨌거나 그 귀한 아이언맨이 엽기적으로 천장에 들러붙어 있는데 나의 짱가 션 엄마는 한 마디 꾸중이 없다. 오히려 내가 미안했다. 내가 당장 아이언맨을 끌어다가 외과 수술이라도 해야 하나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알아서 그만 해 주기를 기다리다가 지친 나는 아이들이 너무 심한 듯하여 신토불이 사나이를 불러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신토불이 사나이는 엄마만 혼낸다며 억울함과 서운함을 온몸으로 보여줬다. 그러자 어디선가 나타난 짱가가 이런 말을 한다.
“아이들 일에 너무 관여하지 마시지요. 한국 엄마들은 따라다니면서 시시콜콜 너무 잔소리를 하는데 언니도 좀 그래요. 하하하~”
예상치 않았던 부분에서 그녀는 훅 치고 들어왔다. 나도 나름 잔소리 안 하고 아이들의 자율성을 보장한다고 자부하는 엄마였는데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는 기분이었다. 내가 원래 그랬던가 아니면 하와이에 와서 그렇게 변한 것인가. 충격에 휩싸여 미국 엄마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넓은 홀에서 넘어지고 부딪치고 정신줄 놓고 뛰어노는 것은 코리안이나 아메리칸이나 똑같은데 어쩜 아메리칸 엄마들은 아이가 뛰다가 넘어져도 뛰지 말라는 말 한마디를 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엄마는 옆에 서 있기만 할 뿐 일으켜 주거나 도와주지도 않았다. 나에겐 늘 불안한 놀이터인 에어 바운서에서 놀고 있는 어린 쌍둥이 아가들도 엄마는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다. 아이들이 정신없이 뛰다가 혹시 친구랑 머리를 박고 울지는 않을까, 이를 다치는 건 아닐까, 다리를 삐는 건 아닐까 나에게는 항상 걱정이 됐던 그곳에서도 놀이의 주체는 아이였다.
나라면 어땠을까? 옆에서 날뛰는 언니 오빠들한테 아가가 있으니깐 좀 살살 뛰어달라고 부탁했을 것 같은데 미국 엄마는 그냥 잘한다고 추임새만 넣지 아이들 놀이에는 절대로 관여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놀이에서 배운다고 하지만 요즘 우리 아이들은 놀이 조차도 ‘놀이 교육’으로 학습하니 실제로 놀이를 통한 배움은 차단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하여 션의 생일날 아이들은 놀았고, 엄마는 한 수 학습했다.
생일파티를 마치고 아이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오후가 되니 비가 내릴까 말까 하고 있었다. 신토불이 사나이와 션은 생일파티의 흥분을 식히지 못하고 동네 분수에 주저앉아서 놀고 있었다. 션 엄마의 일침만 없었다면 나는 옷도 없는데 젖으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땀 흘리고 놀았으면 이제 들어가서 씻어야지 그게 뭐하는 짓이냐, 어두워지는데 분수에서 놀면 감기 걸린다, 빨리 집으로 들어가라 등등 잔소리를 한 바가지는 했을 것이다.
이제 에어 바운서도 집으로 갈 시간이다. 설치는 무료지만 반납은 추가로 돈을 내거나 직접 해야 한다고 했다. 엄마가 둘이나 있는데 못할게 뭐 있냐며 겁 없이 소매를 걷어붙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에어 바운서의 공기를 빼기 시작하는데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퍼붓는 것이다. 빗속에서 이러고 있자니 에어 바운서를 접는 것이 아니라 마치 폭풍에 난파된 크루즈에서 구명보트를 펴는 것 같았다(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우산을 쓰는 건 처음부터 포기했고 비를 쫄딱 맞으며 두 엄마는 어마어마한 에어 바운서를 미친 듯이 밟아서 공기를 빼고 또 말았다. 비에 젖은 생쥐 꼴로 이러고 있으니 서로 보기만 해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공기는 어떻게 빼긴 뺐는데 그다음이 문제였다. 비를 맞으니 에어 바운서 덩어리는 더 무거워졌다. 차까지 운반은 어떻게 한다냐. 이미 못 할 것이 없는 특전사가 된 두 여자는 돌덩어리 보다 더 무거워진 이 덩어리를 공 굴리듯이 굴리기 시작했다. 나는 군대 안에 들어왔더니 군사 훈련시킨다며 구령에 맞춰 굴려줬다. 기가 막혀서 깔깔거리며 웃었고, 웃다가 또 다리가 풀려서 주저앉았다가를 반복했다.
어떤 엄마인들 아이에게 악다구니 쓰고 살고 싶겠는가. 나도 그림같이 고상하게 남매를 키우고 싶다. 그러나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하루에도 몇 번씩 뒷목을 잡고 가슴에 ‘참을忍’을 수십 번 새기며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는 자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내가 엄마라서 엄마 편만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우리 사회는 엄마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엄마 역시 아직은 미완성인 사람이라는 것을 간과한다. 그래서 엄청난 직책에 앉은 미완성의 엄마는 그 자리에 나를 맞추기 위해서 뱁새처럼 가랑이 찢어져라 뛰는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엄마들은 전 세계 어느 엄마들보다 피로하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엄마가 노력할수록, 엄마의 상(像)이 커질수록 아이는 엄마의 큰 그림자 안에 갇히게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내가 ‘나의 엄마, 박 약사님’을 세상 누구보다 존경하는 이유가 엄마의 그림자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엄마와 함께 하지 못했던 시간 때문에 많이 서운했지만, 그 덕분에 나는 많은 실수를 했고 그만큼 자랐던 것 같다.
생일파티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피냐타였다. 아이들은 새로운 것에 신이 났고 원 없이 몽둥이를 휘둘렀다. 그리고 엄마가 제한하던 사탕과 젤리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행복했던 그 마음은 아이들 마음에 박혔고 나는 “따라다니며 잔소리 좀 그만해요.”라는 그 말을 가슴에 담았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션 엄마가 그때도 좋았고 지금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