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아우 쇼 "볼까?" vs. "말까?"
하와이 캠프 철수할 날이 다가오자 우리는 눈썹 휘날리게 관광객 모드로 하와이 명소를 훑고 다녔다. 모르는 것은 네이뇬에게 물어봤으며 션 엄마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루아우 쇼만은 쉽게 결정할 수가 없었다. '루아우(Luau)'란 하와이 말로 ‘만찬’을 뜻하며, 루아우 쇼는 만찬과 함께 하와이 민속 공연을 보는 디너쇼다. 여행서에서 소개하는 루아우 쇼는 다섯 가지였지만 얼라를 동반한 무수리의 신중한 선택을 도와줄 만한 팁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게다가 우리가 한국에 살면서 부채춤 디너쇼를 예약하지 않듯이 현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루아우 쇼에 대한 정보를 자신 있게 주지 못했다.
와이키키에서 지내면서 몇몇 유명 연예인들과 마주쳤는데 그분들은 보모와 친정엄마를 동반하셔서 아이들은 모두 그분들이 건사하시고 엄마는 고상하게 움직이셨다. 보모를 동반하지 않는 비연예인 엄마는 "루아우 쇼"를 끝까지 주저했다. 루아우 쇼 입장료는 비싼데 아이가 끝까지 잘 봐주면 고맙지만, 만약에 쇼 중간에 '무섭다', 또는 '지겹다'며 보채기 시작하면 비연예인 엄마는 중간에 아이 데리고 퇴장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망하는 거다. 쇼를 보자니 뭘 봐야 성공할지 모르겠고, 안 보고 가자니 여기까지 왔는데 숙제를 안 하고 돌아가는 느낌이 들어서 갈등했다. 다섯 루아우 쇼 중에 오직 하나만 봤지만 다른 분들은 몰라도 아이 엄마들을 위해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출처: 매직 오브 폴리네시아 홈페이지]
우리는 ‘매직 오브 폴리네시아(Magic of Polynesian)’으로 결정했다. 일단 칼라카우아 애비뉴에 있는 홀리데이인 비치코머(Holiday Inn Resort Waikiki Beachcomber)에서 하기 때문에 접근성이 좋고, 아이들 입장에서는 하와이 민속 공연만 주구장창 나오는 것보다는 마술과 훌라춤이 함께 나오기 때문에 훨씬 집중하기 수월할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쇼를 정하고 나니 또 한 가지 고민스러운 것이 생겼다. 루아우 쇼라는 것이 밥도 먹고 쇼도 보는 것인데 아이들과 저 공연장에서 밥을 먹는 것이 괜찮을까, 입맛에는 맞을까,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음식이 가격 대비 괜찮을까도 걱정이고 비싼 음식 시켜놓고 아이들이 깨작거리면 이 엄마는 또 영웅본색 할 텐데 그것도 우려됐다. 결국 홈페이지를 통해서 Show Only를 예약했다. 모름지기 약은 약국에서, 밥은 식당에서 먹자. 공연장에서 밥을 먹는 건, 그것도 불쇼를 했던 밀폐된 공간에서 아이들과 먹는 건, 그게 뭔들 내키지 않았다.
[비싼 밥을 먹으면 미리 입장하여 앞자리에 앉아서 쇼 전에 식사를 합니다.]
칼라카우아 애비뉴에서 홀리데이인 비치콤버로 들어가는 진입로는 그냥 지나치기 딱 좋게 생겼다. 내비게이션한테 뒤통수 맞은 게 한두 번이 아니라 정신 바짝 차리고 운전했다. 만약 진입로를 지나친다면 그 길이 일방통행인 관계로 어디선가 다시 돌아와서 칼라카우와 애비뉴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뒷좌석 파이터들에게 제발 조용히 해 달라고 부탁했다. 엄마가 한방에 호텔을 찾지 못하면 괴물로 변신할 수도 있으니 잠시만 합죽이가 되자고 사정했다. 뒷좌석 파이터들의 협조 덕분인지 호텔 진입로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이건 마치 차로에서 보도블록을 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차를 발레파킹 자리에 시원하게 정차시키고 직원에게 주차증을 받았다. 와이키키에서 발레 파킹이라니 꿈이냐 생시냐! 아이들은 마술쇼를 본다는 사실에 들뜨고 엄마는 4시간 발레 파킹에 단돈 6불이라는 꿀팁을 알아내서 신이 났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매표소로 향했다. 직원에게 예약자 이름을 불러주니 아주 퉁명스럽게 표를 건네준다. 하와이에서 이 정도로 불친절한 사람은 만나기도 힘든데 아주 인상적인 양반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잊기 전에 그분께 주차 확인을 부탁했다. 역시 아무 말 없이 도장을 꾹 누른다. 그리고는 "First come, First served!" 란다. 영혼 없는 목소리였다. Show Only 표를 산 사람들은 5시 45분부터 선착순으로 자리를 잡는다는 말이니 일찍 올라가서 자리부터 잡았다.
[내부는 춥습니다. 아이들 겉옷 준비하세요.]
우선 자리를 찜하고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와서 사진을 찍어줬다. 공연 중 사진 촬영은 당연히 안 될 것이고 공연이 끝나면 밖은 어두워질 테니 인증샷은 미리미리 챙겨야 할 것 같았다. 아이들은 이런 엄마의 깊은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귀찮아요. 그냥 쇼 다 보고 찍으면 안 돼요~요~?”라고 한다. 밖은 벌써 와이키키 저녁의 분위기가 물씬 났다. 전 세계에서 온 여행객들이 화려한 옷에 기분 좋은 향기를 풍기며 거리로 나와 있다. 나는 남매의 사진을 이렇게 저렇게 찍어주고 지는 해를 바라보며 오늘 저녁은 또 뭘 먹여야 하나 생각했다. 에잇! 된장, 애 엄마는 아름다운 석양을 보면서도 뭘 먹여야 하나 그 고민뿐 이라니...
[와이키키 치즈케이크 팩토리 = 강남역 뉴욕제과]
다행히 홀리데이인 비치코머 바로 앞에 그 유명한 치즈케이크 팩토리가 계셨다. 왕년에 ‘강남역 뉴욕제과’가 만남의 장소였듯이 치즈케이크 팩토리는 와이키키의 뉴욕제과인 듯했다. 아직 밥시간도 이른데 사람들은 그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공연이 끝나면 7시 30분이고 발레파킹은 9시 45분까지 가능하니깐 공연이 끝나면 치즈케이크 팩토리로 건너가 저녁을 먹고 차를 빼서 집에 가면 되겠다는, 전문 용어로 ‘한붓그리기’가 떠오른 것이다. 스스로 천재가 아닌가 감탄했다. 아이들에게 잠깐 여기 있으라며 혼자 후다닥 치즈케이크 팩토리로 달려갔다. 시간이 6시도 안 되었지만 사람들이 차기 시작했다. 순간 머릿속으로 단순 계산을 시작했다. 6시부터 7시 30분이면 90분이고, 5분에 한 명씩 이름을 부른다면 18번 즈음될 것 같았다. 직원에게 내 이름을 대기 명단 스무 번째에 올려 달라고 했다. 직원은 살짝 의아해했지만 그렇게 내 이름은 6시부터 대기 리스트에 올라가 있었다.
쇼가 시작됐다. 식사를 예약하지 않았기 때문에 엄청 좋은 좌석은 아니었지만 아이들과 보기에는 충분했다. 아이들이 마술사의 영어를 못 알아 들어도 신기하게 깔깔거리며 웃었고 마술쇼 중간중간에 펼쳐지는 민속춤, 불쇼 등도 흥미롭게 보았다. 아이들은 완전 몰입했고 덕분에 엄마도 편안하게 즐겼다. 공연은 대만족이었다.
공연을 마칠 때 치즈케이크 팩토리에 내 순번이 지나가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되기는 했다. 아이들은 그때서야 배가 고프다는 것을 느꼈는지 된장찌개가 아니어도 잘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두근두근 치즈케이크 팩토리로 넘어갔다. 저녁 7시 30분이 넘으니 역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그러나 우리는 5분도 안 기다리고 바로 착석했다. 스스로 놀라웠다. “엄마! 어떻게 우리는 바로 들어가요?” “엄마가 아까 잠깐 내려갔다가 왔잖아. 그때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왔지.” 원래 엄마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치즈케이크가 떨어진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솔직히 내 말만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떨어지리라는 확신이 없었다.
아이들은 공연도 잘 보고, 잘 먹고 이제 하품을 시작했다. 치즈케이크 팩토리까지 왔는데 치즈케이크를 못 먹고 가게 생겼다니 아쉬웠다. 어쩔 수 없이 치즈케이크는 포장해서 가기로 했다. 아이들이 잠드니 정말이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다. 밖은 요트 불빛으로 반짝이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이제야 오롯이 나만의 휴식시간이 된 것이다. 나는 흥분된 마음을 누르며 치즈케이크 박스를 열었다. 그리고 한 입 물었다. 입에서 사르르 녹았다. 밤 11시에 치즈케이크라니, 녹아도 너무 잘 녹을 시간 아닌가! 그리고 집에 커피가 한 톨도 없다는 것이 생각났다. 에잇! 된장, 그렇게 물과 치즈케이크 두 조각을 흡입하고 뿌듯하게 잠이 들었다.
여러모로 기특한 날이었다.
혹시 필요하실까 올려봅니다.
옷은 따뜻하게 입고요.
공연장 복도나 통로에 유모차 세워 놓으시면 안 되고요.
마술사 히로카와가 하는 쇼는 사전에 스케줄 확인하시고 예약하시고요.
메뉴는 바뀔 수도 있고요.
팁은 가격에 포함된 거 아니고요.
음료는 돈 주고 사 드실 수 있고요.
주차 확인 가능하고요.
알아서 주차하신 경우에는 주차비 내라고 할 수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