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우오칼라니 공원에서 유니콘 문신을 ㊱

아쉬운 빅아일랜드 그룹 투어 이야기 1탄

by 송승은

하와이는 주요 8개의 섬과 100개 이상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에서도 우리가 주로 하와이라고 부르는 곳은 오아후 섬이다. 아이들은 오아후에 올 때부터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작은 섬들을 기다렸다. 그런데 어쩌나, 엄마가 가고 싶은 섬은 작은 섬이 아니라 가장 큰 빅아일랜드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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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학원에 내려주고 커피 한 잔 하기 위해 세이프웨이 안에 있는 스타벅스에 들렸다. 어쩐 일로 테이블은 남고 의자는 부족했다. 둘러보니 한쪽에 한국말로 통화를 하시는 아주머니의 테이블에만 의자가 남아 있었다. 나는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의자를 하나 써도 되겠냐고 물으러 갔다. 그런데 의자 얻으러 간 내가 그냥 그 자리에 앉아서 수다를 떨게 된 것이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사교적이었던가. 나도 많이 발전했다. 뜬금없이 세이프웨이에서 만난 아주머니(지금은 하와이 언니라고 부름) 이야기를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 분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분 가족이 빅아일랜드에서 20년 넘게 사시다가 얼마 전에 오아후로 이사를 오셨다는 것이다. 내가 하는 여행이라는 것이 특수성이 있는데 엄마 혼자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교통편, 숙소, 먹을거리들이 기본은 되어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 데리고 엄마 혼자 여행을 한다는 것이 무탈하면 ‘훌륭한 가이드’지만 뭔 일이라도 생기면 ‘무모한 보호자’가 된다. 무턱대고 움직였다가는 애들 데리고 노숙을 하거나 굶길 수는 없으니 이렇게 현지에서 오신 분을 만나니 옳다구나 잘 만났다는 심정으로 나의 궁금증을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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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궁금했던 것이 운전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마침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분들이 오아후로 오시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빅아일랜드에서 남편분이 큰 교통사고를 당하셨다는 것이다. 일단 지대가 높고 안개가 자주 낀다는 말로 시작하셔서는 길이 험해서 습한 날에는 미끄러지기도 한다는 말로 마무리를 지으셨다. 우리는 제주도도 큰 섬이라고 하지만 빅아일랜드는 제주도의 8배의 크기다. 그래서 공항도 동쪽에 힐로(Hilo), 서쪽에(Kona) 두 군데에 있는데 만약 내가 코나 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내려서 섬을 한 바퀴 돈다고 생각해 보면 18시간 넘게 운전을 해야 한다. 그런데 길이 험하고 밤에는 가로등이 많지 않아 앞에 차가 없으면 운전하기 힘들 것이라고 하니 전생에 택시 운전사였다고 까부는 나도 자신감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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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항상 타협의 연속이지만 여행도 마찬가지다. 여덟 배나 작은 제주도를 수차례를 가고도 아직 한라산 꼭대기에 올라가 보지 못한 내가 빅아일랜드를 한큐에 훑어보려고 하는 것은 욕심이 과한 것이다. 그래서 내린 결정이 여행사에서 파는 빅아일랜드 원데이 투어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빅아일랜드에서 1박 2일도 부족한데 원데이라니 썩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며칠 동안 혼자 운전하고 다닐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좀 편하고 싶기도 했다. 누가 운전해 주는 차를 타 본지가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누군가 알아서 데리고 다니면서 내리라는 곳에서 내리고 먹으라고 하면 먹기만 하면 되니 얼마나 달콤한 여행인가. 돈이 더 들고 빅아일랜드 겉핥기라는 맹점이 있지만 내가 고를 수 있는 선택 중에서 제일 나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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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22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새벽 4시에 일어났다. 밖은 아직 깜깜하고 조용하다. 평상시에는 아침에 일어나기 힘든 아이들도 이런 날은 “일어나. 시간 됐다.”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벌떡 일어나서 화장실로 향하니 놀라운 인체의 신비이다. 여행으로 키운 아이들답다. 순식간에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고요한 와이키키 거리가 이다지도 낯설을 줄이야. 마치 [브루스 올마이티 Bruce Almighty, 2003]의 짐 캐리가 된 것 같았다. 비행기 안은 고요했다. 사람들은 모두 끊어진 아침잠을 이어서 달리고 있었다. 수다쟁이 노란메리야쓰도 곯아떨어졌다. 오직 신토불이 사나이만 안 자고 50분을 부스럭거렸고 정확히 8시 12분에 빅아일랜드에 도착했다. 여행지에 도착했더니 누군가 나와서 반겨준다. 좋다. 그리고 우리를 차에 태우고 달린다. 심지어 가면서 재미있게 설명도 해 준다. 내가 해야 할 모든 일들을 누군가 해 주고 있다. 완전 좋다. 강사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내가 수업을 준비하지 않고 누군가 수업을 해 주면 그게 그렇게 신날 수가 없다. 이것도 같은 맥락이다. 듣기만 하면 되다니 너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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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mmage: 뒤지다'는 뜻을 알면 딱 와 닿는 Rummage Sale]


가이드는 첫 여행지로 퀸 릴리우오칼라니 가든으로 향했다. 이곳은 1900년대 초에 일본 이주민들이 100주년을 기념으로 만든 일본식 정원이란다. 그냥 딱 봐도 일본스러웠다. 그리고 세월만큼 우거졌다. 가이드가 릴리우오 칼라니 가든에서 20분 있다가 출발하겠다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이들이 차에서 내려 뛰었다. 무언가를 발견한 것이다. 힐로 사람들이 모여 큰 행사를 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음식도 팔고, 단체로 게임도 했다. 한쪽에서는 어린아이들을 위해서 타투(문신이라고 하는데 스탠실 수준)를 해 주고 있었다. 노란메리야쓰는 그 아이들 틈에 껴서 그게 하고 싶어서 다른 건 구경도 못 하고 서있었다.


P1010270.JPG [해 줄 때까지 난 여기 있을테다...]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해 본 엄마라면 백 번 공감하는 부분이겠지만 아직 여행을 준비하는 단계이거나 홀로 여행족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이런 순간이다. 릴리우오칼라니 공원을 보러 왔으면 부지런히 둘러봐도 시원치 않을 판인데 아이의 이런 돌발 행동 때문에 여행의 목적이 퇴색된다고 여길 수도 있다. 신토불이 사나이가 그러했다. 구경하러 와서 팔에 그림 그리겠다고 조르는 동생도 또 그걸 해결 해 주려는 엄마도 맘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어느 순간 아들은 다른 팀들과 열심히 공원을 거닐고 있었다. 내 새끼도 남의 새끼도 결국 다 내 새끼처럼 데리고 다니게 되는 것이 그룹 투어의 묘미가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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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메리야쓰가 멀뚱멀뚱 서 있으니 친절한 힐로 언니들이 하고 싶으면 줄을 서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오직 10분이었다. 나는 힐로 언니들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다. “우리가 그룹 투어 중이라서 시간이 10분밖에 안 남았는데 미안하지만 먼저 좀 해 주면 안 될까?” 힐로 언니들은 미리 줄을 서 기다리는 다른 아이들 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그림을 그려주기 시작했다. 우리의 여행에서 이 부분이 두고두고 후회가 되는 순간이다. 솔직히 이러면 안 되는 거다. 그 타투가 뭐나 된다고 새치기까지 해야 했나. 시간이 안 돼서 못하면 그 역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데 이렇게 어른의 편법을 동원하여 얻은 것이 과연 잘 한 짓인가 그 이후 오랫동안 반성했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안 그러는데 이상하게 둘째한테는 엄마의 이성이 안단테가 된다. 그렇게 노란메리야쓰의 팔에 유니콘 문신 하나 새기고 나의 퀸 릴리우오칼라니 정원 구경은 쫑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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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에서 다시 만난 신토불이 사나이는 구경 못한 엄마를 위해서 자기가 본 커다란 연못과 빨간 다리, 그리고 석가탑 같이 생긴 탑도 있다며 열심히 설명해 줬다. 그러면서 동생에게 너 때문에 엄마가 구경도 못했다며 나무랐다. 둘 다 좀 웃겼다. 이 모습을 본 다른 일행들이 신토불이 사나이를 효자라며 칭찬하고 또 오빠는 자기한테 핀잔을 주는데도 노란메리야쓰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순간 이 분은 오직 자기 팔뚝에 유니콘 문신을 어떻게 얻었는지 일행들에게 자랑하느라 바빴다. 원래는 시간이 없어서 못 할 뻔했는데 엄마가 언니들한테 영어로 뭐라고 말해서 해 줬다며 자랑을 했다. 한 번 샤워하면 사라질 저 유니콘 타투가 그렇게 자랑스러워서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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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푼수 같은 소리지만, 나 역시 릴리우오칼라니 정원보다 노란메리야쓰의 그 미소를 보는 것이 더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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