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연의 작품, 살아있는 화산에 가다 ㊲

빅아일랜드 그룹 투어 이야기 2탄 하와이 화산 국립공원

by 송승은

하와이 언니에게 들었던 대로 빅아일랜드에서 운전은 녹록해 보이지 않았다. 날씨는 다행히 맑았지만 화산을 보러 가는 길은 절벽을 끼고 굽이굽이 돌게 되어 있어 보기만 해도 어질어질했다. 정신없이 돌다 보면 어느새 창밖에는 검은색 카펫을 바다까지 깔아 놓은 듯 한 풍경이 펼쳐진다. 그냥 입이 떠억 벌어진다. 그리고 바다가 말하는 것 같다. '인간들아! 너희들은 완전 쬐만한 존재야. 자연 앞에서 그냥 찌그러져.'



검은 잿빛은 근엄하다 못해 두렵게까지 느껴졌다. 이미 사진으로 보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마주하니 그 스케일에 압도되어 한참을 멍하니 보고 있게 했다. 검은 카펫은 뜨거운 용암이 바다를 만나면서 만들어진 대자연의 작품이다. 그리고 그 위로 우리가 걸어 다녔다. 멀리서 보면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부드러운 카펫 같지만 만져보면 거칠고 날카로웠다. 아이들은 뛰고 싶어 했지만 각별히 조심시켜야 했다. 그래서 이곳이 더욱 경건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아름답고 빛나지만 겸손해야 했다.




어느 생명체도 허락하지 않을 것 같은 검은 돌들 사이사이로 초록 풀들이 보였다. 용암이 흐르고 난 자리에 어떻게 싹을 피웠는지 대단한 녀석들이었다. 바로 고사리였다. 아이들도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양치식물의 대명사, 극강의 생명력으로 알려진 녀석들 다웠다. 여기저기 퍼져 있는 고사리를 보며 결국 자연에 얹혀사는 우리도 저 고사리처럼 순종하며 질기게 버텨야 하는 것이 진리가 아닐까 생각해 봤다. 그러고 보니 빅아일랜드 사람들은 고사리 같기도 하다. 산업 혁명을 위해서 치열하게 살지는 않지만 화산을 이용해서 경제 활동을 하고 있고, 화산이 만들어 준 토양으로 농사를 짓는다. 거대한 부를 쫒지도 않지만 자연을 거스르며 살지도 않는다.




이어서 용암이 만든 동굴, 절벽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또 한 번 입을 벌리고 한 참을 바라봤다. 대영박물관에서도 오르세 미술관에서도 이렇게 넋을 잃고 빠져 들지는 않았다. 자연이 드넓은 카펫으로 거대한 힘을 과시했다면 이번에는 얼마나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 예술성을 자랑하는 것 같았다. 분명 마그마가 터지고 용암이 흐르면서 바닷물과 공기가 만든 작품일 텐데 석수장이가 평생을 걸쳐 조각한 것처럼 디테일이 살아있었다. 아직 가 보지는 못 했지만 스페인에 있는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떠올랐다.




빅아일랜드는 용암 덕분에 계속 땅이 넓어지고 있다고 한다. 좁은 땅에서 나고 자란 우리로서는 땅도 넓어지고 가우디스러운 작품들도 계속 늘어나는 빅아일랜드가 부러울 수도 있겠지만 또 한편으로 이 모든 것들이 화산이 한 번씩 터져줘야 가능하다고 생각을 하니 작지만 내 나라 내 땅이 감사하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자리를 옮겨 토마스 재거 뮤지엄으로 향했다. 입구에서 도착하니 킬리우에아 칼데라가 “활화산은 처음이지? ”라며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이 곳이 바로 드라이브로 접근 가능한 전 세계 유일한 칼데라 되시겠다. 그리고 그 안에 할레마우마우 분화구가 있다. 할레마우마우 분화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이 보였다. 밤에 오면 시뻘건 용암이 보인다는데, 낮에 오니 불빛은 안 보이고 그 안에서 뭔가 씩씩거리며 성질을 내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야말로 까마득히 옛날 지구과학 수업에서 배웠던 냄비 모양의 지형이었다. 정말 어마어마한 냄비였다. 엄마들은 다 그런 건지 아니면 나만 유난스러운 건지, 이런 걸 보면 마구 설명해 주고 싶어서 아이를 붙잡게 된다. ‘아직 칼데라를 책으로도 접하기 전에 실물을 보니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라는 것이 엄마 욕심이었다. 그러나 감동은 오롯이 엄마의 몫, 아이들은 도통 칼데라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이들은 유황 냄새를 맡고는 똥냄새난다고 엄마의 금쪽같은 칼데라 설명을 잘 듣지 않고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니깐 선행 학습도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토마스 재거 뮤지엄 안으로 들어오자. 아이들은 모니터 앞에 모여 있었다. 할레마우마우 분화구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해 놓은 것이다. 이놈들 좀 전에 엄마가 칼데라 이야기할 때는 그렇게 쌩하게 도망치더니 실제로 보글보글 끓고 있는 용암을 보더니 실감이 났나 보다. 순간 필라멘트에 불 들어오듯이 나에게 빛이 번쩍했다. 아이에게 무언가 가르치려고 한다면 좁은 스코프에서 넓게 확장을 했어야 했는데 입구에서 ‘칼데라’라는 말부터 가르치려고 하니 애들이 다 도망간 것이다. 아이들이 보글보글 끓는 할레마우마우 분화구에 꽂혔으니 작전을 변경하기로 했다.



하와이안들은 할레마우마우 분화구에는 펠레 여신이 살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토마스 재거 뮤지엄에는 ‘펠레의 머리카락’이 전시되어 있는데 ‘펠레의 머리카락’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용암이 분출할 때 공중에서 바람에 의해 급랭하며 사방팔방 퍼지면서 마치 엉킨 머리카락 모양이 된 것이다. 그런데 왠지 이 부분에서 신토불이 사나이가 이상한 질문을 할 것 같았다.



엄마, 펠레(축구선수)의 머리카락이 왜 여기 있어요?


빙고! 그렇지, 내 아들 맞구나. 그 질문 왜 안 하나 했다. 역시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그래서 펠레 여신의 지독한 사랑 이야기가 시작됐다.


“펠레 여신이 어느 날 숲에서 진짜 잘생긴 남자를 봤는데 그 사람 이름이 오히아(Ohia)야. 완전 반한 거지. 그래서 사귀자고 대쉬를 했거든,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히아에게는 사랑하는 여자(레후아)가 있었던 거야. 뭐, 뻥 차인 거라고 할 수 있지. 그런데 순순히 물러날 펠레 여신이 아니지. 펠레 여신은 오히아와 레후아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열이 받아서 오히아를 나무로 만들어 버렸다네. 무시무시하지? 그러니깐 레후아가 울며불며 신들을 쫒아가서 남편을 돌려 달라고 빌고 또 빌었어. 그런데 다른 신들도 펠레 여신이 무서워서 그 부탁은 못 들어주고 대신 레후아를 오히아 나무에 피는 꽃으로 만들어줬대. 그래서 오히아 나무에서 피는 꽃의 이름이 레후아 꽃이라는 거야. 그만큼 펠레 여신은 성질도 아주 더럽고, 뒤끝도 작렬이라고. 그래서 하와이 사람들은 할레마우마우에 사는 펠레 여신을 열 받게 하면 불을 뿜으면서 화산이 터지는 거라고 믿고 있다네.”




아이들은 칼데라 설명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집중력을 보였다. 나의 이야기가 꽤 재미있었는지 옆에서 모르는 어른들도 살짝 듣고 계시는 것이 느껴졌다. 이 엄마의 엄마답지 않은 적나라한 표현들 때문에 속으로 웃으시는 듯했다. 그러다가 나의 이야기가 끝나는 지점에서 노란메리야쓰가 순식간에 마무리를 지었다. “엄마도 화나면 불을 뿜잖아. 뿌아~~~” 그 순간 듣고 계시던 분들은 다 같이 빵 터져 주시면서 누가 누가 듣고 있었는지 다 들통나버렸다. 화들짝 놀란 나는 "그러니깐 화산 폭발 안 하게 잘하란 말이다."라며 아이의 두 손을 꼭 잡고 끌고 나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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