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아일랜드, 헤어짐은 아쉽지만 ㊳

괜찮아, 또 만나면 되잖아!

by 송승은

돌아가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새벽 4시부터 설쳤더니 내 몸도 천근만근이었다. 아이들도 이제는 피곤한지 모든 수다를 멈추고 절전모드에 들어갔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잠시 눈을 붙여 보려고 하는데 갑자기 신토불이 사나이가 들뜬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엄마! 엄마! 구름 위에 산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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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윈도 쉐이드를 열고 밖을 바라봤다. 가슴이 뭉클하다 못해 저렸다. 눈물이 핑 돌았다. 비행기는 하얀 구름 위를 유유히 흐르고 있는데 그 구름 위로 산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바로 마우나 케아 화산이었다. 착각은 자유, 망상은 해수욕장이라지만 구름 사이로 빅아일랜드가 나의 아쉬움을 괜찮다며, 다음에 또 만나면 된다고 토닥거려 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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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나 케아는 해발 4200미터가 넘고 해수면에 감춰진 곳까지 하면 에베레스트보다 더 높은 산이다. 하와이의 한라산 같은 곳이다. 그런데 빅아일랜드에 와서 마우나 케아를 못 보고 가니 솔직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제주도 가서 한라산 문턱에도 못 가보고 온 셈이다. 제주도는 또 갈 수 있지만 마우나 케아는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몰라 더욱 서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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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아일랜드에 오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커피였다. 세계 어느 지역 특산물이 나를 바다 건너 움직이게 할 수 있을까. 물론 하와이안 코나 커피는 마트에 가도 살 수 있는 물건이기는 하지만 진짜 100% 퓨어 코나 커피를 농장에서 마셔보고 싶었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커피 때문에 빅아일랜드에 가자고 하기가 쑥스러우니 세계 최대 활화산을 보러 가자고 했다. 물론 결론적으로 그것도 훌륭했다. 가방 안에서 코나 커피 다섯 봉지가 방실방실 웃고 있으니 피로가 싹 풀리는 것 같았다. 하나는 내 몫이고 나머지는 앤틱광녀와 친구들에게 선물할 아이들이었다. 코나 커피는 세계 3대 커피 중에 하나라는데 세계 랭킹과 상관없이 내 입에 딱 맞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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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심 가득한 빅아일랜드 여행의 목적은 커피농장 방문이었는데 결국 커피 농장도 가보지 못했다는 것을 고백하려 한다. 일행들이 어쩜 한 명도 커피에 관심이 없었다.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전원일치로 마카다미아 넛츠 초콜릿 공장을 가고 싶다고 하시는데 나 홀로 창문에 코를 박고 마카다미아 너츠 박은 초콜릿 공장으로 끌려갔다. 마음속으로는 “여러분! 우리 초콜릿 말고 직접 로스팅하는 커피 사러 갑시다! 가면 커피도 맘껏 마실 수 있답니다.”를 외쳤지만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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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마카다미아 너츠가 박힌 초콜릿을 박스로 바리바리 들고 나왔다. 아이들이 있으니 나 역시 마카다미아 너츠가 묻힌 다크 초콜릿, 화이트 초콜릿, 밀크 초콜릿 등등 이것저것 담았다. 아이들은 신났지만 나는 이미 유체이탈 상태였다. 그리고 그다음 코스는 빅아일랜드 쿠키였다. 이어지는 ‘아이들만 신났다’ 코스. 하와이의 호놀룰루 쿠키도 유명하지만 빅아일랜드 쿠키는 이곳에서 밖에 살 수 없다고 홍보하셨다. 이미 나는 초콜릿 과잉 섭취로 입 안이 얼얼했다. 그런데 그 위에 쿠키까지 먹을 생각을 하니 목이 막히는 것 같았다. 커피도 우유가 들어간 라떼 종류는 안 좋아하는 사람인데 초콜릿 먹고, 쿠키까지는 먹으라니 내 입 안의 미뢰들이 극렬하게 데모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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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까지 공수해 가는 빅아일랜드 쿠키]


죽으라는 법은 없다. '빅아일랜드 캔디스'의 쿠키 시식장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좀비처럼 냄새를 따라 걸어갔다. 바로 커피였다. 쿠키를 팔기 위해서 커피를 계속 내려주고 있었다. 그것도 바로 코나 커피를 말이다. 역시 쿠키를 맨입으로 먹는 것이 나에게만 고역은 아닌 듯했다. 흙빛이 됐던 나의 얼굴은 점점 맑은 기운은 되찾으며 커피 시식 코너에 서서 작은 컵으로 몇 번을 받아 마시고서야. 행복한 기운을 되찾았다. 아이들은 엄한 엄마의 이런 애 같은 모습에 웃겨 죽겠다며 놀리기 시작했다. 나는 커피도 없이 그 많은 초코렛과 쿠키를 먹을 수 있는 너희들이 더 신기하다며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커피빈들 주섬주섬 바구니에 주워 담고는 지갑을 열고 카드를 긁었다. 비록 코나 커피 농장에서 직접 커피콩을 볶아 보지는 못 했지만, 코나 옆동네에서 그들이 광고하는 대로 1등 커피를 샀다며 공식적으로는 뿌듯한 여행이라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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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구글 이미지]


그러나, 내 진심은 아쉽다. 원데이 투어가 짧은 시간에 콤팩트하게 빅아일랜드를 구경하였다는 데 의미가 있겠지만 다시 빅아일랜드를 간다면 그때는 아이들과 일주일 정도 머무를 계획이다. 일단 마우나 케아에 올라가서 구름 위의 산책을 해 보고 싶다. 높은 빌딩에서 도시의 야경을 보는 것 하고는 스케일이 다를 것이다. 천문대에서 하늘을 빼곡하게 채운다는 별들도 봐야 한다. 생각만 해도 숨 막히는 그림이 그려진다. 그리고 하와이 화산 국립공원에 다시 가서 우리가 지나친 트래킹 코스를 걸어보고 싶다. 예전에 캐나다 자스퍼에 있는 에메랄드 호수에서 뜻밖에 등산을 한 적이 있다. 잠깐 산책할 생각으로 시작한 트래킹이 반나절이 넘는 하이킹으로 이어졌었다. 그런데 그때 그 기억이 마흔이 훌쩍 넘은 지금도 기억나는 것을 보면 별을 보는 것도 화산 지역을 둘러보는 것도 잠깐의 시간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을 갖고 충분히 적시고 싶다.


그리고 거북이와 수영을 할 수 있다던 칼스미스 비치에 가서 하루 종일 놀고 싶다. 비치에서 노는 것은 오아후에서도 많이 했지만 자연의 거북이와 함께 수영하는 것은 일생에 올까 말까 한 기회가 아닌가. 아이들은 평생 그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커피 농장은 두 말하면 숨 가쁘다. 마음 같아서는 커피농장에서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라도 받아서 일하고 싶다. 질리게 일하고 질리게 마셔보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빅아일랜드 동네 사람처럼 힐로 타운을 유유자적하게 거닐고 싶다. 해변에서 동네 사람들과 수다도 떨고 서핑도 배우고 싶다. 해변 도로를 달리다가 떨어지는 석양을 보고 싶기도 하고 별똥별이 그렇게 우수수 떨어진다는데 아이들과 돗자리 깔고 누워서 소원을 빌어 보고 싶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열심히 돈만 벌고 있는 남편을 꼭 챙겨 올 것이다.


안녕!

빅아일랜드!

네가 그리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사무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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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이 사진을 보면 그 느낌이 올 수도 있다.


잘 가! 괜찮아, 또 만나면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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