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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승은 May 28. 2017

스피디하게 와이키키로 보내줘! ⑤

이번 여행의 진짜 목적

스피디하게 와이키키로 보내줘!

     

내가 하와이를 너무 만만하게 본 것인가. 비행기에서 내려서 길고 긴 복도가 끝나면 이제 황금빛 해변이 나타날 줄 알았다. 이것은 뭔가? 그 복도의 끝에는 세계 각지에서 모인 인파로 북적거리는 입국심사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줄이 어마어마하다. 저 줄을 서야 하는 것인가? 이 얼라들을 데리고? 룰은 룰이니깐 줄을 서야 하겠지만 아이 엄마들은 홀로 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장애인, 외교관 라인을 별도로 주듯이 따로 좀 빼줬으면 좋겠다. 긴 비행 후에 홀로 서 있는 것도 힘든데 자는 아이를 업고 있는 엄마들, 보채는 아이를 달래는 아빠들, 뛰어다니고 난리 법석 피우는 아이들을 잡는 부모들이 애를 먹고 있었다.


예전에 푸켓 국제공항에 입국할 때 갑자기 노란메리야스가 배가 아프다고 해서는 난감했던 적이 있었다. 비행기에서 먹은 기내식이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때 나는 지나가는 공항직원을 붙잡고 화장실이 어디 있냐고 물었을 뿐인데 친절한 그분은 우리 가족을 따로 데리고 하이패스로 입국심사를 해 준 적이 있다. 그 날 이후로는 나는 입국심사대에서 줄이 너무 길다 싶으면 일단 공항직원을 붙잡고 한번 물어나 본다.



“아이 동반한 사람들을 위한 줄은 없냐?”

물어보는데 돈 드는 거 아니니까 다행히 마음 푸근한 공항 직원이면 길을 열어 줄 것이요. 쌩한 것을 만나면 쿨하게 줄 서서 기다리면 된다. 비행기 탑승도 아이 동반 시 먼저 태워주는데 아이들과 정신없게 거기 서서 기다리는 것보다는 빨리 보내주는 것이 서로에게 윈윈이지 않느냐가 나의 주장이다. 그래서 또 하와이 공항 직원을 붙잡고 물었다. “너네 이렇게 아이들이 많이 줄을 서서 있는데 왜 따로 빼서 입국 심사하지 않니? 아이들과 부모를 위한 줄을 만드는 게 어떻겠니?” 하와이 공항 직원이 나를 보며 씩 웃는다. 이 웃음의 의미는 뭐지? 아이 엄마가 무슨 벼슬이라도 되느냐는 비웃음인가? 그런데 잠시 후 나에게 이쪽으로 오라며 손짓한다. 상대적으로 줄이 짧은 U.S. Citizen(미국 시민) 줄에 서라는 것이다. 신토불이 사나이와 노란 메리야스는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엄마가 까만 아저씨에게 뭐라고 말을 하니 줄이 짧아졌다. 아이들이 엄마를 좀 대단하게 보는 것 같았다. '얘들아, 엄마 이런 사람이야. 앞으로 이런 모습 많이 볼 거다.'  

 


독수리(미국 시민권)도 아닌데 독수리처럼 입장했다. 공항은 언제나 좋다. 헤어짐과 만남이 공존하니 사람들의 반가움과 애틋함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그러나 이번엔 그런 간지러운 상황을 관찰할 시간이 없었다. 비행기 도착 시간에 맞춰서 ‘스피디 셔틀’을 예약해 놓았는데 입국심사대에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았고 짐도 예상보다 늦게 떨어졌다. 냅다 뛰어야 했다. 내가 상상했던 호놀룰루 국제공항 체크인 사진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또 헐레벌떡으로 시작됐다.



알로하! 하와이! 피곤하지도 않은지 신기할 뿐이다.


 알로하! 하와이!

드디어 진짜 하와이 땅을 밟았다. 땅에 키스라도 해야 하나. 호놀룰루 공항 밖으로 나오자 여행사 가이드들이 각자의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와이에 오면 의례히 걸어주는 꽃목걸이 레이는 여행의 시작을 알렸다. 우리에게는 기다리는 가이드도, 레이를 걸어주는 사람도 없었지만 우린 당당하게 걸었다. 피곤했지만 이제부터 우리 셋이 똘똘 뭉치기로 했다. 엄마는 화를 내지 않고 가능하면 뭐든 할 수 있도록 허락하기로 마음먹었고 (과연 가능할까?) 아이들은 엄마를 도와주기로 약속했다. 그렇게 호놀룰루 국제공항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우리 집을 찾아 나섰다.  


호놀룰루 국제공항에서 와이키키에 있는 우리 숙소까지 가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셔틀과 택시를 놓고 저울질을 했었다. 셔틀은 큰 밴을 여러 명이 나눠서 타고 들어가는 시스템으로 우리가 타면 세 명의 돈을 내야 하지만 미터기가 없으므로 길이 막히는 경우라도 마음 편하게 갈 수 있다. 택시는 인원과 상관없지만 만약 그 시간에  길이 막히면 비행기에 내리자마자 택시비 폭탄부터 맞는 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택시비에 심장 쫄깃할 것을 생각하니 뱃속 편한 셔틀을 선택하고 예약과 카드결제까지 다 마친 상태였다. 그러니 입국 수속이 늦어질수록 스피디 셔틀이 떠나 버릴까 봐 마음이 급했다.




"아저씨는 수다중"


다행히 ‘스피디 셔틀’ 배너는 공항 바로 코앞에 걸려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로버츠 하와이를 신청했으면 노란 셔츠를 입은 직원들은 공항 안에 짐 찾는 곳까지 들어와서 짐도 같이 끌어주고 하던데 어찌 된 이유인지 스피디 셔틀 아저씨들은 모두 차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계셨다.



스피디 셔틀 기사 아저씨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여행지의 사람들은 언제나 행복해 보인다. 게다가 이제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이니 기분이 얼마나 좋겠는가. 예약 시에 자기가 묵을 호텔이나 레지던스의 주소를 적게 되어 있으므로 탑승 전에 기사 아저씨가 숙소를 확인하며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셔틀은 하이웨이를 타고 와이키키로 접근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같이 타고 가는 사람들은 모두 호텔에 투숙하는 사람들이었다. 아이들은 창밖으로 펼쳐지는 하와이를 감상하다가 차량에서 틀어주는 하와이 관광 홍보 방송을 집중해서 본다. 아니나 다를까 화산 터지는 홍보물에 빠지신 신토불이사나이는 우리는 저기 언제 가냐고 묻는다. 솔직히 그 순간 아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에게는 화산보다는 운전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들의 말을 흘려들으며 고속도로를 열심히 관찰했다. 스피디 셔틀은 훌륭한 도로 연수 선생님이었다. 와이키키에 들어선 셔틀은 내가 아는 하와이의 모든 호텔을 한 군데 한 군데 다 들르면서 사람들을 모두 내려줬다. 이제 마지막으로 호텔 투숙객이 아닌 우리만 남았다.






그때부터 기사 아저씨도 여유가 생기셨는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길을 잘 모르시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가 하와이 너네 집이냐?”라고 하시길래  “그랬으면 소원이 없겠네요."라고 답했더니 아저씨 웃음이 터지셨다. 하와이 아저씨의 낄낄거리는 웃음에 아이들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우리 엄마 또  무슨 소리를 했길래 저 아저씨가 저렇게 웃지? 이런 눈빛이었다. 스피디 셔틀을 탄 덕분에 와이키키를 한 바퀴 다 돌았다. 그 사이에 나는 신호등 모양과 도로표지판의 위치를 스캐닝했고 일방통행로가 몇 군데 있다는 것도 파악했다. 마지막에 내리는 바람에 기사 아저씨로부터 알짜 정보도 많이 얻었다. 처음에는 우리 숙소 근처의 맥도널드와 ABC마트, 커피숍의 위치, 렌터카센터 위치를 알려주더니 나의 추임새에 신이 나셨는지 요즘 하와이에서 건물을 짓는데 하와이안들이 너무 느리고 일을 안 해서 미국 본토에서 인부들을 데리고 온다는 둥 그야말로 우리나라 택시 기사 아저씨들의  정치 이야기를 듣는 것 마냥 친숙했다. 급기야는 자기가 이야기하다가 길을 놓쳐 놓고는 부끄러우신 듯 경찰이 스피드 건 (speed gun)을 잘 쏘는 지점을 알려주고 가려고 일부러 돌았다고 하셨다. 나는 깔깔 웃음으로 맞장구를 쳐 드렸다.



유쾌한 스피디 셔틀 아저씨 덕분에 웃다가 숙소에 도착했다. 앞으로 한 달간 우리를 지켜 줄 집을 보니 이제 좀 쉬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에 팁을 조금 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셨다. 우리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셨다.



“엄마, 그런데 아까 아저씨 왜 막 웃은 거야? ”


궁금한 건 절대 못 참는 노란메리야쓰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이제야 밝히는 이번 여행의 최고 목적이 바로 그것이었다. 궁금한 것을 알기 위해서는 언어를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아이들이 몸소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비단 영어가 아니더라도 많은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나의 삶을 재미있고, 윤택하게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 영어를 가르치는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리라 생각했다. 즉, 농사를 짓기 전에 땅을 갈아엎어 주는 작업을 하러 온 것이다.   


그나저나 나는 한 달 동안 그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단 한 번도 스피드 건이나 경찰을 본 적이 없다. 다시 생각해 봐도 아저씨 너무 재미있으시다.






호놀룰루 공항에서 이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셔틀버스 로버츠하와이(www.robertshawaii.com) 와 스피디셔틀(www.speedishuttle.com)이다. 가격 차이는 크지 않다. 미리 예약을 한 경우 컨펌 메일을 인쇄해서 직원에게 보여 주면 되고 예약을 못 한 경우에도 현장에서 돈 내고 목적지를 말하면 알아서 다 해 준다. 우리의 경우 한 푼이라도 싼(3명 27.96불) 스피디셔틀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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