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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ttyfree Aug 02. 2020

일터에서 찾은 '나다움'

내 이름은 나답게






 <내 이름은 나답게>, 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의 제목이었다.

 엄마가 없는 결손가정에서 자란 답게가 여느 꼬마아이와 다름없이 천진난만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이야기가 담긴 따뜻한 동화였는데, 이름의 강렬함과는 달리 본내용은 밍숭맹숭했던 기억이 난다.



나 : 무슨 애 이름이 답게야? 이런 이름이 어디있어?
엄마 : 잘 생각해봐. 왜 아빠가 답게 이름을 답게라고 지었을까?
나 : '나답게' 살아가라고 지어준거래.
엄마 : 그렇지. 얼마나 멋있는 이름이니?
나: '답게'가 나답게 사는게 뭔데?
엄마 : 그건 '답게' 스스로 찾아갈 일이지.



 어렸을 때의 나는 그저 그런 '답게'의 인생에서 나다움을 딱히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안 계시다 뿐이지 '답게'가 하는 행동들은 우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논술 교사를 하시던 엄마의 권유로 읽은 책이어서 엄마에게 반문해봐도, 딱히 유쾌한 답을 찾을 수 없어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지 오래다. 지금 생각해보면 '답게' 스스로 그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엄마의 말씀보다 더 선명한 답은 없었는데도.











 늘 실수가 잦고 하는 일마다 삐걱대던 나에게 연이은 실패​들은 크나큰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나보다 어린데도 잘나가는 동기들과 어쩐지 SNS 속 화려한 인생을 사는 것 같은 친구들이 부러웠고, 이는 내 안의 시기와 질투로 이어졌다. 나는 왜 저만큼 못 하지? 내가 많이 부족한가, 뭐가 모자란걸까. 나는 쓸모없는 인간인가봐.


 누군가 말했는데, 질투를 배움과 목표의 카테고리 안에 넣으면 내 인생에서도 음극이 아닌 양극으로 와닿을 수 있다고. '나의 부족한 점을 깨닫고 이를 채우려고 노력하다보면 자기계발에 큰 도움이 된다'라, 머리로는 알겠지만 마음으로는 너무나 먼 이야기였다. 나는 허황되고 터무니없는 얘기라 할지라도, 누군가가 나 자체의 나를 알아줬으면 했다.




 그렇게 지내던 중, 우연히 본 백상예술대상에서 배우 오정세가 한 수상소감이 나에게로 와닿았다.

"여러분들이 무엇을 하든간에 그 일을 계속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계속 하다보면은 평소와 똑같이 했는데 그동안 받지 못했던 위로와 보상이 여러분들을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 어느 격언보다 나에게 힘이 되는 말이었다. 남들이 알아주는 것보단 내가 좋아하는 것, 나를 나로 만들어주는 것들을 '내가 먼저' 알아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없을리는 없다. 인간은 모두 자신을 살리기 위해 태어난 존재니까.




 그래서 나는 나를 먼저 알아주기로 했다. 어렸을 적 보았던 '내이름은 나답게'에서 '답게'처럼, 언제 내가 가장 나다워지는지 인생 최초로 궁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단한 기술은 필요 없었다. 내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되새겨보는 것이다. 나같은 경우에는 사진이 되었든, 글이 되었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습관화되어있기 때문에 이를 돌이켜보는건 어렵지 않았다. 주된 나의 기록매체는 블로그와 인스타 스토리였기 때문에 시간순으로 2017년경까지 내 일기와 흔적들을 쭉 보게 되었고, 이를 훑어보다가 깨닫게 된 놀라운 사실.


나는 일을 할 때의 내 모습을 가장 사랑한다.









 정확히는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가장 나를 사랑하게 된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인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조차 내일 출근하기 싫다는 생각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는 것을. 하지만 기록 저편에서는, 정말로 나는 내가 하는 일과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었다.



무려 2017년 6월의 기록



 발령받기 전, 기간제를 그만두고 스페인 저멀리 여행갔을 때 나를 위해 카톡으로 손수 편지를 써서 보낸 제자들의 마음을 기억하고,




2018년 11월의 기록


 키자니아에서 열심히 직업체험을 하고, 가상화폐를 모아, 선생님을 위한 선물을 사온 우리반 꼬맹이들의 사랑을 기억하며,

(자기 갖고 싶은 거 사도 모자란 열살짜리 아이들인데..)





2019년 12월의 기록


 아무 날도 아니었는데 선생님이랑 헤어지는게 아쉽다며 꼭두새벽부터 와서 깜짝파티를 준비했던 요녀석들의 정성을 기억한다.






 이것 외에도 함께 용서팔찌를 만들며 서로를 용서하는 시간을 가졌던 기억들, 서툰 중국어로 사랑한다는 말을 배워 내 책상 위에 몰래 'laoshi, wo xihaun ni'하고 삐뚤빼뚤 적은 편지, 내가 병가 쓴 날이면 어김없이 괜찮냐고 부모님을 통해서라도 안부를 물어주는 따뜻함들이 있어서 학교를 사랑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무조건적으로 나를 사랑해주는 우리 아이들과 함께 있었기에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씩씩하게 극복할  있었다. 역시   아이들이 있어 행복하다고 생각한 날들이 수일이었다. 그랬지, 내가 그런 사람이었지.












 it계열 회사를 다니는 20년지기 친구가 내게 말했다. 너처럼 일을 하면서 진짜 행복해하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고. 그렇게 가정사에 치이고, 주변환경에 치이더니, 일을 시작하고 비로소 너의 인생을 찾은 것 같다고 말이다.


 '나답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아직도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나를 가장 좋아하게 되는 순간'을 뽑으라면 역시, 내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이다. 공무원 사회의 갑갑함​에 분개하고, 교권침해와 관련된 일들을 겪을 때마다 개탄하고, 이 일을 끝까지 행복해하면서 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운 나날을 보내기도 하지만, 그래도 역시,


나는 아이들과 있을 때 가장, '나'로 살게 된다.

 










 사실 그래서 내가 숱한 도전과 실패를 겸허히 수용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를 지지하고 있는 '학교'라는 굵직한 받침대가 없었다면, 외부에서 부는 바람에 나약하게 쓰러지고 말았을테니까. 이처럼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을 인지하고, 이를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는 개개인의 인생 전반에서 아주 중요한 도움받이가 된다.


'내이름은 나답게'의 '답게'처럼,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를 귀하게 여긴다면, 언젠가는 세상도 나를 귀하게 여기지 않을까. 그것이 '나답게 하는 무언가'를 모두가 찾아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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