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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ttyfree Jun 04. 2021

선생님은 어떤 작가가 되고 싶으세요?

목표 없는 삶의 평안함





 오랜만의 출판사 미팅이었다. 

나의 원고를 맡아주시던 편집장님께서 새로 회사를 옮겨서 자리를 잡느라 첫 원고의 출간일정이 늦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나는 두 편의 새로운 원고를 완성하였고, 그 원고를 새로운 출판사에 투고할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친분이 있는 편집장님께 피드백을 부탁드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날은 그에 따른 피드백을 주시기로 한 날이기도 했다. 몇 번이고 거듭해서 고백하는 바이지만, 글이라는 것을 제대로 배워본 바가 없다는 것은 작가로서의 나에게 크나큰 약점이다. 그래서 초고를 다른 사람에게 처음 내보일 때의 그 긴장감은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차라리 논픽션이면 낫겠는데, 어쩌다보니 내가 완성하는 원고들은 전부 픽션이었고, '좋은 픽션'의 기준을 잘 모르는 내가 이상한 글을 써내려간 것일까봐 덜컥 겁이 나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안지 일년도 훌쩍 넘은 편집장님을 뵙는게 무서워서 카페 문을 여는 것을 망설이기까지 했었다. 논술 피드백을 받기 싫어서 논술학원 가는 날을 기피했던 열아홉의 나처럼 말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분위기는 유연하게 흘러갔다. 학부모상담만 수십차례 한 나는 스몰톡이라면 눈감고도 할 수 있었고, 그건 작가와의 미팅을 수백차례 한 편집장님도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같이 나오신 대표님까지 내 새로운 원고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셨다. 엄격하고 무서운 편집장님은 나에게 처음으로 '재능이 있다'는 말씀도 하셨고, 내 어깨는 의외의 칭찬에 의해 들썩들썩거렸다. 



"선생님의 최종 목표가 뭐예요?"



 이 얘기 저 얘기, 이야기들이 홍수처럼 흐르다가, 아마도 '고학년 작품과 저학년 작품을 가르는 기준'까지 물결이 닿았을 때였을 것이었다. 대표님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셨다. 열심히 책을 내서 끝내 문학성을 인정받고 싶은건지, 아니면 저학년 동화 작가로서의 역량 키우기에 집중하고 싶은건지, 내 작가로서의 최종 목표가 궁금하신 듯 했다.




"음, 솔직히 딱히 별 생각 없어요." 

 내가 의외의 대답을 내놓자 대표님과 편집장님이 웃음을 터뜨리셨다. 나도 그 웃음의 이유를 짐작할 수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마냥 농담으로 하는 얘기는 아니었다. 사실 처음 듣는 질문도 아니었다. 지난달에 나를 꼭 만나고 싶었다는 후배도 나에게 똑같이 물었기 때문이다. "선배의 최종 목표가 뭐예요?" 그리고 그 때의 나도 똑같이 대답했었다. "목표같은건 없는데."








 내 대답이 상대방에게 실망이 되어 돌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거짓을 고할 수는 없었다. 나는 목표에서 빗겨간 삶을 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그러고 싶었을 수도 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목표 없이 살아가는게 얼마나 사람을 뒤로 가게 만드는 건지도 알고 있고, 성과주의 사회에서 그것이 얼마나 죄악시 되는지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내 인생에 더 이상 목표를 세우고 싶지 않았다. 중학교 때는 외국어 고등학교에 가는 게 목표였고, 고등학교 때는 좋은 수능 점수를 받는 것이 목표였고, 대학교 때는 임용고사에 붙는 것이 목표였고, 대학원을 다닐 때는 논문에서 통과해서 제 때 졸업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리고 나는 그 목표에 도달함으로써 어느정도의 성취감과 사회적 지위를 가졌지만, 그것만을 즐기기에는 목표를 이루고 난 뒤의 이루말할 수 없는 허탈감이 너무 컸다. 내가 고작 이것을 위해서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만 했던걸까?




 번아웃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극도의 피로를 느끼고 이로 인해 무기력증, 자기혐오, 직무 거부 등에 빠지는 증상이다. 목표지향적인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요 녀석을 나는 더 이상 내 삶에 두고싶지 않다. 그래서 "나의 다음 목표"를 묻는 질문을 들으면 저런 애매한 대답만을 던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요." 정도, 그리고 "저는 제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정도? 내가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다보니 글을 쓰게 되었고, 글을 쓸 때 좋기 때문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냥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지, '몇 살까지 작품을 내서 몇 살에는 등단을 하겠다'는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목표를 세운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렇게 해야만 했던 나의 치열했던 어린 시절은 이제 그만 흘려보내고 싶다. 내 인생이라는 나만의 화단을 가꾸어가야 하는 이 때, 목표 없는 내 삶이 주는 안정감이 나만의 화단을 밝고 예쁘게 빚어내면 그만인 것이다.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좋은 내 인생을 위해서, 나는 오늘도 열심히 '목표없이 쓰는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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