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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ttyfree Aug 28. 2021

동화책에서만 통하는 특별한 문장 기술 4가지

독자가 특별하거든요.



 아이러니하게도

글을 쓰면 쓸수록, 내가 참 글을 못 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을 출간하기로 한 이래로, 나에게 '작가적 재능'이 있는지 셀프 질문을 해보자면,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다는 답이 나온다. 언제나 그렇다.




 처음 나의 작가로서의 목표는 그냥 글밥이 적은 '그림책'을 내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글을 제대로 배운 적은 없는데, 글을 쓰는 건 좋아했기 때문이다. 몇몇의 논술 대회에서 상을 타본 적은 있지만, 문학 공모전에 발을 들여놓은 적은 없었고… (아, 고등학교 때 어느 소설 공모전에서 예선 통과는 한 적 있었다. 학교 시험 일정 때문에 본선장에는 가보지도 못 했지만.). 긴 글은 부담스럽고, 짧은 글 정도는 쓸 수 있다고 생각한 호기가 발단이었다. 하지만 그림에 별 재능도, 욕심도 없었던 나에게 '그림책 출간'이 가능할 리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몰랐기 때문에 가능했던 투고'였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그림책 작가'를 향한 욕심은 나의 과욕이었던 것으로 판명이 났다.




 하지만 인생의 대부분은 우연한 기회로 굴러간다.

우연히 어떤 출판사 편집자의 눈에 띈 나는, 꽤 긴 분량의 동화책 원고를 작업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이 부분이 궁금하다면 매거진 전 글을 참고하시라.) 처음엔 내가 정말 재능이 있나? 내가 글을 쓸 운명이로구나! 라며 자화자찬을 한 적도 있었지만, 여러 번 구르고 깨지게 된 결과 내가 내린 자체 결론. 나에게는 그럴 만한 재능이 없다. 선천적인 '문학적 상상력'도 별로 없을뿐더러, 후천적인 연습에 의거한 '기깔나는 문장력'도 ….




  그렇지만 여전히 글을 잘 쓰고 싶다. 정확히는 누군가가 '읽을만한' 글을 잘 쓰고 싶다. 내가 만들어낸 글은 정말 내 '새끼'같다. 아, 물론 자식을 낳아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그만큼 애틋하고, 어여쁘다. 구절 하나하나에 그 시절의 내가 보인다는 것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모든 인류는 세계에 자신의 족적을 남기고 싶어 한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그것이 바로 글쓰기인 걸까. 작년에 적어 내린 내 글을 보면 벌써 그 시절의 생각이 새록새록 나는데. 아아, 평생 이 작업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욕심은 있다. 그러나 방법은 모르겠다? 그렇다면 내가 다듬을 수 있는 능력부터 우선 건드려봐야 한다. 앞서 언급한 '선천적인 문학적 상상력'은 우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 그거 말고, 후천적 연습에 의한 '기깔나는 문장력'을 만들어보고자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일 년간 내가 받았던 피드백들을 낱낱이 공개(혹은 기록)한다.





첫째, 번역투를 지양한다.

나름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나로서는 충격적인 조언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니, 무려 국어교육을 전공한 제 글에도 번역투가 들어있나요? 하지만 번역투라는 게 별게 아니다. '왜냐하면 ~ 때문이다.' 혹은 '~적이다.'와 같은 사소한 구문도 상대에게는 번역투로 느껴질 수 있다. 번역문에 익숙한 세대에게 빈번하게 나타나는 일이라고는 하니 실망하지는 말자. 사실 이 글에도 변역 투가 아주 많이 들어있을 수 있다는 의심도 고개를 드는데. 뭐 어쩔 수 없다. 차차 고쳐나가면 된다.




둘째, 접속부사는 삿된 것이다.

'그래서', '그러나', '하지만'  …. 논술학원에서 천금같이 귀하다고 배웠던 말들인데, 이것을 버려야 한다니요? 하지만 불필요한 접속부사는 아동들을 지루하게 만들 뿐. 동화책에는 속도감이 생명이다! 꼭 필요한 접속부사가 아니라면, 적당히 쓰는 것으로. 배제해서 읽어봐도 별 탈이 없는 문장이라면, 그냥 떼내는 것이 좋다.




셋째, 높임말은 '대화문'에서만, 지문은 일반 평서형으로 쓸 것.

일관된 흐름으로 높임말을 적어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여 모조리 다 높임 표현을 적어봤자, 늘어지는 지문만을 발견할 뿐이다. 대화문에서 높임말을 적는 것으로 충분, 지문은 평서형으로 써서 지문의 속도감을 높인다.




넷째, 시점을 확실하게 구분한다.

어린이 독자를 배려하기 위함이다. 어린이들은 시점이동에 익숙하지 않다. 만약 글 내에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구간이 있다면, 문단을 구분하여 아이들이 헷갈리지 않도록 배려해주어야 한다. 어른들과 동등한 수준으로 아이들이 글을 단번에 읽어 내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책을 내면서 내 삶의 발자취를 계속 남길 수 있는 것. 그것이 내가 가진 궁극적인 작가로서의 목표이다. 올해 가을께 되면 내 첫 책이 출간이 될 것이고, 내년 초에도 다른 한 권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될 것이다. 물론 그 두 번의 출간으로 내 삶이 많이 바뀔 것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여전히 나는 또 다른 책을 출간하기 위해 고군분투할 것이고, 수십 번 고배를 마시며 좌절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번에 배부르려는 욕심, 그리고 아무리 해도 안 될 것이라는 무기력에서만 벗어난다면, 어쩌면, 나에게도 괜찮은 작가가 될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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