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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기요 Nov 09. 2020

육아의 기쁨과 슬픔

요즘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하기가 어렵다. 내 아픔이 아닌 것, 내 피로함이 아닌 것에는 재빨리 건너뛰기를 눌러 버린다. 웬만한 일엔 <그냥 그러려니 & 알게 뭐야 & 뭐 어때>로 대응한다. 심각한 상황 아니면 감정이 안 움직인다. 기쁨과 슬픔, 희열과 분노 사이에 있어야 할 것들이 통째로 날아간 것 같다.


1의 찬란한 순간을 위해 99를 희생해야 하는 것이 육아다. 그 과정을 통해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는 굳은 믿음을 전제로 깔고서 말이다.


아무도 나만큼 육아를 하지 않는다.


나의 육아가 아이돌 그룹이라면 나는 센터이고 리더이며 나의 육아가 기업이라면 나는 창립자이자 대표이사인데 지나가는 사람들까지 내 육아를 참견하고 비난하고 지적한다. 막장드라마 시어머니 톤으로 훈계질이다. 특히 가족들이 나무라는 순간엔 "엄마 그만하겠습니다"하고 사퇴 선언을 해버리고 싶다.


인정과 격려보다 비난과 지적 횟수가 많아지면 망설임 없이 <도망> 카드를 쓰곤 했다. 회사는 옮기면 됐고, 관계는 정리하면 그만이었다. 육아에는 도망이라는 카드가 없다. 한평생 도망치며 살아왔는데 시작부터 막다른 길이다.

도망의 가능성이 전무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몸을 돌리다가 뒤에 있던 아이랑 부딪혔다. 심하게 꽝 한 것도 아닌데 남편이 내 발목을 세게 잡으며 "조심해!"라고 소리쳤다. 기분이 나빴다.


주말에 셋이 있으면 남편과 뭔가 핀트가 안 맞아서 <나 감정 상했어>의 공기가 집안에 깔릴 때가 종종 있다. 19금 드립이라도 쳐서 분위기 바꿔보려 했는데 남편이 정색하며 "애가 보잖아, 그만해"라고 했다. 애가 알아들을 내용도 아니고 수위가 높은 것도 아닌데 뭘 저렇게까지 반응하나... 무안했다.


부모님과 같이 점심 먹기로 했는데 약속 시간 30분 전에 아이가 잠들었다. 애가 자서 안고 갈게요 라고 했더니 "왜 애를 그 시간에 재우냐"고 화를 내셨다. 내가 재운 거 아닌데요. 잠깐 미용실 간 사이에 애가 잠든 건데요. 약속은 파토 났고 원망은 고스란히 내 몫이었다. 울고 싶었다.


주말에 강원도 여행 다녀와서 아이 콧물이 심해졌다. 엄마아빠가 입을 모아 다 낫지도 않은 애를 강원도까지 데려가서 콧물 줄줄 흐르게 만들었냐고 하셨다. 니들 좋자고 한 여행이지? 철 좀 들어라. (여행 가서는 콧물 안 심했어요.) 우울했다.


버스에서 아이가 손잡이를 만졌다. 뒤에 앉은 아주머니가 한소리 하신다. "애가 만지게 두면 어떡해요, 더러운데" 그러게요. 애가 더러운 거 만지게 하면 안 되는데.


과자를 주는 할머니에게 "괜찮아요^^"라고 했더니 뭘 이런 거 다 먹고 크는 거라며 엄마가 유난 맞다고 혀를 끌끌 차신다. 지금 과자 먹으면 저녁을 잘 안 먹어서 그래요. 저녁 안 먹으면 밤에 잘 안 자고요. 밤에 데리고 자는 사람 누구게요? 잇츠 미~나예요.


유모차 끌고 길을 걷다가 차가 오면 긴장된다. 남편이 "차!!! 차!!!" 하면서 내 등을 밀다시피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기분이 다운돼서다. 그렇게 안 밀면 안 돼? 라고 말하고 싶지만 참는다.


"애랑 말 좀 해", "혼자 노는 거 짠하다”, “너는 고모가 돼서 왜 조카를 안 예뻐하니?", "엄마는 다 그런 거야", "왜 그렇게 징징대", "걱정이야, 니가 너무 드라이해서", "여보는 다른 엄마들이랑 좀 다르니까"


하루에도 몇 번이고 비난받고 지적당하는 일상

아무도 나만큼 하지 않으면서 잘도 나를 비난한다

나의 육아 자존감은 매일매일 바닥을 친다


사소한 지적과 비난에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멘탈

혹은 남에게 피해 주건 말건 세상 무딘 성격

=> 이 둘 중 하나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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