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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기요 Jan 20. 2021

코로나, 잠시 멈춤, 편안함    

재택근무가 두 달 넘게 이어지면서 나와 아이, 가족들 모두 이 체제에 묘한 안정감을 느끼고 있다. 출근을 안 하니 모든 게 여유롭다. 아침마다 조바심 내며 출근 준비하던 게 아득한 먼 일처럼 느껴진다. 


<잠시 멈춤>의 상황이 오히려 편하다고 해야 하나? 머리 안 감아도 되고, 내일 입을 옷 안 골라도 되고, 발 동동 거리며 등원 준비시킬 일도 없으니 남편을 향한 날 선 시선도 많이 누그러졌다. 평소엔 "왜 저렇게 굼뜨지", "화장실에서 밥을 먹나", "똥도 참 자주 싸네" 같은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젠 안 그렇다. 퇴근 후 안경에 김이 서린 모습을 보면 안쓰러워 우쭈쭈 하게 된다. 


출근을 안 하니 업무도 그리 빡세지 않다. 오전에 바짝 집중해서 일하면 오후는 널럴하다. 근무 시간에 여유를 즐기는 게 태만한 것 같아 죄책감이 들 때도 있지만. 뭐 어쩌겠어, 다들 나처럼 일하겠지 하며 죄책감을 먼지처럼 털어낸다. 

라면 아닌 집밥이 이렇게 귀할 줄이야... 라면만 먹다 집밥 차려본 어느 점심 기록 

회사에선 딴짓하는 게 그렇게 눈치가 보였는데 집에선 딴짓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맘 놓고 딴짓한다. 유튜브도 보고, 영화를 틀어놓기도 한다. 실시간 검색어도 마음껏 클릭한다. 오늘은 연예인 대낮 음주운전이 이슈네. 숙취로 면허 취소 수준이 나오려면 대체 전날 얼마나 마신 걸까... 나와 상관없는 타인의 어리석은 실수를 맘껏 관망한다.  


첨엔 재택이 그렇게 싫었는데 요즘은 재택이 끝날까 봐 걱정된다. 출근하면 또 금방 적응하겠지만. 코로나가 지나간 뒤 찾아올 변화가 조금은 두렵기도 하다. 마스크를 쓰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가족끼리 조용히 지내는 삶. 소비는 최소화되고 박탈감은 줄어들었다. 남들도 나처럼 갇혀 지낸다는 게 공평하게 느껴지기마저 한다. 


이전엔 감사함을 느낄 겨를이 없었던 걸까? 내 삶의 주춧돌 같던 불평불만이 작은 점으로 수렴된 듯하다. 매일 함께하는 가족들이 있다는 게, 변화 없는 삶에 유일한 변화인 아이가 있다는 게, 때때로 벅찬 감동을 준다. 매사에 감사하는 요즘이다. 


***


코로나야 지겨운 코로나야 

니가 정말 밉고 싫지만

니가 준 깨달음도 많다는 걸

이제 난 인정하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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