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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기요 Feb 03. 2021

개미지옥 같은 인스타

인스타만 안 해도 인생이 훨씬 편할 것 같다. 한 번 빠지니 헤어 나올 수 없는 게 꼭 개미지옥 같다. 정방형 프레임 안에 뭘 넣을 것인가. "취향 참 괜찮네", "이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는 포스팅은 뭘까. 앱을 켤 때마다 생각한다. 서너 문장으로 허세 없이 담백하고 소탈하며 지적이고 유머러스한 글쓰기를 보여주고 싶다. 찌질함과 우울한 정서도 공감이라는 매력으로 승화시키고 싶다.


인플루언서도 아니고 대단한 취향의 소유자도 아니며 결정적으로 팔로워도 몇 되지 않으면서 이 무슨 배보다 배꼽이 큰 욕망이란 말이냐. 스스로를 비웃으면서도 이 헛된 욕망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고릿적 싸이월드 시절은 대놓고 <나 관심받고 싶어요> 하던 때라 오히려 순수했다. 인스타는 그보다 훨씬 고단수다. 진짜 내가 아닌 '보여지는 나'를 의식하며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내 생각과 취향을 무심한 일상의 메모처럼 적는다. 멈춰있지 않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내 인생의 유일한 변화 요소인 아이 사진을 올린다. 다른 이들은 어떤 생각과 취향을 프레임 안에 올려놓고 관심을 기다리는지 궁금해하며 친한 지인부터 단골 순대 트럭 사장님까지 타인의 인스타를 수시로 염탐한다.


좋아요는 영혼 없는 공감의 표시다. 글은 자세히 읽지도 않고 사진만 보고 대충 좋아요를 누른다. 내 인스타에 좋아요를 자주 누르는 팔로워가 있으면 나도 무심코 좋아요를 누른다. 본 적 없고 앞으로도 볼 일 없는 이와 영혼 없는 리액션을 주고받으며 랜선 유대감을 쌓아간다.


인스타는 왜 하는 걸까? 개인 기록 차원에서? 개인 기록 차원이면 혼자 일기를 쓰면 됐지, 인스타는 100퍼센트 남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내 일상을 남에게 보여준다는 목적으로 전시하다 보니 아무래도 편할 리 없다. 욕을 쓰고 싶어도 쓸 수 없고, 누군가를 저격할 수도 없고, 우울하고 예민한 정서를 그대로 내보이기도 뭣하다. 별 거 없는 일상은 노잼이고. 만에 하나 자랑하고 싶은 게 있으면? 자랑하고 싶단 생각이 든 것 자체가 민망해서 그만두게 된다. 그러면서도 멈춰있지 않고 뭔가를 계속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죽겠다. 아는 사람은 알 거다. 내 인스타가 얼마나 불안정한 인정 욕구로 가득한지.


예전엔 해외여행 사진을 보는 게 너무 괴로웠다. 짝사랑하는 애가 다른 애랑 팔짱 끼고 걷는 뒷모습을 볼 때 같다고 해야 하나. 갖고 싶은 게 눈 앞에 있는데 가질 수 없어 슬프고 열 받고 스스로가 초라해지는 기분. 시간도 돈도 여의치 않은 처지를 원망하며 남들이 모히토 가서 몰디브 마시는 걸 볼 때마다 와앙 울고 싶었다.


요즘 나를 작아지게 만드는 건 스스로를 브랜드로 만든 사람들이다. 책을 냈거나, 회사를 차렸거나, 이름 석자를 걸고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 회사 다니며 꾸준히 기고하는 나 자신도 나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여 보지만, 이름 석자를 걸고 무언가를 할 수 있을지 자문해 보면 <완전 자신 없음>이다.


누구는 전시회를 하고, 등단을 했고, 이름을 내건 회사의 대표가 됐네. 보여지는 활동이 활발할수록 스트레스와 피로감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는 것도 알지만. 주도적으로 개인 브랜드를 성장시켜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부러움과 질투심과 열등감이 폭발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제도 오늘도 새벽에 깨면 습관처럼 인스타를 본다. 관심 피드까지 둘러보고 내 계정에 올릴만한 게 없나 사진첩을 뒤적거린다. 아이 사진뿐이다. 그중에 괜찮은 걸 골라본다. 내 눈엔 눈 감은 것도 귀엽지만 남들이 볼 땐 귀엽지 않겠지, 피드에 별 귀엽지 않은 아이 사진이 올라오면 좋아할 사람 누가 있나. 벌써부터 아이 사진도 마케팅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다.


아, 인스타. 진짜 인스타만 끊어도 쓰잘데기 없는 열등감의 7할은 사라질 것 같다. 좀 더 나에게 집중하고, 한 가지 일에 매진하고, 아줌마다운 뭉근한 삶의 태도를 지닐 수 있을 것 같다. 덜 예민하고, 덜 질투하고, 내 자신이 내 삶의 가장자리임을 인정하는 태도. 내 삶의 중심이 더 이상 내가 아님을 알고 그것에 만족하는 평온한 상태. 인스타가 문제가 아님을 안다만 인스타를 핑계 삼아 내 결핍을 되새김질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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