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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기요 Apr 07. 2021

내가 몰랐던 세상

재택근무가 대망의 5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일주일에 두 번 출근하고, 나머지는 오후 3시까지 일하고 3시 반에서 4시 사이에 아이를 하원 시킨다.


하원 후엔 동네 놀이터에 간다. 어린이집 친구들 & 외할머니들과 함께 가서 2시간 정도 놀다 온다. 친정집 아파트 놀이터를 주로 가는데, 가끔은 근처 단지로 원정을 가기도 한다.


놀이터에는 꾸안꾸 스타일의 엄마들이 많다. 요즘 하원룩의 대세는 니트 팬츠다. 이자벨 마랑 후드티와 맨투맨도 자주 보인다. 신발은 플랫 혹은 골든구스다. 오버핏 야상을 걸치고, 프라다 버킷백을 든 엄마들. 살림과 육아에 찌든 모습 같지 않다.


그네를 밀며 엄마들을 관찰한다. 가끔 대화가 들리기도 한다. 골프나 필라테스를 배우는 사람들이 많다. 재택중인 나도 그들처럼 보일까? 현재의 나는 워킹맘과 전업맘의 중간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회사에 나가는 날보다 집에 있는 날이 더 많으니까.


놀이터의 엄마들은 대학 때 뭘 전공했을까? 졸업하고 어떤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다 몇 년 만에 퇴사한 걸까? 종종 궁금해진다. 다들 열심히 공부했을 거고 원하는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텐데. 그렇게 힘들게 들어간 회사를 그만둘 때 아쉬움이 크진 않았을까? 그 아쉬움을 육아를 하며 어떻게 채워나가고 있을까.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놀이터에서의 시간은 사실 참 안 간다. 집에서 맥주 마시며 넷플릭스 볼 땐 2시간이 금방인데 놀이터에서 보내는 2시간 동안엔 나도 모르게 자꾸 시계를 보게 된다.


하루가 별 탈 없이 저물면 참 다행이다. 오늘 하루도 지나갔네. 일주일에 두 번이지만 육아를 벗어나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게 너무나 감사하다. 회사는 내 유일한 휴식처니까.


결론은 육아가 제일 힘든 일이라는 거다. 나는 육아를 몰랐다. 하원 후 엄마들의 삶도 몰랐다. 킥보드 손잡이에 어린이집 가방 걸고 놀이터 가는 일상을 몰랐다. 육아와 살림에 찌든 아줌마로 보이고 싶진 않아 하원룩 고민하게 되는 그 심정을 몰랐다. 


육아를  <내 일>로 선택하고 받아들인 엄마들이 있기에 아빠들은 맘 놓고 회사에 다닐 수 있다. 

눈치 안 보고 아이코스 피울 수 있고 

월급 받으며 똥 쌀 수 있고 

출퇴근길엔 유튜브 보고 게임도 할 수 있는

넘나 고마운 회사. 


놀이터에 갈 때마다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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