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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기요 Nov 22. 2021

어른이 된다는 것은

아이랑 <겨울왕국> 1,2편을 여러 번 정주행했다. 특정 장면에 꽂혀서 같은 구간만 반복해서 보기도 했으나, 거의 대부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봤다. 봐도 봐도 재밌고 감탄이 나올 만큼 잘 만든 영화라 아이의 덕질에 동참하는 순간이 나쁘지 않았다.


스토리 위주로 보다가 나중엔 장면 하나하나에 눈길이 갔다. 캐릭터도 분석했다. <미녀와 야수>의 벨도 그렇고 <겨울왕국>의 안나도 그렇고 디즈니 여주는 비슷한 면이 있다. 정의롭고 호기심과 모험심이 많다. 그런 면 때문에 주변에 민폐를 끼치기도 한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안나 피해서 엘사가 혼자 있고 싶어 하는 게 너무 이해가 됐다.


올라프는 참 특이한 캐릭터다. 눈사람 주제에 인생사 통달한 멘트 치는 게 장난 아니다. 혼자 들떠 부르는 노래 가사에 무릎을 쳤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세상과 날 맞추는 것


진짜다. 어른이 된다는 건 세상이라는 좁은 통로에 나를 끼워 맞추는 일이다. 뭉글거리고 잘 모아지지도 않는 부스러기 같은 형질이었던 <나>의 자아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면서 이전보다 많이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워졌다. 슬라임에서 클레이로 진화했다. 이제 웬만한 일엔 그러려니 한다.


왜 결혼과 육아를 택했을까? 사랑해서?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고 싶어서? 이런 낭만성이 1도 없을 순 없겠지만 낭만의 비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된통 당하기 십상인 게 결혼과 육아 같다. 낭만은 설렁탕에 뿌리는 후추 정도여야지. 낭만은 디퓨저 같은 거다. 향은 곧 날아가고 처치 곤란한 용기만 남는다. 디퓨저 용기만 남은 화장실 풍경이 결혼과 육아의 실체 아닐까.


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기에" 결혼과 육아를 택했다. 소수의 삶을 택했을 때 몰아닥칠 소외감이 나는 두려웠다. 남들 다 해본 것, 남들 다 가진 걸 나는 못 해보고 못 가질까 봐 전전긍긍했었다. 남들 다 있는 배우자, 남들 다 낳는 아이는 내가 꼭 가져야만 하는 것이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는 거라면, 그게 세상의 진리에 가깝다고 믿었고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더 파고들면 보편적인 감정에 대해 알고 싶었다. 누구나 느끼는 감정. 배우자와 지지고 볶으며 살 때 느끼는 애증, 아이를 낳았을 때의 환희, 아이와의 교감이 주는 뭉클함, 결혼도 육아도 내가 뜻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단 걸 깨닫게 되는 체념의 단계까지도. 직접 경험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천지차이다.


지금은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현실의 나를 지탱하고 있다.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는 있다. 그게 일상의 힘듦을 버티게 한다. 힘든데 기쁘고, 피곤한데 즐겁고, 나에게 요구되는 책임이 너무 많지만 싫지는 않다. 힘든 업무 잔뜩 던져주면서 "그래도 일 제일 잘하는 건 너니까"라는 말을 들을 때 같다.


오늘도 세상과 날 맞추기 버거워서 주절대 봤다. 브런치 없으면 어쩔 뻔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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