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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기요 Dec 12. 2021

죽도 밥도 아닌 연애

별 거 아닌 연애의 단상 #1 

J모텔은 신촌과 홍대 중간쯤에 있었다. 신촌과 홍대 둘 중 어디와도 가깝지 않아서, 중간 어디라고 하기도 사실 좀 애매한 위치였다. 신촌역에서도 적당히 멀고, 홍대역에서도 적당히 멀었다. 근처에 인기 많은 술집이 있거나 분위기 좋은 카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자혜와 대희가 J모텔을 선호하는 이유는 "첫인상이 나쁘지 않아서”였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 그들이 오래 만난 이유와 같았다.

 

자혜와 대희는 종종 J모텔에 갔다. 손만 닿아도 달아오를 시기는 옛날 옛적이고. 번식의 목적만을 제외한 번식 행위가 J모텔에 가는 이유였다. 여느 오래된 연인이 그러하듯이, 모텔에 가는 건 그들의 루틴이었다. 오랜 연인이 루틴을 행하는 장소. 주기적으로 드나들 모텔을 정할 땐 카페나 술집 고를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편협한 취향의 회로를 가동해야 한다. 우선 사람이 많이 드나들지 않는 곳이어야 하고(아는 사람이라도 마주치면 낭패다), 그러려면 역 근처나 유흥가 중심은 피해야 한다. 규모가 너무 크거나, 인기가 너무 많은 곳이면 옆방과 옆옆방에서 동시에 번식 행위를 하는 것 같아 영 찝찝하다. 반대로 너무 작거나 지나치게 썰렁한 곳이면 사연 있는 자들이 머무는 옛날 장급 여관 같은 느낌이 들어 별로였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규모에, 너무 중심가에 있지 않으면서, 침대나 욕실 바닥에 꼬불거리는 털이 보일 정도의 암담한 위생 상태는 아닐 것.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목적으로 머물렀던 공간을 잠시 대여할 뿐인데, 자혜는 모텔 고를 때만큼은 정수기처럼 깐깐하게 구는 자신이 웃기다고 생각했다. 


J모텔은 애매한 위치와 적당한 규모, 그럭저럭 80점 정도는 줄 수 있는 위생 상태로 자혜의 높지 않은(그러나 편협한) 기준을 통과했다. 대실은 2만 5천 원, 숙박은 5만 원이었다. 점심시간마다 밥값이 뭐 이리 비싸냐며 "나 때는 자장면이 3천 원"이라는 말을 식전 기도처럼 외치는 회사 이 부장이 떠오른다. 자혜보다 스무 살쯤 많은 이 부장도 젊을 때 여자랑 모텔에 가봤을까? 그때도 대실 개념이 있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제육덮밥 아니면 돈가스 아니면 순댓국. 이 부장의 메뉴 선택지는 한결같다. 어차피 같은 돼지 베이스다. 모텔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이 부장의 메뉴 선택지와 비슷하다. 새로운 걸 시도할 열정? 성의? 그런 건 없다. 익숙한 몸의 허기를 익숙한 몸으로 익숙하게 채운다. 먼지 폴폴 날리는 싸구려 각티슈로 대충 뒤처리하고 몸을 씻는다.  이 과정을 2시간 안에 마칠 수 있으면 대실, 맥주 한 캔 하고 느긋하게 씻고 넷플릭스도 좀 보려면 숙박. 나름 합리적인 가격 설정이다. 


카운터 작은 구멍 사이로 "쉬고 가세요?"라는 음성이 들린다. 이 질문은 언제 들어도 손발이 오그라든다. "한 번 하고 샤워하고 가실 거죠?"로 들리는 건 기분 탓인가. 쉬러 온 게 아니라 고강도의 체력 소모를 하러 온 것인데 "쉰다"라고 표현하는 게 아무래도 웃긴다. 대희의 체크카드로 2만 5천 원을 긁고, 203호 열쇠를 건네받았다. 모텔 열쇠고리는 인사불성으로 취해 들어왔어도 절대 잃어버릴 수 없게 생겼다. 아크릴의 존재감이 이렇게나 묵직하다. 고깃집이나 술집 입구에 걸어놓는 공용 화장실 키도 이러면 좋을 텐데. 성의 없게 깡통이나 휴지에 매달아 놓지 말고 좀. 


***


오래된 커플이 모텔에 가는 건 묵은똥을 싸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 라고 자혜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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