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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기요 Dec 12. 2021

죽도 밥도 아닌 연애

별 거 아닌 연애의 단상 #2

자혜는 타코야키 집에서 시계를 봤다. 다음 일정이 있으면 초조해진다. 9시 40분이다. 생맥 두 잔에 술이 올라 '오늘은 모텔 가지 말아야지' 했던 애초의 결심이 흔들렸다. 바 테이블에 나란히 앉은 대희의 옆얼굴을 흘낏 봤다. 백수나 다름없는 대희는 노는 게 체질인지 피부가 참 좋다. 몸에서 냄새도 안 난다. 에이씨, 또 자고 싶어 진다. 자혜는 대희 입에서 먼저 모텔 가자는 말이 나오길 기다렸다.


"J 갔다 갈래?"


  전부터 괜히 자기 쪽으로 몸을 숙이는 자혜를 보고 대희가 알겠다는  먼저 물어봤다. 서로 합의한 것도 아닌데 모텔이란 단어를 쓰지 않는  둘이 똑같다. 자혜는 원하던 말을 들었지만 망설였다. 지금 가면 11 반은 되어야 나올 텐데. 늦은 귀가에 대한 핑계가 바닥났다. 회사 끝나고 선배랑 저녁 먹고 간다고 했는데 12 넘어 집에 가면 엄마의 잔소리 폭탄이 예상된다. "무슨 저녁을  시간 넘게 먹냐", " 어디서 누구랑  마셨냐", "그렇게  먹다간 나중에 ADHD 걸린 아이 낳는다"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ADHD 판정까지 미리 받게   뻔했다.


얼마 전 연남동으로 독립한 후배를 떠올렸다. 회사 선배랑 저녁 먹고, 근처 후배 집에 잠깐 들러서, 이야기하다 보니 좀 늦어졌다고 해야겠다. 있지도 않은 일정을 꾸며내는 건 참 힘든 일이다. 언제쯤 거짓말에 영혼을 담게 될까. 만일을 위해 지하철 막차 시간도 봐 둔다. 이 정도면 최선을 다했다 볼 수 있다. 오늘 자혜의 거짓말 계획은 제법 될 성 부르다.


모텔에 가기로 결정하니 마음이 급해진다. 자혜는 갑자기 기분이 약간 다운됐다. 퇴근하고 맥주  잔만 하자고 했을  오늘 모텔  확률은 40퍼센트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집에서 자다 나왔는지 평소보다  졸려 보이는 대희의 눈을  순간 " 눈은 언제쯤 초롱초롱해질까" 싶어 답답해서  . 그나마 하던 논술 과외도 잘리게 생겼단 말에 한심해서   . 불어난 짜증을 생맥  잔으로 잠재우고 섹스라도 해서 현실 도피를 하고 싶어졌다. 연인을 향한 불만과 짜증은 벗은 몸을 맞대면 조금은 해소되곤 했다.


***


"남자들은 참 좋겠다."

"뭐가?"

"갑자기 모텔 가도 준비할 게 없잖아."

"하긴."


엘리베이터 안에서 대희는 앞만 보고 있다. 2 방이어도 엘리베이터는  타야 한다. 모텔 계단은 비상 상황 아니면 없는  쳐야 한다. 남이  수건과 침대 시트가 널브러진 광경을  때면 공중 화장실 휴지통을  때처럼 마음이 불편하다. 더러운  예상되면 피해야지. 대희는 모텔 계단처럼 엉망인 자신의 재정 상태를 떠올렸다. 맥주 값은 자혜가 냈지만 모텔비는 그래도 남자가 내야지 싶어 체크카드를 긁었는데 이제 정말 남은 돈이 별로 없다. 오늘이 17일이니까 말일까지 2주나 남았는데 월초에 정해놓은 생활비로는 빠듯하다. 당분간 데이트하더라도 밥은 먹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했다.


자혜는 오늘 입은 속옷이 뭔지 기억하려 썼다. 파우치에 팬티라이너는 있던가? 배란기는 지난  같은데. 평소 피임을 철저히 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나마 하던 과외까지 잘리게 생긴 대희가 자기보다 피임에  신경  확률은 북한이 먼저 평화통일을 제안할 확률과 맞먹을 거라 생각했다. 하기 전에 밖에다 싸라고 해야지. 이런 주문은 결코 어긴  없는 대희다.  


모텔 방은 어딜 가나 비슷하다. 정사각형 형태에, 침대와 작은 냉장고가 있고, 화장대에는 큰 거울이 있다(거울의 일반적인 목적만을 위한 건 아닌 거 같다). 아빠 스킨 냄새나는 싸구려 화장품과 일회용 빗, 드라이어기와 품질이 형편없는 각 티슈가 화장대 위에 놓여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방에서 각 티슈로 정액을 닦아냈을까. 뻣뻣하게 표백된 침대 시트가 조명 아래 하얗다 못해 푸르스름해 보인다. CSI 시리즈에 나오는 혈흔 감식용 프레시로 비추면 올챙이처럼 생긴 정자가 꼬물대고 있을 것만 같다.


시간에 쫓겨서인지, 컨디션이  아닌지, 오늘따라 대희의 애무가 빵점이다. 몰입했다기보다 몰입하려 애쓰는 초짜 야동 배우 같다. 가슴을 만질 때의 뻣뻣한 손은  년째 적응이  된다. 피자 가게에 취직해도 도우 반죽 못해 잘릴 거다.  냄새까지 거슬린다. 삽입 후에 자혜는 딴생각을 했다. 대희는 섹스할 때조차 느릿느릿하다.  느긋한 삶의 태도가 침대 위에서까지 이어진다고 생각하니 모든  때려치우고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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