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저기요 Sep 28. 2021

난 언제 그 체질되나

체질 개선이 필요해. 여름이면 에어리즘이 누래질 정도로 땀을 흘리는 사위가 안쓰러워 엄마가 늘상 하시는 말씀이다. 땀 많은 체질을 어떻게 개선해? 니가 개선시켜줘야지. 아니 내 체질도 개선 안 되는데 남 체질까지 어떻게 바꿔 ㅋㅋㅋ


매년 도돌이표 같은 대화가 오간다. 체질이라는 걸 과연 바꿀 수 있을까? 그것이 알고 싶다. 한약 먹고 운동해서 살 빼면 바뀌려나?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내가 가장 호다닥 깨면서 "뭐야 이거...무서워..." 하는 생각과 함께 오억 광년쯤 거리감을 느끼는 글은 "아이랑 너무 함께 있고 싶은데 여러 여건 상 같이 있을 시간이 별로 없어 너무너무 안타깝다"라는 내용의 육아 글이다. 아이랑/너무/함께/있고/싶다고? 싶어? WISH?? 진짜????????????????????레알??????????????


나도 아이가 좋고 기본적인 모성애 정도는 있다(넘칠 정도가 아니라 그렇지). 그런데 나는 왜 아이랑 함께 있는 시간이 버겁고 부담스러울 때가 더 많을까? 아이가 날 잡아먹을 듯 떼를 쓸 땐 타임리프를 해서 2016년 정도로 돌아가고 싶다. 아 물론 널 낳은 걸 후회한다는 건 아니야. 내 인생에 이제 <후회>라는 단어는 없어. 그냥 잠시 과거의 한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뿐이야 ^^ 아주 잠시만!!


인정. 진짜 개인정. 나는 육아 체질이 아니다. 아마 영원히 평생 포에버 그럴 거다. 육아는 '어린아이를 기르는 '이니깐, 아이가  이상 아이의 단계가 아니게 되면 주어진 일과 적성이 맞지 않아 "이걸 , 말어" 고민하는 순간은 벗어날  있을 거다. 아이가 2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닮아 되바라지고 감정 기복 심하고 온갖 욕망에 불타는 13 소녀를 상상해 본다.   때려주고 싶을 때도 많겠지만 그래도 말은 통할  아냐! 길에서 백덤블링하며 울진 않을  냐! 내가 슬퍼하거나 아파하면 공감하는  정도는 해줄  냐! 미운 4살보단 2병이 낫지(세상의 수많은 2 학부모님들 죄송합니다 그리고 미리 존경을 표합니다).  


퇴근 후 날 괴롭히는 말년 병장이 있는 내무반(=친정)으로 간다. 할머니랑 있을 때 아이는 날 거들떠도 안 본다. "이제 집에 가자~" 하면 역시나 "싫어!" 하는 앙칼진 대답이 돌아온다. 아놔 또 시작이네... 회사에서 아이 생각을 자주 하긴 한다. 엄마가 보내주는 놀이터 사진과 영상을 빠짐없이 모니터 하며 후훗 그래도 내가 한 일 중 젤 잘한 일 훌륭한 일은 너를 낳은 거~ 라는 자아도취에 빠지기도 한다. 근데 그뿐이다. 퇴근 후 아이를 마주하면 피곤이 먹구름처럼 몰려온다. 아, 얼른 집에 가서 맥주 한 잔 때리고 당근마켓 눈팅 좀 하다가 애 재우고 나서 오징어게임 5회 보고 싶어 죽겠다. 이 재미난 걸 야금야금 보고 있다니... 감질나는 스킨십만 이어지는 기분이다. 얼른, 얼른, 쫌!


애랑 있는 시간이 너무 귀해서, 너무 소중해서, 아이의 솜털 하나까지 다 사랑스러워서, 부서질 듯 날아갈 듯 그렇게 키운다는 엄마들을 보면 진짜 신기하다.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어야 육아 체질로의 전환이 가능할 텐데 그냥 신기하다...정말 신기해... 하는 생각뿐이다. 난 육아 체질이 못 돼. 나의 핵심 정체성은 술꾼이고,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과 생각을 말과 글로 와르르 토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시답지 않은 글이나 쓰며 대충 시답지 않은 엄마 노릇을 하는 미래를 상상했었는데. 엄마 노릇은 대충 시답지 않게 했다가는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는 영역이었던 것이다. 애초 이것을 <시답지 않음> 카테고리에 함부로 넣으려 했음을 반성한다.


그래도 어떡해. 엄마가 됐는데(미치고 팔짝 뛰겠는 부분).


입시도, 회사 생활도, 결혼도, 임신과 출산도, 그리고 인생 최대 난제인 육아도. 그래도 욕은 먹지 말자.  나의 신조? 가치관? 그냥 내 삶의 기본 전제 같은 이 말을 되새기며 이 악물고 해냈다. 해냈고, 또 해내야 한다.


욕 먹을 정도로 하진 말자. 잘하진 못하더라도 못하진 말자. 에효 근데 이게 참 힘드네? ㅋㅋㅋㅋㅋ  






매거진의 이전글 예의 없는 가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