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결혼기념일이었다. 기념일이라 더 특별하게 보냈어야 했는데. 남편이랑 싸우고 하루가 끝났다.
월요일이라 더 피곤했다. 집에 오는 길에 놀이터에서 아이 픽업, 집에 가서 유치원 가방 정리하고 옷 갈아입히고 나도 옷 갈아입고 바닥 돌돌이/청소기 한 번 돌리고 뭔가 진도 2.0 정도의 지진이 왔다 간 것 같은 집안 정리하고. 냉장고에 있는 반찬 데워서 애 저녁 준비. 먹자, 먹어라, 열 번 넘게 말해도 애는 듣는 둥 마는 둥이다.
저녁 먹고 구몬 해야 티비 보지. 퇴근 후 내 머릿속엔 세 가지 단어뿐이다. 밥/구몬/티비
밥/구몬까지 미션을 마치고 결혼기념일이니 그래도 특식을 먹어야겠지? 남편이 좋아하는 우니와 딱새우를 시켰다. 술 한 잔 홀짝이며 남편 오기를 기다렸다. 몸이 딱히 힘든 건 아니었는데, 집에 와서 정리하고 밥 먹이고 구몬하면서 기분이 확 가라앉았다. 너무 지치고 피곤했다.
나 회사에서 일 안 하는데? 팽팽 놀기만 하는데? 그럼 집에 와서 덜 피곤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다. 더 피곤하다. 일 없이 팽팽 놀고 온 날은 집에 와서 더 처진다. 어제가 그랬다. 뭘 또 그렇게 피곤한 티를 내니 라던 남편은 나에게 "한심하다"라는 워딩을 썼고 말 꼬투리 잡고 싶진 않았지만 어제 못한 말을 브런치에 적어본다.
여보, 내가 말 꼬투리 잡는 것 같지? 입장 바꿔 생각해 봐. 내가 당신에게 "한심하다"라고 했으면 당신은 문을 박차고 나갔을 걸?
이제는 참는다는 생각도 안 든다. 그냥 저 사람도 사정이 있겠지. 지금 내가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로 힘든 무언가가 있겠지. 당장 이 순간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싸우고 싶지 않아. 싸워서 얻는 것도 없는데 기 빨리거든.
남편은 씩씩대며 운동 나가고, 나는 선재 보면서 울다가 웃었다. 선재가 최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