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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기요 May 20. 2024

동요하지 않기

출근하면 한 시간은 그냥 논다. 아무도 없을 때 노는 거라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루틴의 시작은 오늘의 운세 확인이다. 기세등등, 승승장구 같은 단어에 마음이 들뜬다. 오늘은 뭐가 될까? 뭔가 새로운 걸 하게 되려나? 기대를 품고 매번 실망한다.


이제는 안 그러기로 했다. 갑자기 점심을 같이 먹자는 상사의 말에 심장이 바운스바운스했다. 뭐지? 나 월급루팡하는 거 들켰나? 남편에게 나 이제 잘리는 걸까? 집에 가야 하나?라는 카톡을 보내고 오랜만에 일대일 점심을 먹으러 갔다.


어색하진 않은데 할 말은 참 없다. 스몰토크는 가장 자신 없는 분야다. 심지어 식당은 시끄럽고 음식은 빨리 나오지 않고 상사의 식사 속도는 매우 빠르다. 속도를 맞추며 일상 토크를 하는데 잘 안 들려서 들리는 척하며 고개를 연신 끄덕거렸다.


새로운 일이 주어지나. 자기 효능감 바닥인 이 상태를 좀 벗어날 수 있나. 왜 갑자기 둘이 밥을 먹자고 한 거지. 아무것도 기대 말아야지. 할 말 없어서 괜히 뻘소리 하지나 말자(내가 가장 많이 하는 실수).


바보 같았다. 이런 나 자신이. 20대 때 나를 전혀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을 좋아한 적 있다.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도 탐났고, 나보다 똑똑해 보이고 잘나 보여서 여러모로 내 걸로 만들고 싶었다. 그 사람의 문자 한 줄을 열 번도 넘게 정독했다. 별 의미 없는 문장 하나에 날 향한 진심이 숨어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 건 없었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날 좋아해 주지 않아. 바보 같은 내가 헛된 기대를 가질 뿐이지. 내가 필요하긴 한가? 필요하니까 내보내진 않는 거겠지? 그럼 대체 “어떤 쓸모”를 기대하는 걸까. 동요하지 말자. 1도 동요하지 않기. 이 조직에 있으면서 내가 매일같이 되새겨야 할 미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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