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을 말로 설득하다 지쳐서 제발 독립을 윤허해 달라는 상소문을 써서 올리고, 혼자 살 곳을 찾아 나섰다. 최대한 집으로부터 멀어지는 게 목표였다. 가까운 곳에 둥지를 틀었다가는 안방과의 거리만 약간 멀어진 것 같은 생활을 하게 될 것 같아서였다. 당시 다니던 출판사가 북아현동에 있어서 회사와 출퇴근이 가까운 곳이면 좋겠다 싶었다. 그때까지 내가 모은 돈은 약 7천만 원. 그 돈으로 전세가 가능한 원룸을 찾는 게 목표였다.
아침저녁으로 피터팬 카페를 들락거리는 게 일상이었는데, 먼저 독립한 선배들이 직접 가서 방을 봐야 살만한 곳인지 감이 온다고 했다. 실제로 15개 정도의 집(방)을 봤는데, 카페에 올라온 사진과 같은 집이 맞나 싶을 정도로 사진빨이 심한 곳 천지였다. 스노우 어플로 찍은 얼굴과 민낯의 차이를 경험하는 수준이었다.
여러 집을 둘러보며 '혼자 살 곳'에 대한 몇 가지 기준이 생겼다. 일단 반지하는 안 되고, 옆집 혹은 앞집과 현관을 쉐어하는 집도 안 됐다. 여자 혼자 살 집이니 너무 깊숙한 골목에 위치하면 안 됐고, 불을 켜놔도 어둡거나 곰팡이가 심한 집도 패스였다. 변기 물 내려보는 것도 필수. 변기 물이 시원하게 잘 내려가야 수압 걱정이 없다.
나의 기준에 부합하는 집은 서울의 끝자락 은평구 응암동에 있었다. 가보진 않았지만 친한 선배가 독립해서 살았던 곳이기도 해서 왠지 듣기에 친숙한 동네였다. 집을 보러 6호선 응암역에 처음 내린 날. 이곳에서 얼마간 혼자 지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을 구할 땐 기운이 중요하다는데, 그날 응암동에서 본 세 집 중 한 곳에서 그런 기운을 아주 강하게 받았다. 신혼부부가 사는 원룸이었는데, 정리가 잘 된 편은 아니었지만 짐이 많지 않고 다른 원룸에 비해 부엌과 화장실이 번듯한 게 마음에 들었다.
난생처음 부동산에 가서 계약을 하고, 계약금을 치르니 비로소 독립을 한다는 게 실감이 났다. 그때까지도 엄마는 2am의 <죽어도 못 보내>를 열창하고 계셔서 마음이 좀 불편하긴 했지만, '도장을 찍는다'는 행위의 상징성은 참으로 컸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사하는 날. 방에서 혼자 쓰던 물건과 옷을 주섬주섬 챙기고, 책상과 매트리스만 용달차를 불러서 옮겼다. 혼자 살면서도 밥을 야무지게 챙겨 먹자는 신조(오래가지 않았다)가 있어서, 접이식 식탁은 따로 배송시켰다. 부모님은 헤어지기로 한 마당에 도시락 챙겨주는 오래된 여자 친구처럼 이사 당일 뒷정리까지 도와주셨는데, 그때 솔직한 심경은 "그냥 가세요!”라 외치고 싶었다. 이사하는 내내 왜 이렇게 먼 곳에 집을 구했냐, 주변 환경은 왜 이러냐, 식탁은 왜 샀냐 등등...안 그래도 분주하고 복잡한 내 마음을 비난의 몽둥이로 마구 후려치시는 게 너무 불편해서였다.
다행히 전세로 구한 원룸이 깐깐한 엄마의 마음도 70퍼센트 정도는 충족시켜줄 만한 곳이라서, 나는 다행히도 '거지 같은 집'을 구했다는 비난으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있었다. 마침내 길고 길었던 이사가 끝나고, 내내 잔소리만 하시던 부모님도 "그래 한번 잘 살아봐라"라는 덕담인지 악담인지 아리송한 말씀을 남기고 자리를 뜨셨다. 나는 드디어 서른 살에 부모로부터 독립했다. 온전히 내 힘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내 계획에 의해 준비하고 실행한 내 인생의 첫 포트폴리오가 생긴 기분이었다.
마치 어제처럼 생생한 기억 하나. 응암동에서의 첫날밤이었다. 들뜬 마음에 새벽에 눈을 떴다. 침대 위에 놓인 책을 읽었다.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였다. TMI지만 알랭 드 보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성적 매력 하나도 없으면서 연애 상담해준답시고 거들먹거리는 복학생 오빠 같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그날 새벽에 읽은 알랭 드 보통 책은 너무 재미있었다!
내 집에서, 나 혼자, 새벽에 불 켜고 읽는 책의 맛. 사실 어떤 책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부모님 집에서 살 땐 내 방에서 새벽에 책 읽는 게 전혀 설레는 행위가 아니었는데, 내 힘으로 구한 집에서 새벽에 불을 켜고 책을 읽는다는 건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나는 독립을 했다. 혼자 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