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미안해요

서른에 독립 #2

by 저기요

우리 부모님은 "남들처럼" 사는 걸 가장 이상적으로 여기는 분들이라, 남들이 하지 않는 걸 구태여 한다고 할 때마다 맹수가 먹잇감 물어뜯듯 맹렬한 비난을 퍼부으시곤 했다. 서른 넘은 딸이 집을 나간다? 결혼이나 지방 발령 같은 그럴싸한 이유도 없이? 집이 서울이고 직장도 가까운데 30대 미혼 딸자식이 독립을 한 경우는 부모님 주변에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부모님께 딸이란 그저 남들처럼 결혼 전까지 부모와 살다가 결혼을 해야만 부모 곁을 떠날 수 있는 존재였다.


나의 강한 독립 의지를 부모님은 (특히 엄마는) "당신들과 더이상 살기 싫어요!"로 받아들이셨다. 내가 곁에 끼고 살아온 세월이 얼만데. 생활비 한 푼 안 받고 세 끼 밥 다 해바치고, 회사 다니는 딸래미 옷 드라이까지 직접 세탁소 맡겨가며 자식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었던 엄마는 배신감에 치를 떠셨다. 처음엔 엄마 아빠랑 살기 싫어서 독립을 결심한 건 절대 아니라고 했지만, 사실 그것도 큰 이유긴 했다. 권태기 연인처럼 30년을 함께 산 부모 자식 간에도 일상에 권태와 짜증의 파도가 몰아치는 경우가 많았다.


회사 선배는 휴일에 빨래를 널다가 아버지와 크게 싸우고 그 날로 보증금 5백 짜리 원룸을 얻어 나갔다고 했다.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땐 별 공감이 가지 않았는데, 부르짖다 죽을 만큼 독립을 원하게 된 순간엔 그 선배의 말이 진짜 와닿았다. 부모님은 우리가 언제 널 그렇게 서운하게 했느냐며 억울해 하셨지만, 일상에서 '집주인' 부모님으로 인해 (월세는 안 냈지만) '세입자'나 다름 없는 나는 종종 서운함과 억울함을 느끼곤 했었다.


한 번은 욕실에서 코를 세게 풀었더니 아빠가 "왜 그렇게 코를 세게 푸느냐!"며 성질을 버럭 내셨다. 잡지 기자라는 직업 특성상 마감 때 늦게 귀가하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엄마는 그때마다 내가 방문을 쾅! 닫는 소리에 밤잠이 깬다며 오만 신경질을 다 부리셨다. 코를 세게 풀 수도, 문을 쾅 닫을 수도 없는 세입자의 슬픔. 나는 그 처지를 하루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부모님과 사는 게 불편하고 싫은 또다른 이유 중 하나는 술이었다. 나는 법적으로 음주가 허용된 시점부터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은 1) 숙취가 심한 날 2) 숙취가 너무 심한 날 외엔 없는 알코올 성애자다. 그런데 엄마는 집에서 술 마시는 건 고사하고 술을 왜 마시는지 전혀 이해를 못하시는 분이었다. 이런 엄마와 함께 사는 건 수도원 생활이나 다름 없었다.

나의 이상향


나는 집에서 술을 마시고 싶었다. 밖에서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와도 등짝을 맞거나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지 않고 취기에 기분 좋게 잠들고 싶었다. 독립을 하면, 내 공간이 생기면, 나는 그 공간에서 술과 함께 자유로우리라.


부모님과 함께 살 때 느끼는 이 모든 불편함과 서러움을 어떻게 하면 두 분이 상처받지 않도록 잘 전달할 수 있을까. 날 위해 오랫동안 헌신해준 연인에게 "질렸으니 이제 그만 헤어져"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잔인한 일이었다. 엄마 아빠, 이제까지 잘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젠 함께 살고 싶지 않아요! 안녕! 이 말을 하지 않으면 나는 영영 벗어날 수 없었다. 부모님이 주는 속박과 안정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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