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띄게 떨어진 기억력과 어눌해진 말 때문에 서글픈 요즘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 아이큐가 30 정도는 떨어진 것 같다. 순차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일이 버겁고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한 일은 구멍이 숭숭 난다. 복직 후 일의 디테일이 확 떨어졌다.
가장 충격적인 건 단어를 잃어버린 거다. 단어는 나에게 무기였다. 남들보다 단어를 많이 안다는 것, 다양한 단어를 적재적소에 사용할 줄 안다는 건 별다른 특기 없는 나에게 그나마 위안이고 자랑이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머릿속으로 "이게 뭐지?" 하고 한참을 생각해도 안 떠오르는 단어가 너무 많다.
회사 동료들에게 휴직 기간 엄마의 오래된 모피를 당근마켓에 올려 판 일화를 얘기했다. 나름 괜찮은 에피소드라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오래된 모피 디자인을 "임꺽정이나 입을 법한"이라고 표현하고 싶었는데 임꺽정이 생각나질 않았다. 홍길동? 홍길동은 아닌데... 그 뭐더라? 버벅대다가 재밌게 말할 타이밍을 놓쳤다.
차에서 남편과 멜론 걸그룹 스페셜을 듣고 있었다. 흐아니 이 노래는? 내가 엄청 좋아했던 초아가 속한 나의 최애 걸그룹 노래였다. "이거 누구 노래지?" , "나 초아 엄청 좋아했는데..." 초아 에피소드는 열 개도 더 말할 수 있는데 그룹 이름이 생각이 안 났다. AOA였다. 세상에나 AOA가 생각이 안 나다니... 충격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상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사소한 단어들이 생각이 안 난다. 손톱깎기를 봐도 손톱깎기가 생각이 안 나고, 포크를 봐도 포크가 생각이 안 난다. 홈매트를 봐도 홈매트 이름을 모르겠다. 아니 왜 홈매트를 홈매트라 부르지 못하는 것이냐... 이 정도면 치매 아닌가? 나는 바보가 되어가고 있다.
단어만 잊는 게 아니라 깜빡깜빡하는 것도 심하다. 얼마 전 강원도 리조트에 놀러 갔다가 방에 애기 젖병을 놔두고 체크아웃을 했다. 30분 넘게 차를 타고 나와서 식당에서 밥을 시키고 애기 분유 먹일 시간이 돼서야 알았다. 돌아가지 않으면 집에 갈 때까지 아이가 굶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고 이런 것도 엄마인가? 싶어서 자학의 눈물을 흘렸다.
친정이나 시댁에 가도 아기 장난감 한 두 개 놔두고 오는 건 일상이다. 꼭 뭘 흘리고 다닌다. "정신이 없어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집에서도 1을 하다가 2를 해야 하는데 다 건너뛰고 갑자기 7을 한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2를 하다 보면 1을 했는지 안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엉망진창이다!
나만 이런가 싶어서 출산 후 기억력, 어휘력 등으로 네이버에 쳐봤더니 나랑 비슷한 경우가 많았다. 다행이다. 주변인 중 가장 똑똑한 선배가 아기 낳고 2년은 뇌가 제 기능을 못 한다고 그랬었다. 선배가 아이를 낳고 복직한 직후에 함께 일을 했었는데, 나는 그 선배만큼 똑똑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었다. 똑똑한 사람은 기능이 떨어져도 똑똑하구나.... 잠깐, 그럼 나는?
원래도 일을 꼼꼼하게 하는 편은 아녔는데 이제는 더 덜렁덜렁 설렁설렁이다. 맨날 시간에 쫓기다 보니 <대충>이라는 급행열차를 타고 전속력으로 달리는 기분이다. 부디 바보가 된 나로 인해 주변인들이 큰 피해를 입는 일만 없었으면 좋겠다(이미 소소한 피해는 많이 주고 있는듯).
미안해요 모두들. 근데 언제 나아질지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