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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기요 Feb 26. 2020

나는 왜 아침마다 짜증이 날까

오늘도 감정에 지고 말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다짐을 한다. 짜증 내지 말아야지. 한숨 쉬지 말아야지. 남편을 원망하지 말아야지. 웃는 얼굴로 출근해야지. 


출근 시간이 빨라지며 지각에 대한 공포가 커져서 새벽 4시부터 자다 깨다를 반복 한다. 아이가 중간에 깨면 쪽쪽이 물리고 토닥이고 기저귀 갈아주고... 그러다 보면 잠은 달아나기 십상이고 핸드폰으로 당근마켓 보며 아침이 오기를 기다린다. 


6시 20분에 일어나서 후다닥 머리 감고 대충 씻고(샤워는 잘 안 한다) 아침에 먹을 샌드위치를 만든다. 그 사이 빨래 걷고 아기 장난감 정리하고 화장도 하고 옷도 입고... 아기 아침밥 챙기고 물 데워 놓고 남편과 먹을 아침상을 차린다. 


20분 만에 이 모든 일을 마친다. 손이 빠르지만 디테일이나 위생은 별로 신경 안 써서 가능한 일이다. 


그때쯤 남편이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옷을 입는다. 그 시간에 마저 아침을 준비하고 아기가 깨면 이불 개고 돌돌이로 방과 이불의 먼지를 제거한다. 


아침을 먹으며 아이에겐 물과 빵을 주고 어떨 땐 이른 아침을 먹이기도 한다. 아침 시간이 정말 정신없다. 아무리 정신이 없고 힘들어도 남편이 웃어주고, 고생한다는 말 한마디 건네주면 모든 피로가 가실 것 같은데 남편은 남편대로 짜증을 내고 한숨을 쉴 때가 많다. 


그럼 나는 또 매번 빠지는 우울의 수렁에 풍덩 빠져 버린다. 나는, 나는, 나는, 이렇게 조급하게 아침을 준비하면서도 힘든 내색을 안 하는데 왜 당신은?? 왜 당연히 모든 일의 무게중심은 나에게? 왜? 어째서? 왜? 


당근마켓에서 2만 원 주고 산 청바지가 색이 너무 밝아서 맘에 안 든다는 남편의 말에, 그동안 애써 식혀 왔던 인내심의 회로가 폭발해 버렸다. 색이 맘에 안 들면 백화점 가서 제 값 주고 맘에 드는 거 사! <-- 속마음을 드러내고 싶었지만 감정의 3할 정도는 걷어내고 말했다. 맘에 안 들면 입지 말라고. 


남편도 남편의 입장이 있을 거다. 모든 걸 자기 맘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러면서 피해자 코스프레도 너무 잘하는, 생색 대마왕에, 매사에 민감하고 정신병 수준으로 타인의 지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와이프 때문에, 괴롭고 지치고 힘들 거다. 


우리는 이 차이를 어떻게 좁혀야 할까? 좁힐 수 있을까? 


출근길 남편의 손을 뿌리치고 혼자 전철역을 향해 걸으며 생각했다. 

오늘도 망했구나. 감정이라는 것에 오늘도 휘둘리고 말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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