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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기요 Jul 28. 2020

안도감의 정체

오랜만에 초등학교 친구를 만났다.

어릴 때부터 많이 부러워했던 친구였다. 내가 못 가진 걸 그 친구는 다 갖고 있었다.

재능, 안달복달하지 않는 성격, 높은 자존감, 세련된 스타일, 꾸준히 노력하는 자세까지

나의 삶이 복작복작 시장통이라면 그 친구의 삶은 어딜 크롭해도 인스타 감성 사진 같았다

결혼도 제일 빨리 했고 본인 커리어도 잘 쌓아나가고 있었다

가끔 내 자존감이 바닥일 땐 부러움이 차고 넘쳐 질투와 열등감이 폭발할 지경이라

외국에 있는 친구가 한국에 올 때마다 1-2년 주기로 갖는 만남을 피하고 싶기도 했다 


2년 만에 만난 자리에서 메인 화제는 '임신'이었다 

결혼 후 10년 이상 딩크로 잘 살고 있는데 이젠 정말 아이를 가져야 할지 고민이라고

너무 잘난 사람들은 평범한 욕망을 목표로 삼기 힘들다 

결혼했으니 아이 가져야지~ 하는 건 평범한 욕망이다

남들 다 취하는 평범한 욕망인데 그 욕망 하나 이루려면 포기할 게 너무 많다

개인의 성장과 파트너와의 관계에만 오로지 집중할 수가 없다


친구의 고민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임신 고민 안 해도 되는 내 상황이 참 홀가분하다고 느꼈다 

임신은 진짜 묘한 게, 막 너무 하고 싶어! 가 아니어도

아이를 가져볼까? 하는 마음이 단 5퍼센트 정도만 스며들어도

아이가 안 생길까 봐 조마조마하게 되고 온갖 불안과 걱정에 시달린다 

밀물처럼 들이치는 그 감정을 알기에 

내 경험과 생각을 나열하지 않는 선에서 조심스레 공감을 표했다 


언제나 의식하며 질투했던 친구의 임신 고민에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든 이유는 뭘까 

나보다 늘 앞서 나간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나처럼 평범한 고민을 한다는 걸 알게 돼서?

나는 이미 끝마친 숙제라서?


우월감인지, 안도감인지, 뭔지 알기 힘든

부끄럽고 찝찝하면서도 뭉글한 감정을 느꼈다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시기하는 감정은 평생 계속될 테지만

그 감정 때문에 괴로워하며 스스로를 작게 만들지는 말자

감정의 실체를 알면 그냥 느끼면 된다

감정에 휘둘리며 지배당하지만 않으면 된다 


각자의 그릇이 다르듯이 고민의 분야도, 고민의 시기도, 고민의 깊이도 저마다 다르다

내가 느낀 안도감의 실체를 나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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