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새내기들의 진로
융의 지혜로운 대답에 부쳐
나에게 스무살이 된 청년들은 각별하다. 그들은 어떤 역사와 이야기를 갖고 여기까지 온 걸까?
기대에 반짝이는 눈빛을 볼 때면 희망을 느끼지만 대학에 오자마자 반수와 편입, 재수를 위해 진로상담을 신청하는 친구들을 만나면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내가 학교에서 일 하면서 새내기들에게 많이 들었던 말은 ‘ 제가 원래 이 학교에 오려고 했던 건 아닌데요, 수능을 망쳐서 어쩌다보니 여기에 왔거든요’ 라거나 ‘ 제가 가고 싶었던 전공은 따로 있는데 여기가 취업이 잘된다고 해서 여기로 왔습니다. 원래는 00 쪽 생각했는데 거기는 사람들이 취업 안된다고 해서요’ 라는 말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오자마자 반수나 편입이나 재수 혹은 전과와 같은 주제가 진로상담에 등장한다. 여기 오려던 것이 아니었는데 그냥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말을 들으면서 꼬여버린 내 인생을 빠른 태엽처럼 감아 다시 그 시절의 나를 보는 것 같아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12년을 열심히 공부하고 치열하게 경쟁해서 여기 왔어요 .그런데 여긴 제가 찾던 그 곳이 아닌 것 같아요'라는 말이다.
이런 현실에서 스무살의 낭만이나 대학생활의 기쁨은 정말 소수의 (원하는 대학에 원하는 학과를온 ) 학생들을 제외하면 해당사항이 없어진다. '죽을 힘껏 달려서 대학이라는 관문을 통과하자 마자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만 명확해 지는 셈이다.
부정하고 싶지만 진짜 진로상담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순간이다. ‘점수맞춰서 왔습니다.’ ‘이 전공이 뭐하는지 모르고 왔는데요’라는 말을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진로상담을 하면서 내가 학생들에게 자주 묻는 질문이 있다.
어떤 기준으로 대학을 정하고 해당 전공에 왔는가 하는것이다. 이는 진로목표와 전공적합도를 가늠해 보기 위함인데 그 대답의 깊이와 폭이 학생들의 대학생활을 짐작해 보는데 상당히 용이하다. 그냥 점수 맞춰서….라는 표현은 너무 자주 들어서 익숙한 말이기도 하지만 그말은 앞으로 해 나가야할 진로탐색의 작업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그래 그랬구나…나도 그랬지', 하면서 따뜻하게 공감하지만 그 상태로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것을 오랜 상담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진로 에서 모든 것을 미리 정하고 예측한대로 계획한 대로 해 나가는 사람은 없다. 또한 별 다른 계획이 없었다고 해서 모두 잘못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 지는 연습과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정말 엉뚱한 기착지에 도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우연히, 어쩌다보니, 어쩔수 없이, 하다보니 이곳에 와 있다하더라도 그대로 멈춰서는 안된다.
진로상담은 결국은 자기 자신에게 집중해 보는 연습을 도와주는 것이기에 지금은 그런 상황에놓여있다 하더라도 훈련을 통해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가 있다.
그러나 더 걱정스러운 것은 이젠 더 이상 나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싫어 하는 이들이다. ‘저는 생각하는게 싫습니다.’ ‘생각하다보면 마음만 더 복잡해 져요. ‘’그냥 답을 주세요.’ 이런 요구를 하는 이들이다.
성인기에도 진로고민 때문에 괴롭고 막상 어떤 기회가 와도 선택을 못하거나 어떤 행동도 취지 못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기에 걱정이 된다.
하루는 졸업할 시기가 다된 어떤 학생이 찾아와서 ‘저에게 꼭 맞는 인생 직업을 찾아주는 학원을 혹시 아느나’고 물었던 날에는 나는 그날 오후 상담을 이어가지 못했다.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너무 답답하여 두통약을 먹고나서야 겨우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런 학원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질문을 하는 학생의 모습이 애처로워 단호하게 말하지 못했다. 그런 학원이 있다면 정답을 빨리 알고 준비할텐데라는 절박함을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질문의 대답을 찾아야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다.
각자의 인생에서 진로문제는 개별적이고 섬세한 도움이 필요한 작업이다. 그러니 한번은 분명히 멈춰서서 자기 자신에게 진지하고 솔직하게 질문하여야 한다.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 걸까? 나는 무엇을 원하는 걸까?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내 삶을 어떻게 구성해 나가고 싶은 걸까?
한해 한해 다르게 느끼지만 최근에는 진로상담에 대한 수요도 굉장히 많이 늘었다. 미래에 대한불안과 걱정도 상당히 높기 때문일 것이다. 비단 학생들이 아니라도 그 누구를 만나든 진로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비단 취업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진로문제라는 큰 고민안에는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와 같은 더 큰 삶의 문제가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이 고민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한참 경력의 고원기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진로란 어차피 삶의 이야기 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매 순간 자기 다운 선택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내면의 지혜가 필요하다.
‘우선 달려’, ‘열심히 달려’, ‘그러면 어딘가에 멋진 미래가 있어’,’ ‘방향따윈 나도 몰라 . 그냥 앞질러가면 뭔가 나올 꺼야. ‘
아….
기절 초풍을 하고 만다.
우리가 걸어가는 진로의 삽화가 이렇게 꼬여버리면 질문과 대답은 허공을 맴돌게 된다. 나 역시 고등학교를 마치고 스무살이 되었을 때 느꼈던 최초의 감정이 ‘이거 뭐지’ 라는 감정이었다. 대학이 끝이 아니었구나. 속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지금도 많은 학생들이 상담실에 와서 그런 말을 한다. ‘ 선생님 저는 대학만 가면 모든게 끝날 줄 알았어요. ‘
‘대학에 오면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해결되지도 않네요. ‘
상담실에 와서 이야기 하는 사람들의 떨리는 목소리를 듣고 있자면 나는 그 마음을 잘 알 것 같다.
그럴때 마다 나는 상담실에 잘 왔다고 환대를 해 준다. 혼자 끙끙 앓고 고민해도 뽀족한 해답을 얻지 못할 때 자신이 걱정하거나 불안해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는 마음의 기원을 찾아보는 일은 정말 중요한 자기 탐색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융(Jung)은 인간의 기원과 의미는 우리가 찾는 소명을 통해서 명확해 진다고 하였다. 그때 내가 했던 이런 이런 일들이 결국 내가 지금 이걸 하려고 그랬던 거였구나….하고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 인생을 결정짓는 원인을 우리 미래에서 만난다면 이해가 쉬울까?
묘한 시간 감각이지만 과거의 일들이 먼 미래의 원인이 된다는 것은 가슴의 소리를 들어야 함을 말해준다. 살아가면서 내가 예전에 왜 그런 공부를 했고, 왜 그런 여행을 했고, 왜 그런 사람을 만났는지 알게 된다. 융은 우리에게 대담한 제안을 한다. 결국 가슴으로부터의 소리를 듣고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남 눈치보지 말고 내 마음의 소리를 따라가야 한다.
용기를 내야 한다.
내 인생의 주인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자신의 두려움, 자기 회의에 빠지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진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 진짜 나의 길을 찾는 첫번째 작업이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자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미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미래의 나에게 당당한 내 자신으로 서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