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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 앙데팡당 Mar 26. 2020

화이트 큐브가 뭐에요?

[2호][그리미08]

‘도대체 화이트 큐브가 정확히 뭐야?’


어느 날 미술에 관심있는 한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화이트 큐브’, 질문을 받은 필자조차도 단지 하얀 공간 이외에 별다른 대답을 주지 못했다. 이 공간은 어떤 맥락 속에서 탄생한 것일까? 그리고 정확한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이 공간에서 어떻게 관람해야 할까? 등 본고를 통해 이에 대한 답을 찾아보자.  

시대에 따라서 미술품의 개념과 미술품을 향유하는 관객은 변화하였고 이에 따라 공간특성과 작품과 공간, 작품과 관객, 공간의 관객의 관계도 변화하였다. 근대 이전의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의 전시 공간은 전시의 의미보다는 소장의 개념이 더 강했다. 중세 예술작품들은 신전이나 교회, 궁전에서 귀족이나 왕 등 특정계층을 위한 장소에 보관했으며 이후 르네상스 시대에는 보관에서 벗어나 수집하며 작품을 전시하고 향유하기 위한 갤러리와 캐비닛, 소장가만의 규칙에 따라 진열되어 수집하던 분더캄머 등이 미술관의 역할을 하였다.


현재와 같은 공공 미술관의 개념은 18세기 프랑스 대혁명을 비롯한 시민혁명과 계몽주의에 의해 탄생한 루브르 박물관에서 그 시초를 찾아볼 수 있다. 루브르 박물관은 국민 교육과 계몽의 장, 역사 교과서로서 활용되며 그 이전과 다른 기능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거대한 작품을 중앙에 두고 주변으로 작은 작품들을 조밀한 간격으로 중첩되게 배치하여 벽을 가득 채운 전시 방식은 여전히 이어졌다. 이후 관람객과 예술품의 수가 빠르게 증가하며 이러한 중첩된 배치가 작품 감상에 방해가 된다고 인식하게 되었고, 19세기에 이르러 벽을 빼곡히 채우는 전시 방식이 아닌 작품을 눈높이에 맞게 배치하는 방식이 시도된다.

화이트 큐브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등장하게 된다. 배치된 작품의 수가 줄게 되면서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벽의 빈 공간들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전시 감상에 있어 관람자의 인식에 영향을 주는 벽의 색과 구조에 대한 연구와 논의가 시작되었다. 또한, 20세기 초 건축과 미술에서 근대성에 탐구가 활발한 시기로 그들의 형식언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된다. 사진의 발명 등 기술의 발전으로 미술은 재현의 고리에서 벗어나게 되는 대신, 미술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표현하는데 집중하게 되면서 전통적인 액자와 받침대의 경계를 벗어나 전시장의 벽과 바닥을 새로운 재료이자 무한한 공간개념으로 활용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전시 기법에도 변화를 주게 된다. 그 이전의 작품과 작가, 전시를 진행하는 전문가에 의해 배치되던 방식에서 적극적으로 감상하는 관람자의 경험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화이트 큐브는 이러한 근대 미술의 꽃피움에 따라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형식이다. 재현의 원리에 벗어나 작품 자체에 미술의 본질을 표현하고자 했던 욕구, 이 속에서 작품의 전통적인 경계였던 액자에서 벗어나 관람자의 영역인 벽과의 연속성을 지니게 되었고 자유평면의 형식을 갖는 흰 벽의 입방체인 화이트 큐브가 작가의 정신을 담는 하나의 그릇으로서 작용하게 된 것이다.


1960년대~70년대 다시 한 번 공간에서 관람자들의 경험하는 현상학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브라이언 오 도허티가 1976년에 발표한 <하얀 입방체 내부에서>라는 글에서 도허티는 감상에 방해되는 모든 요소는 제거해야 되고 화이트 큐브에 들어간 관객은 자기 자신이 사라지고 공간만이 남아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감각으로 작품을 바라볼 것을 원했다. 본래 작가의 정신을 담는 하나의 그릇으로 작용한 화이트 큐브가 작품의 배경으로서의 탈맥락화한 중성적인 공간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이러한 흐름은 미니멀리즘과 장소 특정적 작업의 등장, 관객의 역할과 참여가 중요해짐에 따라 공간이 전시의 방향과 공간특성에 다변화하게 되면서 작품들은 공간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음이 확인되었다. 현대 미술관들은 여전히 화이트 큐브를 기본의 공간으로 두면서 기획 전시마다, 작품의 특징에 따라 공간의 벽과 구성 등을 다양하게 배치하고 있다. 나아가 아예 전시실을 벗어나 자연 공간을 작품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설치 미술 등이 등장하면서 작품과 주변장소를 조합하여 작품 자체를 공간화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공간의 흐름은 작품과 관람객 사이의 변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18세기 이후로 관람객들의 경험에 따라 공간도 변화해 온 것이다. 20세기 후반부터는 미술관의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고 공공에 개방되는 비영리의 항구적인 기관으로 정의되고 있다. 전시 공간은 예술품을 매개로 하여 사회와 소통하는 공간으로서 변화하게 된다. 시대에 따라 변화해 온 예술 공간 그리고 현재 그 중심에 있는 화이트 큐브는 관람객들에게는 온전히 그 작품에 집중할 수 있는 중성적인 공간이자 동시에 근대 이후 작가들에게는 자신의 생각을 담는 그릇으로 작용해왔다. 그리고 현재는 화이트 큐브 안에서도 전시마다, 작품마다 특성에 맞춘 다양한 구성으로 관람객들에게 다가오고 있다.


본고를 적기 전까지 미술을 좋아하는 필자 조차도 화이트 큐브가 어쩌면 조금 딱딱하고 정적이며 작품을 어렵게 만드는 공간이 아닐까 생각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화이트 큐브가 생겨난 맥락, 그리고 그 안에서 관람객으로서 자세 등을 고민해보니 오히려 전시, 작품 이해를 돕는 하나의 커다란 하얀 도화지로 이해하게 되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해지는 지점이다. 과연 한 세기 뒤에 화이트 큐브는 또 어떤 공간으로 변모해 있을까? 새로운 미술 공간이 우리를 반겨줄까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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