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호][그리미10]
전통적으로 주류 예술문화를 형성해 온 곳은 미술관이다. 미술관은 예술가와 관람객 사이를 매개하고, 나아가 예술 작품의 가치를 인정하고 승인하는 제도적 장치로서 예술적 가치와 문화를 형성하는 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이러한 장치 속에서 예술은 더 이상 예술이라는 개인적 힘으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닌, 미술관 제도 속에서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주류 제도 속에 포함되지 못하는 실험적이거나, 비상업적인 예술이 자리할 수 있는 곳은 어딜까?
바로 ‘대안’공간이다.
우리 사회에서 ‘대안’이라는 단어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영어로는 얼터너티브 alternative, 즉 대체 가능한 것을 뜻하며, 한자에서는 대안(代案), 대신할 수 있는 제안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안이란 단어는 관습을 거부하는 안티 anti적 ‘태도’나 ‘경향’을 나타내는 추상적인 용어에 가깝기 때문에 ‘대안의 공간’ 역시 반권위적, 비상업성 등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기존 미술관들의 대안적인 공간인 대안공간의 첫 시작은 1960년대 후반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 그 당시에 미국은 흑인, 인디언 그리고 유색인종을 배제하고 백인문화를 건설하기 위한 동화주의 정책이 시행되고 있었고 미국의 동화주의 정책은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반문화운동, 히피운동, 흑인인권운동, 대안문화운동 등이 억압받았던 소수 민족들에 의해 일어나면서 중요한 변화를 맞게 된다. 기존의 미술관이나 상업 갤러리 공간과 구분되는 대안 공간은 1960년대의 저항 정신이 일구어낸 반문화운동을 배경으로, 이러한 사회와 정책의 전환기 속에서 미국의 대안공간이 설립되기 시작했다.
초기 대안공간들은 정체되고 제한적이며 제도화된 예술계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예술적 실험을 가능하게 할 그들만의 예술적 해방구였다. 여성,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계 등의 미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함으로써 소외되어 있던 페미니스트 아트를 비롯한 다양한 민족미술을 전시했으며 1970년대의 다원주의는 설치 미술, 비디오 아트, 퍼포먼스, 개념미술 등의 전시장이었던 대안공간이 없었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국내의 대안공간 역시 당시의 다양한 정치 사회 변화들과 맞물리며 등장하게 되었다.
국내에서는 1980년대 에 사회 전반에 걸쳐 확산된 민주주의의 흐름이 미술계에도 영향을 미치며 90년대의 민중미술이나 제도화 된 미술에 도전하는 새로운 예술 실천의 흐름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대안공간의 등장을 보다 직접적으로 야기시킨 것은 1997년에 발생한 IMF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시기에 많은 화랑들이 장기간 불황에 따른 재정난을 겪기 시작하였으며, 이는 결국 미술계의 불황으로 이어지며 다양한 예술가들이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장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에 젊고 실험적인 작품과 작가들을 지원하고, 이들의 작품을 자유롭게 선보일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비영리 형태의 전시 공간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으며, 1999년 가 국내 최초로 ‘대안공간’을 표방하며 등장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1세대 대안공간들은 어떻게 자리매김하고 있을까? 본문에서는 20여 년의 시간 동안 여러 대안공간들이 사라지고 생기는 시간 속에서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1세대 대안 공간 루프에서 최근 진행한 전시를 살펴보며 대안공간의 ‘대안성’과 ‘정체성’ 그리고 그들의 방향성이 어디로 향하는가를 알아보고자 한다.
<대안공간 루프>는 1999년 2월 홍대 앞에 개관하여 언더그라운드라는 문화적 특수성과 결합하여 한국의 첫 대안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대안의 개념을 소개한 곳으로 현재도 활발하게 전시를 이어나가고 있는 공간이다. 개관할 당시 서교동 건물 지하에서 신진작가 발굴과 지원, 복합문화공간의 지향, 대중과의 친밀한 소통 추구를 목표로 내세웠지만 지금은 서교동의 한 건물 전체를 차지할 정도로 그 규모가 커졌다.
루프에서 최근 진행했던 <멜팅팟 속으로(2020 독립 큐레이터 공모 선정 전시)> 는 작가가 아닌 큐레이터를 공모로 선발한 전시로 젝스턴 수 징시앙 Jaxton Su Jingxiang (b, 1988, 싱가포르)과 니엔-팅 첸 NienTing Chen (b, 1990, 대만)이라는 두 독립 큐레이터가 선보인 전시이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융합도시를 뜻하는 ‘멜팅팟’을 주제로 혼재된 문화교류의 특수성에 관한 전시를 진행했다. 필자는 이 전시를 접했을 때 해외 큐레이터들의 전시라는 점과 실험적인 영상, 비디오 아트,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필름 등 각기 다른 국적의 11명의 예술가들이 다양한 이미지를 통해 인간과 장소, 문화의 연결고리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점이 인상 깊었다.
세계화가 진행됨에 따라 예술계 역시 공간적인 제약이 적어진 것은 분명하나 국내 주류 미술관에서 해외 큐레이터들이 주도한 전시를 보기는 쉽지 않다. 필자는 루프의 이번 전시를 통해 다른 큐레이터 공모 전시가 대안 공간 또는 신생 공간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그들 나름대로 끊임없이 대안성에 고민하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게 되었다. 예술을 사랑하는 입장에서도 이러한 노력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만 20여 년의 시간 동안 자리 잡지 못한 대안공간의 고질적인 환경 역시 변화해야 하며,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대안공간은 신진작가들이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지원해주는 공간으로서의 기능이 가장 두드러진다. 또한 기존의 미술관이나 상업 갤러리에서 펼칠 수 없었던 실험적인 작품과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데에도 그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최근 주요 미술관을 비롯한 미술 제도권에서 신진 작가를 발굴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기존에 실험적인 미술이라고 칭해졌던 것들이 보편적인 미술의 범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본래 대안공간이 가지는 ‘대안성’이 위협받고 있다. 또한 대중들의 전시 관람 횟수 증가와 예술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안공간에 대한 인지도는 여전히 낮으며 대안성이라는 공간만의 정체성 논의 역시 부족한 실정이다.
공간이 자리 잡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충족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경제적인 자립이다. 우리는 흔히 대안 공간을 제도권 미술에 대항하고, 제도권 미술 밖에 있는 존재로 인식하지만 대안 공간은 제도의 경제적 지원이 없으면 사실상 살아남기 힘든 구조를 가지고 있다. 비상업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공공기금과 후원금에 의존하여 전시를 진행하고 있고, 경제적인 기반이 약하기 때문에 그 공간에서 오랫동안 버티는 것 자체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안공간에서 카페를 함께 운영하거나 후원회 모금, 대관 등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경제적 자립에 힘쓰고 있다.
자리를 잡은 공간들은 대형화되고, 소규모 형태의 대안공간은 비영리로 운영되는 성격으로 인해 재정적 문제, 제도화되어버린 대안성의 상실 등으로 설립과 폐관을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끊임없이 생겨 나가는 공간들을 보며 필자는 희망을 가져본다. IMF 경제 위기 속 꽃피운 곳이 대안공간이며, 이후 대안공간의 맥을 이은 새로운 신생 공간 또한 2008년 금융 위기 속에서 탄생했다. 점점 살기 힘들어지고 팍팍해지는 시대에 오히려 이러한 대안적 공간들의 필요성은 강해지며 그 수를 늘려가고 있다. 쉽게 소비되지 않는 목소리를 담고, 끊임없이 이러한 세상에 의문을 던지는 그 공간으로서 말이다.
끝으로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예술계 전반이 피해갈 수 없을 만큼 어려움을 겪고 있다. 쉽지 않겠지만 위기가 기회로 다가오길 바라며 이 속에서 새롭게 꽃피울 대안성을 기대하고 있다. 대안공간마다 특성화되고 전문화된 정체성(각기 구별되는 명확한 장르와 컨셉)과 활발한 홍보 그리고 공간이 자리 잡은 지역과의 연계성을 키운다면 충분히 대중들에게 매력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고, 이러한 관심은 정부를 비롯한 민간의 장기적인 지원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본다. Ⓔ [그리미]
참고문헌
이보미, 김지영, 「문화예술의 실험적 소통 담론에서 본 대안공간의 정체성 연구」, 『지역과 문화』 3(1), 2016.
채주희, 「한국 대안공간의 특성과 발전방향에 관한 연구」, 홍익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