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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 앙데팡당 May 10. 2019

마녀가 된 여성

[새무02]

요카난. 난 네 입술에 키스했어. 네 입술에 키스했어. 쓴 맛이었다. 피의 맛이던가? 아니, 그것은 사랑의 맛이었다.

- 오스카 와일드 <살로메> 중에서 -



살로메는 성서에 나오는 여성 중 몇 안 되는 유명한 여성일 것이다. 살로메는 헤로디아의 딸로(성서에는 ‘살로메’라는 이름 대신 ‘헤로디아의 딸’이라고 기록되어있다), 의붓아버지인 헤롯 왕 앞에서 춤을 춘 대가로 세례자 요한의 목을 요구한다. 살로메의 이야기는 많은 예술작품이나 문학으로 남았는데, 그만큼 살로메는 수많은 미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잔혹하리만큼 매력적인 뮤즈였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드라마나 영화에서 이처럼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남성을 파멸로 이끄는 여성을 ‘팜므파탈(Femme fatal)’이라고 말한다. 

 

팜므파탈은 본디 ‘숙명적인 여인’이라는 의미로, 오늘날에는 아름다운 외모로 남성을 유혹하여 파멸로 향하게 하는 ‘악녀’ 이미지로 통한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팜므파탈적 이미지가 유행하던 시대가 있었는데, 바로 19세기 후반이다. 19세기 후반 프랑스는 세기말적인 문예사조가 풍미했다. ‘데카당스(décadence)’라고 하는 이 문예사조는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유럽 전역으로 전파된 퇴폐적인 경향의 예술 운동을 말한다. 여기서 ‘데카당(décadent)’이란 퇴폐와 타락을 의미하며, 병적인 상태에 대한 탐닉과 기괴한 것에 대한 흥미와 더불어 성적이고 관능주의적인 성향이 특징이다. 

에드바르 뭉크, <마돈나 2>, 1894-1895년도, 캔버스에 유채, 91X70,5cm, 노르웨이 국립 미술관

 흔히  ‘마돈나’라 하면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여인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인 뭉크는 마돈나라는 주제를 여러 번 그렸는데, 그는 자신이  어머니와 누이들, 가까운 여성들에 대해 죽음과 얽힌 트라우마가 있었다. 그의 불안한 심리와 트라우마가 반영된 뭉크의 마돈나는 어둡고도 관능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성(性)과 죽음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부정적인 여성상이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 <유디트>,  1901년도, 캔버스에 유채, 84X42cm, 벨베데레 오스트리아 갤러리

 유디트는 성서에 나오는 인물로 적장인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벤 여성이다. 기존 화가들이 유디트가 적장의 목을 베는 행위나 장면 묘사에 초점을 맞췄다면, 클림트는 적장의 목을 들고 관능적인 표정을 하고 있는 유디트에 중점을 두었다. 자신이 벤 적장의 목을 움켜쥔 채 관람자를 응시하는 유디트의 표정은 마치 황홀경에 취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클림트의 유디트는 아름다운 여성의 살인행위라는 측면에서 팜므파탈적인 여성상을 보여준다. 


(좌) 프레드릭 샌디스, <메데이아>, 1868년도, 캔버스에 유채, 46.3X62.2, 버밍엄 시립미술관 | 

(우)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오디세우스에게 잔을 건네는 키르케>, 1891년도, 캔버스에 유채, 92X148, 올드햄 갤러리


메데이아와 키르케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대표적으로 등장하는 악녀이자 주술을 사용하는 마녀들이다. 특히 메데이아는 질투와 복수로 자신의 가족까지 죽인 후 사랑을 찾아 떠나가는 잔인한 여성으로 알려져 있다. 키르케는 자신의 섬에 오는 남성들을 가축으로 만드는 마녀로, 트로이 전쟁의 영웅인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을 가축으로 변하게 하며 끊임없이 유혹을 했다. 19세기에 유행하던 팜므파탈은 선하고 아름다운 여신과 대조되는 이러한 악녀와 마녀의 이미지로도 많이 표현된다. 


문학에서나 미술에서나 여성은 여신, 혹은 악녀로 나눠진다. 당시 여신이라는 존재는 곧 당대 남성들의 욕망의 대상이었다. 19세기 데카당한 여성에 대한 당대 남성들의 시각은 성적인 욕망과 죽음에 대한 복합적인 이미지로 나타난다. 흥미로운 점은 팜므파탈은 이러한 세기말적인 시대의 취향과 당시 변화되고 있던 여성의 이미지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19세기 말 여성들은 그 당시 자신들이 처한 사회경제적 상황에 대해 의식이 깨어나고 있었으며, 몇몇 여성들은 여성 참정권을 위해 일어나기 시작했다. 여성들은 더 이상 순종적이거나 남성들의 마음대로 소유하고 대상화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게 되었다. 격동적으로 변화하는 사회적 흐름 속에서 등장한 팜므파탈은 여성의 아름다움이 난폭할 수 있으며, 그 아름다움의 유혹이 남성을 복수와 욕망, 거세와 죽음으로 이끌 수 있음을 상징한다. 즉, 팜므파탈 이미지의 출현은 기존의 여성에 대한 개념 변화를 거부하거나 오해하는 남성들의 관점이 반영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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