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미09]
이맘때쯤이면 학교에서 아침 수업을 듣고 한적한 오후는 미술관에서 보내곤했다. 산뜻한 봄날에 기분좋은 바람을 맞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일대 삼청동을 거닐기도 하고, 우연히 전시회에서 만난 한 작품 앞에서 한없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의 감상을 글로 남겼다. 필자는 원래는 평범한 일상같던 지난 봄들이 그리워지면서 코로나가 잠식한 이번 봄은 어떻게 보내야 하나 고심에 빠졌다.
유례없는 팬데믹 사태에 학교는 한학기 온라인 강의를 결정했고, 그로인해 필자는 정말 오랜만에 서울이 아닌 본가 광주에서 봄을 보내고 있다. 그마저도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며 브런치에 어떤 글을 써야 할지 감도 잡지 못한 채 그저 침대 위에 푹 늘어져 매너리즘에 빠져있다.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이 시간을,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줄 시간말이다.
그 기회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지난 주말 <예술과 인문학>이라는 예술철학 강의를 듣는 중이었다. 요셉 보이스의 "우리는 모두 예술가다" 이 한마디를 듣고 조금 진부하지만 총을 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했다. 상황이 이렇다고 해서 너무 거기에 매몰되어 있던 것은 아닌지, 이 시간 속에서 오히려 얻을 수 있는 새로운 것이 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요셉 보이스 1960~70년대 새로운 다다이즘를 표방한 예술가 집단 플럭석스의 멤버로 기존이 예술 형식을 거부하고 보다 단순하고 새로운 생각을 표현하는 예술을 원했다. 그는 실천적 예술가이며, 참여적 예술가라는 위치를 가지고 삶과 직결되는 다양한 작품들을 우리에게 선보였다.
7000그루의 떡갈나무는 프로젝트의 시작을 담은 작품으로 이후 5년 안에 독일 전역에 7000그루의 나무를 심자는 내용의 프로젝트이고, 청소는 1927년 동독 칼 마르크스 광장에서 열린 노동절 행사가 끝난 후 외국에서 온 학생들과 붉은 빗자루로 거리를 청소한 것이다. 두 작품 모두 일상적인 행위로 기존의 질서에 대해 새로운 메세지를 실천적 행위로서 전한다.
평소 우리가 식목일에 나무를 심자라는 구호를 보고, 뉴스에서 코로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청결을 유지하자는 문구를 봤을 때 얼마나 많은 걸 느끼나? 어쩌면 피로감이 느껴지는 일들도 예술로 표현하면 좀 더 신선하고 새롭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는 예술은 사회 질서와 일정한 거리를 가지며 메세지를 던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요셉 보이스는 이러한 행위를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무심기와 청소를 예술로 허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 생길 수 있다. 예술이 무엇인가? 언제 예술인가? 어디까지 예술인가? 우리가 하는 일상적인 행위들도 예술이 될 수 있는건가? 그 수업의 끝은 이런 물음들로 가득한 채 끝이 났지만 다만 지금 필자에게 일상적인 행위가 좀 더 새롭게 다가온다면 그 모든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집에서 일상을 보내는 내 모습을 담은 사진까지도 인스타그램을 통해 집콕을 하는 스토리로 올린다면 이것 또한 나의 sns 친구들과 함께 한 사회적 실천 행위 프로젝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100년뒤 선조들의 팬데믹 극복 상황으로 소개 될지도 모르는 일이 아닐까 재미있는 상상도 해본다 현재 상황으로 인해 새로운 전시를 보지 못한다면 집에서라도 직접 작품을 만들어 예술가가 되어 보는 것은 어떨까?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모두 이 상황을 보다 즐겁게 잘 이겨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