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미07]
어느 날 SNS에서 스쳐지나가다 본 영상에 눈길이 멈췄다. 바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예술가는 존재한다> 라는 퍼포먼스 작품이었다. 작품은 2010년 뉴욕 현대미술관 전시장에서 두 개의 의자에 아브라모비치와 낯선 상대방이 마주 앉는 행위로 이루어진다.
저 퍼포먼스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1분간 무표정으로 아무말도 하지 않고 마주 앉은 사람을 바로보는 게 전부인데, 마주앉은 사람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누군가는 똑같은 무표정으로, 누군가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물로, 웃음으로 각기 다른 반응들을 보였다. 여기서 드는 생각은 만약 내가 저 자리에 앉아있다면 어땠을까?
처음엔 그 시선이 불편하면서도 무방비 상태에서 온전한 나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1분이 아닐까? 나는 이 퍼포먼스를 접했을 때 '위로'의 감정을 느꼈다. 그저 아무말 없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 나에게 원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일까. 저 자리에 앉아 있는 그 순간에서 만큼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우리는 어떠한 작품을 마주할 때,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찾아내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분명 필자도 처음 위의 작품을 보았을 때 평소와 다름없이 작가의 의도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작품을 다 본 후에 나에게 남겨진 것은 작품 그 자체에서 보고 느낀 생각과 감정들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현대미술을 어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작품이 우리에게 무엇을 전달하는지 명확히 파악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정보를 전달받는 것이 익숙했던 우리에게 오롯히 혼자 무엇인가 느끼고 생각하는게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점점 이 시간이 익숙해지면서 처음에는 불친절하게 느껴졌던 그 시간들이 점점 현대미술을 찾는 매력이 될지 모른다.
필자는 일상에 지칠 때,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질 때 주로 국립현대미술관을 찾는다.탁 트인 화이트 큐브 안에서 가끔은 이해할 수 없는 작품과 씨름하며 엉뚱한 생각을 채우기도 하고, 잊고 있었던 사회 문제에 대해 고민으로 그 공간을 나만의 생각으로 채우기도 한다. 내 생각이 틀릴수도 있고, 다를수도 있지만 틀린 것과 다른 것을 알아가면서 그 공간에서 작품과 나를 직시하게 되는 시간 자체가 좋았다. 그 시간이 조금씩 나를 변화시키며, 때로는 삶을 대하는 나의 자세가 바뀌어 있기도 한다. 어디로 튀어나갈지 모르는 생각이 더 재미있기도 하고 아무 기대없이 찾은 작품에서 생각보다 많은 변화들이 시작되는 것이 즐거웠다.
사실 본고의 처음 쓸 때의 방향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주요 작품을 다루는 것이었지만 어느새 이 글을 써내려가더보니 작품 소개, 정보 전달도 정말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내가 현대미술을 사랑하게 된 이유를 전하고 있었다. 본고를 읽고 현대미술이 어렵다고 느껴지는 분들이 부디 조금이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현대미술 작품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