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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 앙데팡당 Apr 18. 2020

무엇이 표준이 될 것인가?

[E앙데팡당X아트렉쳐/새무]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문화인류학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중요하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같은 생각이나 문화를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하여 언어는 정신을 구성하며 사상을 형성하고 행동양식이 된다. 한 국가의 입장에서 고유한 언어와 문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힘이자 권력이다. 


오늘날에는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소통이 활발하다. 그에 따라 새로운 용어들이나 유행어도 빠르게 생겨난다. 한편 모바일에서는 긴 텍스트는 부담이 된다. 화면을 눈으로 보면서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정보를 인식하고 공유하기 위해 우리는 GUI(Graphic User Interface)를 사용한다. 마우스를 이용하여 화면에 있는 메뉴를 선택하고, 원하는 앱을 사용할 수 있다. 우리의 핸드폰이나 노트북 등에 있는 아이콘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닌 문자 언어를 시각화한 그림 언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그림언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의 종류를 알아보고 각각의 개념을 살펴보자. 



아이콘 (Icon)

Icon은 ‘상(像)’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eikoon’에서 왔다. 미술에서 Icon은 동방정교회의 신앙의 대상인 그리스도, 성모, 성인 등을 그린 것을 의미하며 ‘이콘’이라고도 한다. 오늘날 Icon(아이콘)은 컴퓨터나 핸드폰에서 정보를 표시하는 조그만 그림이나 기호를 뜻한다. 아이콘은 각종 프로그램, 명령어, 또는 데이터 파일들을 쉽게 지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각각에 해당되는 조그만 그림 또는 기호를 만들어 화면에 표시한 것이다. 아이콘은 정보의 내용을 사람들이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내용을 함축할 수 있으며, 대상의 닮은 꼴을 직접적으로 나타내어 형태와 의미가 대응하는 특징이 있다. 또 누구나 보았을 때 의미를 알아야하기 때문에 국제표준기구(ISO)나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에서 국제적인 표준을 마련하기도 한다. GUI(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발달함에 따라 언어의 대안으로서 연구개발되고 있으며, 컴퓨터 문화 보급의 상징이 되고 있다. 


아이소타입 (Isotype)

아이소타입은 ‘국제 그림글자 교육기구 (International System of Typographic Picture Education)’의 약어이다. 아이소타입은 1920년대에 철학자이며 교육자이자 오스트리아 빈의 박물관장이던 노이라트가 창안하였는데, 그는 간략화된 도형을 이용해 국제적으로 통용할 수 있는 말로 만들어 교육용으로 사용하려고 했다. 아이소타입은 일정한 사상을 나타내기 위해 문자와 숫자를 사용하는 대신에 상징적 도형이나 정해진 기호를 조합시켜 보다 시각적이고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방식이다. 노이라트는 그림의 뜻을 설명하는 문장을 확립시키기 위하여 2,000개 이상의 기호를 수록한 시각사전과 기호의 문법을 만드는 시도도 하였다. 아이소타입은 통계 도표나 교과서에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데, 도표의 내용을 명쾌하고 효과적으로 시각화할 수 있다. 아이소타입은 언어를 초월한 의사소통 수단으로써 현대적 시각 디자인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픽토그램 (Pictogram) 

픽토그램은 그림을 뜻하는 픽토(picto)와 전보를 뜻하는 텔레그램(telegram)의 합성어이다. 픽토그램은 사물, 시설, 행위, 개념 등을 상징적이고 단순한 그림으로 나타내 대상의 의미를 시각적으로 쉽고 빠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든 그림문자이자 상징문자이다. 따라서 인종과 언어를 뛰어넘어 누구라도 픽토그램을 보기만 하면,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픽토그램은 국가적·국제적이며, 약속체계·기호체계·상징체계이자 규칙이다. 그렇기 때문에 엄격한 기준에 따라 공식적인 형태가 정해져 있거나 각각 사용하는 장소가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도 화장실, 지하철, 엘리베이터 등 공공시설에 사용되는 픽토그램은 한국산업규격(KS)으로 제정해 사용하고 있다. 


심벌 (Symbol)

심벌은 사물을 전달하는 매개적 작용을 하는 것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그리스어의 symbolon(符信)이 그 어원이며, 상징이라고도 한다. 심벌은 매우 다의적인 개념인데, 예를들어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라든지, 왕관은 왕위의 상징인 것처럼, 눈이나 귀 등으로 직접 지각할 수 없는 의미나 가치 등을 어떤 유사성에 의해서 구상화하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다의적이기 때문에 배경지식이 있어야 의미를 알 수 있으며, 지역이나 종교, 환경 등에 따라서 각기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아이콘, 아이소타입, 픽토그램은 보편적이며 표준 디자인이 정해지기도 하며 공식적이고 국제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심벌은 규격화되지는 않았지만 같은 의미를 공유하는 사회에서는 약속된 것만이 그 의미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언어적인 특징이 있다. 그러나 직관적인 아이콘과 아이소타입, 픽토그램과는 달리 맥락적 배경지식이 없으면 소외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그림 언어는 시각적이고 직관적이기에 한 눈에 알아보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미지로 남기 때문에 무언가에 대해서 단편적으로 인식할 수도 있다. 디지털 속에서 그림 언어는 한 공동체, 한 국가에서만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시각적 언어들이 일상 속에서 어떻게 규정되어 사용되어 왔는지에 대해 살펴보자.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모바일 기기 속 이모티콘은 어떨까? 이모티콘은 감정을 나타내는 이모션(emotion)과 아이콘(icon)의 합성어다. 요즘은 감정과 상황을 간단한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는 이모티콘의 종류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아이폰의 경우 인종, 가족의 형태, 커플의 모습을 다양하게 제안하고 있다. 행동을 하는 이모티콘도 여성과 남성 두 종류씩 제작하였다. 


2006년 오스트리아 빈은 “빈은 다르게 본다”는 캠페인과 함께 새로운 표지판을 내세웠다. 기존의 남성으로 그려진 표지판을 여성으로, 아이를 보호하는 여성이 남성으로 바꾼 성평등 표지판이다. 당국은 “말과 그림은 사회적 역할에 대해 많은 것을 상징한다”고 하며 기존 안내판의 절반 가량을 바꾸겠다는 포부를 보였다. 빈은 공사장의 표지판에서도 ‘여성’의 모습을 등장시킬 계획이었으나 유럽의 법률에 맞지 않아서 추진되지 못했다. 공사장에서 일하는 여성의 모습을 머리가 길고 치마를 입은 모습으로 표현했는데, 이런 복장은 공사법에 위반되기 때문이다. 여성 인부는 치마를 입고 안전모도 하지 않은 채 찰랑이는 머릿결을 자랑하며 공사를 한다는 말인가? 성평등의 실현을 위해 여성을 등장시켰는데 정작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은 그대로인 상황이다. 


올해 초에는 스위스 제네바 에서 횡단보도 표지판의 절반을 여성 그림으로 교체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새로운 표지판에는 임신한 여성, 지팡이를 든 나이 많은 여성, 아프로 파마 머리를 한 여성을 포함한 6가지 종류의 여성 그림을 등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제네바 시장은 이번 표지판 변경 프로젝트를 성평등뿐만 아니라 다양성을 위한 시의 결정이라고 하며 “전통적으로 공공장소는 남성이 설계해왔다, 이번 표지판 변경은 그 공공장소의 일부를 여성에게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구의 절반이 여성임에도 표지판의 대부분의 모습은 남성이며, 여성이 등장하는 경우는 모성이 강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여성은 이제서야 공공장소의 일부를 찾게 된 것이다. 제네바 시장의 말은 기존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여성의 존재가 어떠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019년 7월, 양천구는 화장실 표지판을 색깔에 따른 성별 구분을 없앴다. 여자화장실과 남자화장실 색상 통일하는 대신 층별로 표지판 색을 다르게 칠하는 계획을 내세웠다. 그동안 여자화장실은 빨간색, 남자화장실은 파란색으로 구분되어왔는데 색에 따른 구분은 성별에 대한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양천구는 성인지 감수성이 높아지는 만큼 생활 가까이에 닿아 있는 부분들을 개선해 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편 국가나 도시의 이러한 표지판과 안내판 교체사업은 세금을 낭비한다는 비난이 따른다. 기존의 등장 인물이 남성이라고 규정짓는 것은 아닌지, 여성은 머리가 길고 몸매가 부각되는 형태로만 표현된다는 지적도 따르며 표지판 그림을 바꾸는 것이 보여주기 식이라는 비판도 있다. 


‘표준’에 익숙해진 우리는 그동안 이질감을 느끼지 못하며 일상을 보내왔다. 그러나 ‘표준’의  뒷면에 가려진 존재들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아이콘이나 픽토그램과 같이 직관적이고 단순한 그림언어일수록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편견이 고스란히 담긴다. 불편한을 느끼지 못했다고 해서 단순히 소모적인 논쟁으로 치부 할 수 없는 것이다. 앞으로 다양성이 중요해지는 시대인 만큼 표준을 만드는 일에 있어서 더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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