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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 앙데팡당 Jun 17. 2020

기술은 예술을 위협하는가?

[E앙데팡당X아트렉쳐/모그]

  2020년 한국에서는 나의 주변 사람들이 모두 스마트폰을 사용하여 조도와 색감을 세밀하게 조절해가며 사진을 찍고, 그들의 사진첩에는 수천장, 수만장의 사진이 가득하다. 같은 사물이라 할지라도 타인에 의해 찍혀진 사진은 나의 기억과 이미지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인지, 굳이 나의 카메라로 한 번 더 담는다. 기술의 보급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기억하도록 만들었다. 이는 기술의 도움과 상관없이 모두가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이념적 가능성을 열었고, 예술의 개념을 무한정 확장 시킬 수 있었다. 이렇게 우리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과 보급을 통해 예술 또한 다양화, 다변화되는 것을 생생하게 경험하고 있다. 과학과 기술이 발전할수록 창작에 사용할 수 있는 도구들이 많아지고 새로운 장르가 만들어진다. 사진, 미디어아트, 디지털 일러스트, 우주 위성 사진 등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새로운 장르를 만들고, 인간과 기계 사이에서 무엇이 예술인가에 관한 질문을 계속 제공해왔다. 또한 과학이 세계에 무언가를 내 놓을 때 그에 의해 파생된 긍정적/부정적인 사고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이들은 표현된다. 아울러 하드웨어가 아닌 ‘브런치’와 같은 디지털 플랫폼, 프로그램, 소프트웨어의 발전에 따라 이를 활용하여 예술에 대한 담론을 이어가는 것 또한 과학과 예술의 관계를 사유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과학이 발전하고 기념비적인 것을 내놓을 때마다 사람들은 예술이 위협받는다는 두려움과 불안감을 느꼈다. 


  우선 시각 예술의 전유물이었던 인간의 손이 사진기술이 도입되면서 받은 위협을 생각해보자. 최초의 사진은 1826년 프랑스의 화학자 니엡스에 의해서 장장 8시간의 노출 과정을 거쳐 최초의 사진 형태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시작된 신기한 기술은 그의 동료 다게르에 의해 보다 실용적인 사진 매체를 고안했고, 이는 정물과 인물 사진을 십 여 분의 노출만으로도 찍을 수 있게 했다. 이후 다양한 사람들의 실험을 거쳐 1851년에는 사진 촬영이 초 단위로 줄어들게 되었고, 이후 1880년에는 휴대용 카메라와 롤필름이 대중화되었다.            

                                                                                                 

집 창밖 풍경. 니에프스가 1826년경 제작한 사진 이미지로, 최초의 사진으로 흔히 알려져 있다. 노출시간이 8시간이었기 때문에, 해가 하늘을 가로질러서 안뜰 양쪽을 비추고 있다*

      

  혹자는 사진술의 발명과 대중화되는 것을 보면서 “이 순간부터 회화의 역사는 막을 내릴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 당시 유럽 사회에서는 귀족들의 초상화가 화가에게 주 수입원 중 하나였고, 귀족 또는 후원자를 통해 화가로서 직업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사진의 발명은 화가들에게 위협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러나 사진술의 발명과 발전과 함께 회화에 대한 새로운 지평이 열리게 된다. (사람마다 다르게 평가할 수 있지만), 현재 그 자체로 거대한 사조가 되어 버린 ‘입체주의 Cubism’과 야수파가 등장한다. 사실적 묘사가 각광받던 시대가 끝나고 사진술이 발명되고 이에 저항하는 입체파가 등장한 것은 우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입체파가 당시에도 시대적으로 환영 받을 수 있었던 배경으로 사실적 묘사의 전통을 버리고 회화만의 미적 가치를 탐구하는 데 길을 열어주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의 등장은 회화에도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것과 동시에, 사진 또한 하나의 예술적 매체로 발전하게 된다. 즉 사진 기술의 발명과 발전은 시각 예술 그 자체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한 것이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예술을 위협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역설적으로 더 많은 세계를 창조할 수 있던 계기를 제공한 것이다. 이러한 걱정과 고민은 기술이 발전하는 그 과정에 언제나 있었고, 현대에도 마찬가지이다. 가령, 인공지능이 수 많은 화가들의 화풍을 익혀 설정된 조건에 따라 독특한 작품을 만든다고 할 때, 이는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회화의 시대를 위협했던 19세기 초와 달리, 인간과 예술의 관계에 대한 거대한 체계를 건드린다. 개인의 독창성, 인간으로 구성된 사회의 독창성과 고민을 담은 것으로서 예술의 가치를 진지하게 평가해오던 우리의 습관이 위협받은 것이다. 우리는 이제 예술을 어디까지 확장해야 하나 그 경계가 무한히 확장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미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자신의 예술을 그려내고 있을 것이다. 또는 수입을 올리고 있을 것이다.

2017년에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Obvious(단체)가 컴퓨터에 서양미술사조의 화풍을 입력하고, 회화를 그리는 법을 입력한 후,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을 선보였다.**


  우리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인간에게 도움을 주면서도 인간을 압도할 때의 두려움과 불안을 함께 느낀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가속화됨에 따라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은 또 다른 예술의 생생한 소재가 되어 우리의 사고를 자극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기술의 순기능으로서 예술의 저변이 무한정 확대되어 지속적으로 예술의 담론을 이어가게 만들기도 한다. 예술의 저변확대가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줄 알았으나, 이제는 동물 그리고 인공지능에까지 미친다. 사진술이 등장했을 때 회화의 죽음에 대해 걱정했던 그 때, 기계가 인간의 손을 거치지 않고 독특하고 고유한 회화를 그려낼 것이라는 상상을 조금이라도 했었을까? 당연히 못했을 것이다. 지금 현대 사회에 기존의 예술에 대한 개념이 위협받는 이 상황이 예술에 대한 마지막 질문은 당연히 아닐 것이다. 우리는 매시대마다 과학기술과 예술의 관계를 통해 궁극적으로 ‘예술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모그]


* 조제프 니세포르 니에프스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La Comtesse de Belamy, one of 11 artworks in the Belamy family, created by OBVIOUS using artificial intellig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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