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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일상의 만남

[모그13]

by E 앙데팡당


2020년 10월 부쩍 쌀쌀해진 어느 날, 거리에 있는 흔한 take -out 전문 커피숍이 가을 맞이가 한창이다. 부쩍이나 따뜻한 음료를 주문하는 손님이 많아졌다. 3평 남짓한 작은 공간과 그다지 높지 않은 천장, 원목을 사용한 인테리어에 어딘가 레트로한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앤디워홀의 팝아트 비슷한 이미지가 인쇄된 선반이 놓여 있고, 화선지에 판본체로 적힌 글귀가 걸려있다. 커피가 특별한 것도 아니고, 메뉴 구성이 특별한 것도 아니다. 단지 이곳은 사업장이 모여 있는 도심 한복판이고, 직장인과 학생들이 부족한 카페인을 보충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들르는 평범한 공간이다. 그러나 이 공간의 특별한 점은 한 켠에 하얀 벽이 비어있고, 밖에서 흘깃 보아도 내부가 훤히 보이는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꽤 따뜻하다. 어느날, 누군가 이 공간에 그림을 걸었다.

커피를 매개로 한 우리의 일상은 특별할 것이 없다. 커피는 이제 문화고 개인의 습관이다. 그러한 일상에서 우연히 어떤 그림을 마주쳤다.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면서 스마트폰을 하다가 눈을 뗀 순간 우연히 들어왔다. 언제부터 있었을까. 그림은 나에게 어떠한 자극을 가하지도 않으면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내가 특별한 관심을 주지 않아도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어떤 비일상적인 사물과의 만남은 나를 살짝 귀찮게 한다. 그러나 계속 시선이 가고, 다음 날 그 다음 날에도 나의 시선을 자극한다. 별로 궁금하지 않았지만 아주 조금 용기를 내어 저것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야기 상대가 누구이든 상관없다. 같이 온 일행이든 카페 사장이든 벽에 걸려 있는 어떤 사물이 대화의 주제가 된 것만으로도 그다지 일상적이지 않다. 일상을 살면서 전혀 궁금하지 않았던 세계가 갑자기 나에게 다가온 것이다. 이는 나에게 돈을 쓰라고 강요하는 광고도 아니고, 나에게 특별히 유용한 정보를 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서 나와의 거리를 유지한다.


다시 회사나 학교에 돌아가면 이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만 할 것이다. 내 인생과 관련이 없는 어떤 일들을 처리하느라, 일과 관계 없는 인간 관계 때문에 불평과 불만이 늘어갈 것이고, 이를 해소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집에 가는 길에 맥주 한 캔을 손에 쥐고 유튜브를 킬 것이다. 그러나 내일 다시 커피를 마시러 방문할 그 카페에는 어제와 같은 그 작품이 걸려 있을 것이고,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나는 그것을 볼 것이다. 예술은 시간이 많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경험인줄 알았다. 유명한 작가들 몇명은 알고 있어야만 예술에 대한 대화를 시작할 수 있고, 굳이 시간을 내어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가본 경험이 있어야만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우연히 예술의 일부가 내 일상에 들어온다면 내가 그것을 거부해야할 이유가 있을까?

작정하고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억지로 이 글을 쓰기 위해 예술에 대해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즉 예술에 대한 의지적 만남이 아니라,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미적 체험을 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아무리 우리가 보내는 시간의 대부분이 온라인으로 넘어갔다고 해도 우리의 몸은 여전히 일상을 살고 있다. 또한 아무리 시각예술이 디지털로 기록되고 온라인에 구현된다고 해도, 여전히 어떤 작품은 지하 창고에서 감상될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쉽게 변하지 않는 우리의 일상에 예술에 대한 경험이 구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예술적 경험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친숙한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은 또다시 물리적 공간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 작품이 일상으로 떠나는 과정 (영상 클릭)


이번 여름, Fost it 2호 발간을 준비하며 우리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뒤틀린 우리의 공간 경험은 물리적 공간에 대한 그리움에서 시작했지만 2020년도 3개월 밖에 남지 않은 현재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비대면 사회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학교 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올해 상반기에는 비대면이라는 낯선 경험이 주는 불편함과 불안함이 더 컸다. 이러한 불편함은 당연히 모든 사람들에게 하루빨리 대면적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부추겼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공간의 제약이 약화된 비대면적 일상에 적응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았다. 중학교부터 대학원까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대면과 비대면의 선택지 사이에서 비대면을 선택했다. 지난 상반기에 사람들로 하여 갑자기 비대면 사회에 적응할 것을 강제 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람들은 처음 마주하는 낯선 일상 경험이 매우 불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때 느낀 불편함은 선택지 없이 모든 사람에게 같은 조건을 적용했기 때문에 튀어나온 반발심 이었을지도 모른다. 대신, 이미 비대면적 일상을 경험한 이후에 선택지가 주어지고 보니 상대적으로 비대면적 일상은 심리적으로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비대면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 속에서 2020년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물리적 공간에서 마주하는 우연적 경험과 배움의 기회는 약화되었고, 개인의 의지가 더욱 중요해졌다. 예술계에서는 온라인 전시, 온라인 공연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유튜브만 켜도 다양한 전시와 공연 컨텐츠를 즐길 수 있다. 공간 활용에 제약을 느낀 모든 분야에서 모든 관심을 온라인으로 돌려 정보를 쏟아내고 있다. 누구나 집에서 또는 대중교통을 타면서 현대의 가장 최신의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일단 문화예술 향유의 기회는 모두에게 열린 것이다.

하지만 온라인은 어떤 곳인가?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각자 저만의 이유와 목적에 따라 유의미한 정보를 선택해야 한다. 웹서핑이라는 개념이 이제는 조금 모호하다, 온라인 상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담론이나 전반적인 이슈를 구경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다. 알고리즘에 따라 나에게 추천되는 정보가 한정되고, 우연히 만나는 새로운 정보는 보기 싫은 광고뿐이다. 이제 내가 다른 영역을 탐색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지식을 가지고 이를 검색할 수 있는 의지가 필요해졌다. 새로운 분야, 새로운 정보를 탐색하기 위해서 특별한 의지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온라인 전시나 공연 또한 이를 찾는 사람들, 이를 검색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지식과 의지를 가진 사람에게만 유의미하다. 즉, 양질의 정보는 찾는 사람에게만 열려 있다. 우리는 점점 의도치 않게 일상과 예술을 구분하고 있었다. 관심있는 사람에게만 열려 있는 예술의 경험은 지금 수많은 온라인 컨텐츠를 생산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반가운 일은 아니다. 그림에 누구나 말을 걸 수 있기 위해서는 그림과 친해져야 한다. 그림에 대한 경험이 일상의 경험과 전혀 다른 것이라면 소수의 관심있는 사람들만이 그림에 말을 걸 것이다. 또 예술이라는 새로움 마저 망각할 정도로 일상이 되어버렸을 때, 일상과 잠시 거리를 둘 수 있는 눈도 필요할 것이다. 가령, SNS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발자취들까지 예술로서 사유할 수 있기 위해서 말이다. 예술을 일상의 경험 안으로 들어오게 하려면 우리의 시선은 일상에서의 틈을 찾으러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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