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4일부터 3월 31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배움터 2층 디자인박물관에서 간송특별전 '대한콜렉션'이 개최되었다. 이번 전시는 DDP에서 진행하는 마지막 간송미술품 기획 전시였다. 성북동에 위치한 간송미술관이 보존공사를 위해 적절한 수장고를 찾던 중, DDP와 협약을 맺어 DDP에 수장고를 마련하고 지난 5년간 DDP에서 간송미술문화재단 전시를 개최해왔다. 그동안 연간 두차례 개장하던 간송미술관의 접근성에 비하면 훨씬 다양한 주제로 꽤 오랜 기간동안 많은 사람들이 간송미술품을 관람할 수 있었기에, 간송 전형필의 역사적 업적과 우리나라의 역사 및 미술품에 대한 관심이 대중화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가장 대표적으로 글쓴이도 그동안 6차례 정도 간송미술전을 관람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일주일 전에 방문한 키스해링 전시에 비하면 관람객이 매우 적었는데, 나에게는 쾌적한 환경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간송문화전 3부: 진경산수화>
(2014.12.14-2015.05.10)
<간송문화전 4부: 매,난,국,죽>
(2015.06.04-2015.10.11)
<간송문화전 5부: 화훼영모>
(2015.10.23-2016.03.27)
<간송문화전 6부: 풍속인물화>
(2016.04.20-2016.08.28)
<간송과 백남준의 만남>(2016.11.09-2017.02.05)
<삼일운동 100주년 간송특별전: 대한콜랙숀>(2019.01.04-2019.03.31)
이번 전시는 삼일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간송이 지키고자 한 민족, 국가의 혼이 담긴 미술품을 중심으로 전개해 나갔다. 크게는 조선의 백자와 고려의 청자를 축으로 하여, 일제강점기에 간송이 국가의 보물을 어떻게 손에 넣게 되었는지 등에 관하여 짧은 이야기를 삽입하여 쉽게 공감하고 감화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번 리뷰는 전체적으로 전시 구성에 대한 소개와 전시 구성에서 인상깊었던 점을 위주로 적어보려고 한다.
우선 전시장 초입에는 3.1운동을 중심으로 보성학교의 연혁, 역사적 사건, 보성 20인에 대한 설명 등 3.1운동의 역사적 의미에 초점을 맞추어 당시의 기록을 전시했다. 그 중 보성학교는 특히, 일제강점기 말기에 간송 선생이 민족교육의 불씨를살리고자 인수한 학교로 2.8 독립선언을 비롯하여 많은 민족 문학가, 교사, 학자들이 배출된 곳이라고 한다. 보성 20인을 기억하고자 기획한 전시구성이 매우 인상깊었는데, 아래 보이는 사진에서 육면체의 조형물 20개를 발견할 수 있다. 검정색의 박스처럼 생긴 육면체 윗면에 각각 보성 20인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적혀있는데, 이는 마치 독일에 있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을 떠올리게 한다. 이 공간에 들어서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글씨를 읽기 위해 고개를 숙이게 되고, 듬성듬성 있는 상자를 천천히 거닐며 각자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는 마치 추모비와 같은 느낌을 주는데, 고개를 숙이는 것은 마치 추모의 마음을 담은 묵념의 행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사이를 개개인이 혼자 거닐면서 상념에 젖게 되는 것 전부가 아마도 추모의 과정이자 이 전시를 관람하기에 앞서 가질 수 있는 마음가짐, 태도를 형성하게 해준다. 단순히 역사적 사건을 나열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서 유물을 전시한다면, 우리 개개인의
3.1 운동의 역사적 의미와 이를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를 한번 점검할 수 있는 어떠한 힘이 있는 구성이었다. 또한 정면에 빔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담은 영상이 재생되었는데, 사람을 그림자로 표현하면서 화면을 바라보는 사람 또한 빔의 빛 때문에 그림자로 비춰지는 이중의 효과를 잘 나타내고 있었다. 단순히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고 전시한 전시가 아니라, 전시를 관람하는 동안에 어떠한 마음의 변화, 감정, 태도가 형성된다면 그 또한 매우 의미있는 전시라고 할 수 있다.
우, 독일 베를린, 피터 아이젠만의 설계로 구성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단, 하나의 주제의식에 매몰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최근 3.1운동의 유관순 열사를 기리면서 나온 <항거>라는 영화가 한창이었다. 분명히 그 당시 독립을 위해 싸운 수많은 여성들과 일제강점기 하에서 핍박받은 여성들과 아이들이 이 곳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이런 숭고한 공간에서 잊혀진 것인가. 아니면 간송 선생이 우리를 미쳐 보지 못했던 것인가.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우리는 이 정제된 공간 안에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도록 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다음 관의 테마는 백자였다. 특히 독보적으로 위치하고 있는 저 백자는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으로 국보 294호에 자리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 백자가 간송에게 들어오게 된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과의 경매 경쟁에서 이겨 쟁취한 상징적인 유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왼쪽 사진은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 이 놓인 방을 지나 여러개의 백자가 전시된 방에서 찍은 사진이다. 나무로 틀을 짠 하얀색 벽들이 일렬로 놓여 있고 그 복도를 지나 보이는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에서 그 상징과 의미를 더 깊어보이게 하는 것 같다.
백자 관을 지나면 '갇스비콜랙숀'이라는 이름으로 청자 20점이 전시 되어있다. 백자를 돋보이게 하는 하얀색 배경과 청자를 더욱 고급스럽게 만드는 검정색 테마가 대비를 이루며 각각의 매력이 더 부각되었다. 목재의 색 또한 각각에 어울리는 색으로 전체적으로 완성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 했다.
이 뿐만 아니라 <청자상감운학문매병> 국보68호 를 도판이나 수업에서만 보다가 실제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이든지 나에게 특별한 이야기가 있거나 특별한 의미로 다가올 때 더 오래 기억에 남고 더 특별해진다. 미술품이든 역사 유물이든 어쩌면 그저 아무 의미 없는 사물일 수도 있지만, 각 개별적인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우리는 전혀 다른 사물을 경험하게 된다. 이야기가 있는 사물들이 나의 이야기가 되어 나의 세계를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기도 하며 결국 그 이야기들이 모여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을 발견할 지도 모른다. [모그02,2019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