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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KULINITÄTEN> : 남성성 그리고 여성성

[A모06]

by E 앙데팡당


독일 뒤셀도르프에 위치한 미술관 Kunstverein für die Rheinlande und Westfalen에서 지난 2019년 9월부터 11월까지 전시된 <MASKULINITÄTEN>은 작은 전시였다. 겨우 한 층을 채운 이 전시가 아직 내 뇌리에 강하게 박혀있는 건 아마 이 시기에 들었던 한 가수의 비극적인 소식이 이 전시와 겹쳐진 탓도 있을 것이다.


11월 24일, 우연찮게 들른 미술관에 걸린 전시의 마지막 날이었다. 표를 끊고 둘러본 기념품 샵엔 여느 미술관처럼 엽서와 문구류, 전시 해설 책이 빼곡했다. 그중 눈에 띈 티셔츠는 제니 홀쳐 Jenny Holze의 문구를 사용한 흰 반팔 셔츠였다. ´MEN DON ́T PROTECT YOU ANYMORE(남성은 더 이상 당신을 지켜주지 않는다)’이라고 쓰인 셔츠는 전시 제목인 ‘남성성’을 단적으로 설명하는 적절한 문구가 아닐까 싶다. 과거 긴 시간 동안 남성은 여성을 지켜주고, 아껴주고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존재이며 여성은 연약하고 아름다우며 보호받는 존재라 여겨졌다. 각 성별의 ‘이상’에 가까울수록 존재 가치가 올라갔으며 이러한 현상은 성별 고정관념을 더욱 고착시켜 여성과 남성의 신체와 의복, 나아가 일상을 변화시켰다.


제니 홀쳐는 남성은 더 이상 당신-여성-을 지켜주지 않는다 명명함으로써 당신은 보호가 필요한 미성숙한 존재가 아니며 보호받기 위해 당신의 일상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로 확장된다. 나아가 남성이 ‘보호’해주었던 과거가 과연 ‘보호’가 맞는지, 오히려 억압이 아니었는지 반추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Keren Cytter, Object, 2016, Digital HD Video, 27 Min., Courtesy der Künstlerin

가장 큰 충격을 준 작품은 Keren Cytter의 영상이었다. 개별로 촬영된 9개의 영상물이 하나의 스토리를 이루는 구성이었는데, 성기와 성적 학대 장면이 편집 없이 나타나 시각적인 충격을 준다. 영상엔 세 명의 남성과 한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세 남성의 권력 구조와 서열 싸움을 하는 모습, 동시에 한 여성을 함께 학대하며 그들이 갖는 묘한 연대감이 나타난다. 이들의 관계는 남성기에 기반한 폭력적 ‘남성성’이 연결 고리이다. 그만큼 영상엔 남성기를 당당히 드러내는 남성이 계속 등장하며, 거울에 그려진 남성기에 자신의 얼굴을 비추는 장면으로 그들의 성기가 곧 그들의 정체를 대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성은 영상 중후반부까지 세 남성의 관계에 끼어들긴커녕 그들의 발아래에서 목소리도 없이 성적으로 학대당한다. 여성이 목소리 내는 부분은 영상의 후반부, 몸이 테이프로 묶여 머리 위에 술병을 올려놓은 채이다. 앞선 장면에서 성적으로 대상화 object 되어 비추어졌다면, 여기선 술병을 올려두는 탁자로, 물건 object으로 나타난다. 여성은 목소리를 내지만 그 말은 힘이 없다. 영상에서 여성이 나타나는 방식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다루어지는 방식과 같다. 성적으로 대상화되거나, 언제든 대체 가능한 물건처럼 무시되거나.


영상뿐 아니라 전시 전반에 걸쳐 남성의 성기가 드러난 작품이 많았다. Jutta Koether의 Isabelle 2, Tetsumi Kudo의 Suggestion for Arrabal: The Great Ceremony (Suggestion for Arrabal: le grand ceremonial) 등 남성기는 ‘남성성’을 대변한다. 때문에 작품에서 남성기는 단순 남성 신체 이상의 의미를 넘어 강함, 당당함, 권위 등 전통적으로 추앙받은 남성성을 의미하곤 한다. 도상이 가진 의미로 인해 미술 작품에서 남성기는 적나라하게 표현되는 경우가 많고, 수직으로 곧추선 기념비의 형태를 남근상이라 칭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에게 노출된다. 반면 여성의 성기는 여성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통적 여성성이 지향하는 바의 반대에 가까운데, 이는 전통적인 여성성이 성적으로 무해해야 함을 말한다. 아직까지 여성기가 터부시 되는 것이 비하여 남성의 성기는, 나아가 남성은 보다 일찍 많은 자유를 누렸다.


이는 대중문화와도 맞닿아 보인다. 전시를 다 보고 나와 핸드폰을 확인했을 때, 지인들로부터 온 몇 개의 메시지는 한 가수의 비보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미디어는 그를 벼랑 끝으로 내몬 건 무분별한 악플때문이라 보도했다. 젊은 여성 연예인에게 가해지는 여성 혐오 잣대는 악플의 근저에 깔려, 대중은 그가 마주친 힘든 상황마저 희화화하거나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고 평가해댔다. 그를 소비하고 가두는 대중을 가능하게 한 이 사회에서, 남성성은 아직 건재하게 기능한다.







글에서 소개된 영상이 궁금하다면

-> https://vimeo.com/163255550

참고 웹사이트

https://www.kunstverein-duesseldorf.de/en/exhibition/maskulinitaeten/

https://www.artsy.net/artwork/keren-cytter-objec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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